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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팡
게시물ID : panic_897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angbi
추천 : 34
조회수 : 3454회
댓글수 : 50개
등록시간 : 2016/08/02 02: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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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아니 멀쩡히 통화 잘 되는구만. 뭔 폰을 바꾼다 그래.

잔뜩 짜증 실린 아들 목소리에 어미는 풀 죽는다. 

- 그랴두... 야가 한 번씩 툭툭 꺼진다니께...

중요한 거래처 미팅을 앞두고 긴장한 탓과

도로 정체로 인한 답답함 탓에

어미 말이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마치 세상 모든 어미가

제 아들에게 전화를 건 이유로

차들이 기어가기라도 한다는 마냥 책망했다.

- 아후, 엄마까지 왜 그러냐 진짜.

죄진 것 없는 어미는 낳아 세상 빛 보게 만든 것이,

그리하여 자라 힘든 세상살이 하게 만든 것이

미안해서 그런지, 아들에게 사과했다.

- 미안혀... 근디...


- 아, 말 좀 빨리 해! 가뜩이나 속터져 죽겠구만.


- 그랴. 미안혀, 미안혀. 여튼 이게 지 맴대로 꺼지고 그랴.

  오늘 새벽에두 그랴가지구 알람도 못 듣고 엄마 지각했어야..."

차창을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아들이 답했다.

- 그럼 가서 바꿔. 뭐 나더러 어쩌라고.

  애도 아니고 뭘 같이 가자고 난리야.

  내가 아줌마 폰 바꾸는데 따라갈만큼 한가하지가 않아요.

  와... 저거 포르쉐네?! 존나 잘 빠졌다 진짜.

  응? 아님, 애초에 널널하게 쉬면서

  엄마가 폰을 바꾸든 남자를 바꾸든

  졸졸 따라다닐 수 있게 뭘 물려주기라도 하든가.

  개뿔 사람 숨도 못쉬고 일하도록

  암것도 해준거 없으면서

  꼭 자기 난감한 거 있음 나한테 전화해요.

  엄마. 나 힘들어요, 사는 거.

  폰 정도는 엄마가 좀 직 접 가서 하라고.

  사람 중요한 날 아침부터 전화해서 속 터지게 하지말고.


- 미안허다... 그랴도 나가 잘 모르니께 글치...


- 아 뭘 몰라! 뭐, 뭐! 한글을 몰라 핸드폰이 뭔지를 몰라?

  아들 속을 모르네 참. 그러네.


- 그거 파는 냥반들 말만 복잡시럽구

  뭔 소릴 허는 통 알아들을수가...

  아니다. 아니야, 미안타 엄마다.

  운전 잘 허구. 주위 잘 살피구 과속하믄 안되야.

  가다가 졸리믄...


- 아, 진짜.

맘도 말도 아무것도 마무리 되지 못한 채

아들의 차단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어미는 뚝, 하고 전화를 끊는 아들 너머에서

뚝,하고 달래주면 서런 울음을 멈추어

폭 안겨 웃던 아들을 추억했다.


아들의 분주함이 온통 어미의 죄인듯하여

급히 눈물이 고였다.


그래, 내가 뭐 해준 것 있다고.

잠시 울고 풀려다 화장실 문 열리는 소리에

감정을 밟아 누른다.

학생들이 민원을 넣으면 화장실 비품 창고에서의

십분 휴식마저 금지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일이 있어

아들의 주택부금을 부을 수 있는 것을.

그건 평생 반듯한 무엇하나 물려주지 못한

어미의 작은 사과 선물이었다.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

쥐어주려 모은지 벌써 30년째다.



#2.


오후 퇴근 후 어미는 핸드폰 매장에 들렀다.

어미에겐 대단한 결심이었다.

당장 내일 또 알람을 못 듣는다면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단 불안이 용기를 끌어냈다.

어미는 온 힘으로 매장 문을 밀었다.

달구어진 지옥문을 열 듯

벌써부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매장 직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어미를 안내했다.


어서오세요. 뭐 찾으세요?

시원한 거 뭐 좀 드릴까요?

어휴, 이걸로 땀 좀 닦으세요. 

이것 좀 고칠 수 있을까요? 라는 어미의 물음에

순간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던 것 같긴 하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들의 서비스 정신은 훌륭했다. 

곧 한 남자가 어미 정면으로 태블릿 pc 한 대를

옆구리에 끼고 와서 이것저것 바쁘게 두드렸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심각해졌다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 어머니, 이거 단종돼서 수리가 안되네.

  아휴, 울 엄마 속상해서 어뜩하지?

  내가 최대한 지금 알아본건데요... 음... 잠깐만요.

남자는 살갑고 다정하게 어미를 걱정했다.

어미는 그런 남자의 태도가 내심 만족스러웠는지

수리가 안된다는 소식에도 미소가 만연했다.

남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따지듯 묻는 중이었다.

- 아니, 그렇다고 수리가 안되면

  쓰시던 고객들은 어떻게 하란 겁니까?

  아무리 본사 방침이라고 해도...

  아휴... 그래요 실장님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만...

  본사도 너무하네 진짜.

  우리 어머님 폰 어떡할거야 진짜...

  알았어요. 뭐 어쩌겠어. 네, 그래요.

전화를 끊은 남자는 되려 자기가 울 것 같은

얼굴로 어미 손을 꼭 포개어 잡았다.

- 어쩌죠? 정말 죄송합니다.

  워낙 오래된 모델이라 본사에서 지원을 안 한다고 하네요.


- 그랴? 워쩔수 읍지 뭐... 아끕긴 허네...

   삼 년밖에 안 쓴거라 그런건 생각도 못해보긴 혔어..."


- 어... 요즘은 빨리 빨리 바뀌잖아요 뭐든?

  참 이게 참... 저도 pk텔레콤 직원이지만

  거 너무 빨리 바뀌는 거 같긴 해요.

  아.... 근데 엄마. 마침 있잖아요,

  무슨 드라마처럼 딱 이게 타이밍이 기가 막힌게 있어요.


- 뭔 소리여?

부여잡은 남자 손이 따스해서

어미는 한없이 맘이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여기 와서 이렇게 어미를 위하는 아들뻘을 보니

세상 모든 젊은 것들이 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들었다.


남자는 어미의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지금 울 엄마들 대상으로

  스마트 폰 특별 이벤트가 진행중이거든요.


- 뭔 놈의 스마트퐁이여.

  기냥 싸고 전화 잘 되구 튼튼헌 놈이면 돼.


- 얼레? 엄마. 요즘은 스마트 폰이 더 싸요.

  그리고 그 버튼 누르는 폰은 이제 아예 나오지도 않어.


- 저기 저건 뭐여?


- 아, 저거? 아... 저거는 저, 거는 그니까 어 전시용이죠.

  그 왜 소품으로 두는거예요. 핸드폰의 역사 이런거.

  저희 매장이 좀 유서가 깊은 매장이기도 하고...

  여튼, 내가 엄마 손해보게는 절대 안하니까

  아들이라 생각하고 믿고! 응?

  울 엄마같기도 하고 그래서

  특별 물량 빼드리려고 하는거예요.

  딱 오늘까지 마감이었는데

  엄마 진짜 기막힌 타이밍에 온거라니까? 봐요


  이게딱글씨도크고엄마들보기에딱좋게나왔거든요

  그리고일단잘안깨져보면이게특수재질로되가지고

  방수도되고떨어져도멀쩡하고뭐망치로대놓고내려

  치면망가지겠지그건말이안되는거고생활에서는절

  대망가질일없다는거우리엄마들한번사시면또오래

  써야하잖아빠떼리도겁나오래가요그냥어른들쓰기

  는이게젤편해요이것도이제물량이두개밖에안남았

  거든요딴매장가면다품절인데우리매장이평가가좋

  아가지고본사에서좀더내려줘가지고아직재고가있

  는거예요. 

  그리고 이게 [쓰리스타]꺼라서

  에이에스는 제일 좋은거, 알죠?


- 아~ 쓰리스타꺼여?

  그럼 믿을먼허지.

  울 집 전자제품두  쓰리스타꺼여~


- 옴마? 엄마 뭘 좀 아시네.

  그럼 이걸로 하자.

  쓰리스타꺼 쓰는게 애국하는거여.

  내가 게임도 많이 깔아드릴게요.


- 됐으요. 늙은이가 뭔 겜을 헌다구...


- 아니래니까? 자식들하고 이런거 하면서

  더 친해지고 그러는거예요.

  이게 점수가 높으면 순위에 이름이 나오거든요?

  보면 엄마들이 애들보다 더 많이 일등해."

순간 어미 눈에 총기가 돌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미는 곧 달뜬 호흡으로 남자에게 물었다.

- 이름이 나온다는 게 뭔 말이여?

  가만 있어봐, 그니께 그 겜을 잘 하믄

  내 이름이 아들놈 전화에 떡하니 보인다 이거여?


- 그렇지! 그럼 아들이 또 엄마를 이겨야겠다

  하고 승부욕에 불타고, 모자가 도란도란

  게임하면서 정도 깊어지고 그런 경우 많아요.


- 얼마여 이거.


- 원래 이백삼십만원짜린데요, 이벤트해서 백오십.

  글고 내가 울 엄마한테 정들어서 삼십 더 빼줄게요.

  백이십만원에  데려가심 됩니다!


- 어이구, 무신 전화기가...

어미는 화들짝 놀라며 손에 쥐었던 스마트 폰을

매대 위에 황급히 올려두었다.

남자는 폰과 어미를 번갈아 곁눈질로 보다가,

이내 어미 손에 폰을 꼬옥 쥐어주며 더 다정하게 말했다.

- 아들이랑 친해질 수 있다니까, 엄마?


- 그라요! 거, 싸주소.

  대신, 나 이거 쓰는법 좀 상세히 알려주소.

  오늘 여 문 닫을 때 까지라도 배워가꼬 가야쓰겄구먼.

눈치 빠른 남자의 영리한 다정함이 결국 어미 맘을 움직였다.

간이 콩알만해서 망가진 선풍기하나 새로 사지 않고

부채로 여름을 나는 양반이었지만,

어느새 백이십만원짜리 스마트폰을 손에 쥔채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통화하는 법, 전화번호부 관리법, 중요한 알람 맞추는 법

따위는 전부 건너 뛴 채 제일 유명하고 많이 하는 게임을

설치해 달라고 부탁했다.


남자는 국민게임이라 불리는 '애미팡'을 받아

게임 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날 밤, 어미는 알람맞추는 것도 완전히 잊은채

게임에 몰두했지만 상관없었다.

순위가 맘처럼 오르지 않는 탓에 밤을 새우고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3.


아들과 여자는 서로를 보지 않고 마주 앉아 있었다.

뜨겁던 커피가 식는동안 아무말 없이,

불타던 연애가 미지근하게 식어감을 개의치않고,

그들 사이 온기를 뿜는 건 과열되어 가는 스마트 폰 뿐이었다.  


각자 폰에 몰두한 지 두어시간만에 처음 입을 뗀 건 여자였다. 


- 오빠, 나 하트 좀 보내줘.


부름에도 여전히 고개 숙인 채 아들이 답했다.


- 너 애미팡 아직 하직도 해? 요즘 누가 그거 하냐?


- 내가 한다.


- 나 그거 지웠는데.


- 다시 깔고 보내주면 되잖아.


- 아 진짜... 잠만, 나 이번 보너스만 깨면

  새 차 해금 풀려. 기다려 봐.


- 아 진짜... 오늘 현질 그만할라고 그런단 말야.


- 걍 현질 해. 거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되지.


여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지만

아들의 말을 수긍한 듯 한번 더 만원을 결제했다.


다시, 두 사람 사이 대화가 멈추고

요란한 전자음만 바쁘게 울려 퍼졌다.



#4.


어미는 틈나는대로 애미팡에 접속했다.

또 등록된 사람도 몇 없는 톡을 켜고

하루에도 몇번씩 아들의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쓰리스타가 좋긴 좋구나.

중얼거리며 애미팡 점수 올리기에 열중하는 어미였다.


출근 길 버스에서도 하고,

근무 중 찰나 휴식시간에도 하고,

퇴근길은 물론이며 씻기 전 똥쌀 때도,

머리를 말리려 거실에 앉아 부채질을 하면서까지,

자는 시간을 쪼개 눈이 퀭해지도록

애미팡을 했다.


그러나 실력은 늘지 않았고, 순위는 늘 뒤처졌다.

톡에 있는 사람들을 다 삭제하고 2위에 오른 적이 있지만,

자기 폰에서 보이는 것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순위는

톡에 등록된 사람 수에 따라 다르다는 걸

최씨가 말해주어 알았다.


아들 톡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등록되어 있을까?

이런식으로 가다가는 아들 게임에

어미 이름이 노출 될 기회는 영영 없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어미는 울기까지 했다.

피버타임에 뭐가 많이 터지고 반짝여서

역대 최고점을 기대했건만 늘 받던 평균보다도

한참 떨어진 점수를 기록했던 것이다.


사실 점수가 오르는 매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문득 앞으로 더 나아질 일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미는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

화장실 비품칸에서 엉엉 울었다.

화장실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다행히 들어온 사람은 최씨였다.

최씨는 급히 비품칸을 열고 어미의 입을 틀어 막았다.


- 언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최씨의 말에 겨우 정신을 차린 어미는

들썩이며 감정을 누르려 했지만

심박이 좀체 잦아들지 않았다.


주머니를 뒤져 몇 알의 약을

침으로 삼키고서야 겨우 진정한 어미였다.


최씨는 어미를 토닥이며 운 이유를 물었다.

애미팡 때문이라고, 말하기 창피했지만

누굴 속이는데 서툰 양반이었다.


- 에휴... 그게 뭐라고.

  아들이 그거 봐서 뭐 한다고 그렇게까지 연연해 거기.


- 그랴두... 그랴도 나 이름 함 더 보믄

  지 애미 생각 한 번이라두  안헐까 싶은게...

  혹시 알어? 그라믄 전화라두 한 통 올 지?


어미를 보는 최씨의 눈에 연민이 가득했다.

그 시선이 불편했는지 어미는 황급히 말을 주웠다.


- 아니 원체 아가 잘 해주는디, 워낙 바쁘니께

  내가 걍 투정피는거여. 글고  일등찍고

  그라믄 뿌듯하잖어!

  아들놈헌티  째볼라고 그러는거여, 걍.

  승부욕이 원체 쎄, 내가. 그래서 그런거여.


최씨는 가만히 어미의 정수리를

들여다 볼 따름이었다.



#5.


다음날, 퇴근하려는데

최씨가 어미를 채근하며 잡아끌었다.

더운데 커피나 한 잔 하고 가자는 최씨의 말에도

애미팡 할 생각에 맘이 급한 어미였지만,

어제 최씨가 위로해 준 일이 생각나

이번에는 말을 따랐다.


편의점 앞에 도착하니 고등학생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최씨에게 아는체했다.


최씨는 아이를 인사시키며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잠시 기다리라며 최씨가 편의점으로 들어가자

최씨의 아들이 앞 뒤 없이 말을 던졌다.


- 폭탄을 많이 모아야 되요.


두리번 거리는 어미 팔을 붙잡으며

최씨의 아들이 말을 이었다.


- 애미팡이요. 폰 켜보세요, 아줌마.


- 어...어, 그래.


얼결에 최씨의 아들이 시킨대로

어미는 스마트폰을 꺼내 애미팡을 실행했다.


최씨의 아들은 어미의 폰을 채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공략법을 일러주었다.


- 콤보가 중요해요.

  콤보 놓치면 점수 많이 못 받는다고

  생각해야 되요.

  폭탄을 바로 터트리면 안되고,

  모았다가 한 번에 가야 되요.

  여길 이렇게 하고...



황급히 가방을 열어 수첩과

모나미 볼펜을 꺼내며 어미가 말했다



- 잠만, 잠만, 잠만. 가만 있어봐.

  그, 위에서 부터 맞춘다.

  또 무어라 그랬지?


최씨 아들은 어린 애들답게 빠르고 정확했다.

 애들답지 않게 차분하고

쉽게 게임을 알려주었다.

문득 최씨가 몹시 부러운 어미였다.


그 사이 최씨가 편의점 커피 두 잔과

콜라 한 캔을 사들고 나왔다.


어미는 집중해서 최씨 아들의 말을 들었고,

최씨는 기특한 눈빛으로 제 아들을 바라보았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에서

어느새 한시간 가량이 지나자

최씨 아들은 이제 필요한 건 다 전수했다는 듯

마지막으로, 라며 운을 떼었다.


- 마지막으로 아줌마. 빼박 중요한 게 현질이예요, 솔까.


- 현질?


- 돈 쓰는거요.

  현질을 좀 해서 아이템을 많이

  사가지고 하면 점수 쉽게 많이 올라요.

  저도 엄마한테 허락받고

  한달에  오만원정도는 하거든요.


어미가 바라보자 최씨는 인자한 웃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우선, 아줌마도 한 만원 어치정도만

  먼저 해보시면 확 다른거 느낄거예요.

  이게 만원짜리 팩인데요, 지금  살까요?


어미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아이 손에서

스마트 폰을 빼앗아 십만원짜리 팩을 터치했다.


- 아니.


그 날, 어미는 밤이 늦도록 게임에 열중했다.

점수는 이전과는 비교도 안되게 큰 폭으로 상승했다.

아들 폰에 몇 위로 나타날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최씨 아들 말로는 보통 100만점 정도 넘으면

5위안에는 충분히 들거라고 했다.


오늘 어미가 기록한 최고 점수는 68만점.

어제까지 10만점 전후를 오가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발전이었다.


목표가 머지 않았다는 생각에 설레는 어미였다.

더불어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가 솟아

심호흡을 굳게 하고는

아들에게 하트까지 하나 보내보았다.


보내자마자 후회했지만,

잘 했다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6.


아들은 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침대를 바라보았다.

벌거벗은 채 코 골며 자는 여자 모습이 추해보였다.

이제 끝낼때가 되었구나.

착찹한 맘으로 맥주를 들이켜는데 폰 알림이 울렸다.


새벽 한시 사십사분.

아들은 버릇이 된 짜증으로 폰을 열어보았다.


엄마님이 하트를 선물하셨습니다.


그놈의 하트 좀 보내달라고 조르는 여자 때문에

다시 애미팡을 설치했던 게 기억나며,

이별에 대한 다짐이 확고해졌다.


- 별 지랄 이젠. 요즘 누가 이딴거 한다고.


아들은 답장없이 폰을 대기상태로 전환시켰다.



#7.


그간 점수는 잘 안 올랐어도 오래 기본기를 다진 덕인지

요령을 터득하고 난 후 어미의 점수는 날로 높아졌다.


그러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찾아 왔다.

하늘이 내려 준 기회이자 다신 없을 최고의 순간.

실력과 운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져 탄생한

기적같은 한 판 이었다.


늘 쉽게 도달하는 10콤보.

긴장을 누르며 차분하게, 20콤보.

여기까진 그나마 쉬운데.


설마, 설마 하며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30콤보.


말도 안돼!


이젠 자신이 자신이 아닌듯

본능으로 손가락을 움직이며 40콤보!


어찌 한 건지 본인도 알 수가 없는

무의식의 경지.

마침내 애미팡의 신이 빙의한 듯 무려 50콤보!


피버타임!


모아둔 폭탄들,

화면 절반 이상을 채운 폭탄들이

한 번에 팡! 


우수수

우장창

와르르

촤르르

휘이익

휘리릭

파바박

콰과쾅


무너지는 만큼 점수가 오른다.

한 뼘 액정 속 어미의 사활을 건 세계.

부수어지는 만큼 기억될만한 점수가 기록된다.


십만, 이십만,

여기까진 익숙한 숫자.


오십만, 칠십만,

근래 종종 보게 된 숫자.


구십만,

처음 도달한 숫자!


마침내 백만,

믿을 수 없는 숫자!


너머 백이십만!

두근두근

쿵쾅쿵쾅


어미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심장이 두방망이질치고 숨이 가빠왔다.

생전 이런 흥분은 없었던 것 같다.

없었다. 단언할 수 있다.


점수 올라가는 속도만큼 심박수도 빨라지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팡! 팡팡!


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쿵쿠ㅋ커컥


마침내,

라스트 팡!


쿵컥쿵컥쿵컥쿵컥


최종 점수 백사십팔만점.


어딜가든 3위 안에는 가볍게 들 수 있는 점수였다. 

누구에게든 상위 노출될 수 있는 점수였고.

분명, 아들에게도.



#8.


한 밤의 고속도로를 포효하듯 달리는 세단.

아들은 구십분 전 받은 전화를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 심장마비입니다.

  평소 모친께서 지병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보호자분께서 빨리 좀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차라리 어디엔가 박아버렸으면 하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차를 몬다.


집 골목 어귀에서 차마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들은 담배를 연달아 피운다.


여기까지 오는동안 경찰은 세통의 전화를 더 걸었고

아들은 받지 않았다.


보호자분께서 오셔야 시신을 모실 수 있습니다.

경찰의 문자를 확인하다

문득 어미가 보냈던 톡이 생각난다.


아들은 톡에 접속해

어미가 보냈던 하트 선물을 멍하니 바라본다.

힘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 하트 받기를 터치한다.

 애미팡이 실행되고,

엄마님께서 아이템을 선물하셨습니다,

라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아들은 온 힘으로 폰을 벽에 집어 던진다.

단단한 쓰리스타 제품인지라 단번에 쉬 깨지지 않는다.

약이 올라 떨어진 폰을 주워 몇번이고 집어 던진다.


팡!

하고 던질때마다 폰은 조금씩 더 망가진다.


파앙!


마침내 산산히 부수어지며

유리와 부품들이 공중에 흩날린다.


허공에 튀는 스마트 폰 조각들 사이로

어미 집 지붕이 보인다.


그게 문득 크게 보인다.

집을 가리고 있는 다른 집이 사라지며

우리집이 온전히 보인다.


시간이 멈춘다.

그곳에 뚝, 하고 자신을 달래주던

어미의 모습이 보인다.


잊고 살았던 어린시절이

믿고 살갑던 엄마시절이

선명하게 다 기억난다.


똑똑하고 영민하게 모두 다.


그야말로 스마트 한 밤이다. 

출처
보완
2016-08-02 15: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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