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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8
게시물ID : panic_90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1
조회수 : 81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8/16 1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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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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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헤령은 눈을 떴다. 꿈속에서 달이 스쳐지나갔다. 보통의 달이 아닌 토성의 영혼 주위를 스쳐가는 달, 타이탄이었다. 토성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눈을 꿈뻑거렸다. 타이탄이 토성 궤도를 네 번 비행하고, 토성의 눈이 네 번째 끔뻑거렸을 때, 그녀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토성의 눈으로 모든 우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까마득한 검은 우주를 아무 목적 없이 떠도는 모든 행성들을 볼 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공포 속에서 지식도, 빛도, 이름도 없이 굴러다니는 무한대수의 별들. 그중에 푸른스름한 빛을 띤 하나의 별이 있었다. 지구였다.

 

헤령에게 그것은 볼품없는 조그만 별일뿐이었다. 배구공처럼 걷어차면 아무곳으로나 퉁겨나갈 조그만 장난감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 이 별을 혐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자신의 손이 가재의 발처럼 커다란 집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를 전혀 놀라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충동 때문에 손을 뻗쳤고, 그 충동은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고통과 아픔을 듣게 했다. 지구에 속한 모든 것들이 처절하게 울면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성가시고 짜증나는 비명일 뿐이었다. 그녀는 집게손에 더 세게 힘을 주었다. 지구의 양쪽 경사가 움푹 찌그러들었다. 바람 가득 담긴 튜브를 터뜨리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지구는 두 조각으로 찢어져버렸다. 양쪽으로 쪼개진 수박과 같은 큰 과일을 연상시켰다. 박살이 난 두개골처럼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는 장면은 뜻밖이었다. 사과잼을 가득 담은 깨진 유리병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어두컴컴한 우주의 벽면 한구석을 적시고 있었다.

 

헤령은 다시 눈을 떴다. 놀라움도, 두려움도 느끼지 않았기에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더없이 편안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이제 자신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폐쇄병실에는 창문이 없지만 그녀는 먼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만월이 자신을 포근한 시선으로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감금병동에는 화장실도 샤워시설도 없었다. 심지어는 창문조차 없었다. 우주 저편의 머나먼 곳에 있는 존재들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이미지를 전송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어제 저녁 네 번째 보름달이 떴다는 것을. 이제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볼 필요가 없었다. 눈들이 모든 세상을 다른 차원으로 보여주면서, 그녀는 이제 인간이란 대상조차 사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의 논리적 과정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유추나 직관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말이다.

 

감금병동을 감찰하는 오늘의 당직관은 그럭저럭 괜찮은 남자였다. 그는 사십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기 관리에 무척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적당한 키에 나이답지 않은 피부의 탄력, 군살없는 몸매등은 완벽한 정도는 아니어도 비슷한 나이대의 이성에겐 충분히 어필한만 했다. 하지만 헤령에겐 그뿐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연상의 남자에게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자신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수 있었다.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그녀의 몸에 침입해온 이후로, 지금까지 타인에게 신경을 쓸 여유가 단 1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의 관심조차 아니었다. 그저 생각이 보여질 뿐이었다.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보여질 뿐이었다.

 

그녀는 집중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그 남자의 정신이었다. 정신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것은 보는 것과는 다른 능력이었다. 감지기로 타인의 뇌파 신호를 읽어낼 순 있지만, 그것을 라디오의 주파수로 변환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보통 사람들보다 좀 더 집중하면 될 뿐이었다. 검고 황량한 우주라는 사막에서 무수한 별들이 하나의 거대한 눈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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