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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12 (최종화)
게시물ID : panic_9046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4
조회수 : 961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9/04 22: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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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지슨은 아컴시티 데일리 라인을 두려움에 떨면서 읽어내려 가고 있었다. 수전증을 앓는 그가 아니었지만, 두 손이 떨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때 그곳은 미국 동부 시간으로 새벽 네 시였다. 창밖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천둥소리가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울려 퍼졌다.

이미 신문 속보를 읽기 전에 인터넷 뉴스 채널과 거의 모든 지역 방송 채널들이 긴급편성으로 한국의 상황을 중계하고 있었다. 그곳은 폭우와 번개가 아닌 거대한 악의가 큰 주먹이 되어 지상을 향해 난타를 퍼부은 것 같은 끔찍한 광경이었다. 대체 어떤 사악한 힘이 세상을 이토록 처참한 몰골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팰 수 있다는 말인가? 호지슨은 티비 화면속의 광경을 믿을 수 없어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그 힘의 실체에 대해선 짐작 가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올 것이라 믿지는 않았다. 믿음과는 상관없이 그 날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거부했다. 그만큼 그 힘의 실체는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 화면속에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면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구급차들은 레이서들이 운전하는 것처럼 화면속을 급질주하면서, 급회전하고 있었다. 그토록 많은 구급차들이 한 장소에 밀집된 것을 본적이 없었다. 그가 살아온 육십 여년의 세월동안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자연재해의 대참사 현장에 대한 소식을 접했다. 그 자신이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떤 현장도 오늘의 대참사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는 그것이 인류 종말의 전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장면들이 인류보다 더 오래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들의 재귀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현장임을, 두려움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는 백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네크로노미콘의 전 페이지를 구독한 인물이었다. 완벽한 번역과 주해를 하진 않았다.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이 세상의 종말을 좀 더 앞당기는 숨겨진 주인공이 되고 싶진 않았다. 지금의 세상이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그런 일을 맡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선배들이 부분적으로 해석한 보고서에도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이 예언되어 있었다.

그는 미스캐토닉 천문과학부가 환호성을 지르던 그 날 새벽, 머나먼 외우주에 있는 별의 주인이 눈을 뜨는 것을 꿈속에서 보았다. 그곳은 우리 인류가 토성이라고 부르는 별의 본래 이름, 시크라노쉬가 있는 곳이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게슴츠레한 눈망울을 굴리는 두꺼비 같은 모습의 신이 있었다. 양쪽 어깨에는 박쥐 같은 날개가 달려 있고, 온 몸은 기름에 젖은 축축한 털투성이였다. 역시 게슴츠레하게 살짝 벌린 입속에서 곰팡이 같은 균류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듯 한 혀의 끝이 보였다. 그 꿈속에서 눈앞의 그 흉측망칙한 것이 커다란 입을 벌리면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시늉을 취한 순간, 그는 비명을 지르면서 깨어났다. 온 몸이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대학에 출근하고 나서야 자신이 꾼 꿈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천문과학부의 소식은 순식간에 대학 전체에 퍼져 있었고, 사람들을 들뜬 기대에 젖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해 있는 문헌학부의 교수진들의 감정은 전혀 달랐다.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과 똑같은 꿈을 꾼 친구도 몇 있음을 알게 된 순간 공포의 크기는 더 커졌다. 보다 덜 민감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는 불안에 밤새 시달렸다고 했다.

거대한 천둥소리가 그의 정신을 다시 바짝 차리게 했다. 티브이 화면속에서 현지에 파견된 한국계 CNN 아나운서가 보도진들이 전한 소식을 긴급 번역한 브리핑을 정신없이 읽어나가고 있었다. 몸조차 가누기 힘든 폭우속에서 마이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폭우속에서 모자이크 처리로도 지우기 힘든 피의 흔적이 보였다. 모든 빗방울들이 피를 머금은 진홍빛을 띄고 있었다.



 

****


헤령은 자주빛 바다를 보고 있었다. 지는 해가 해변에 물들여 놓은 색이었다. 해변 너머의 붉은 빛과 백사장 너머 능선의 초록빛이 보기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조화의 정점은 오른편의 산줄기 끝자락 쪽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밤의 그림자였다. 어둠의 색채가 이제 다시는 돌아 올 수 없는 경계선을 그곳에 그어놓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녀는 이미 경계 너머로 넘어갈 준비를 모두 끝마쳤다.

그녀는 자신이 죽인 사람의 수를 곰곰이 헤아려보려 했지만,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족히 1500명은 거뜬히 넘을 것 같았다. 산술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치의 대학살을 벌이면서도 한 사람의 얼굴만은 똑똑히 기억에 남았다. 고교 동창생인 같은 학반의 최우등생이었다. 언니만큼 얼굴이 아름답고 몸매가 뛰어난 아이였다.

헤령은 그년이 자신의 뺨을 때린 사건을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을 것이다. 기말고사 시험이 채점이 끝나고 학점이 발표된 그날, 막 퇴교를 할 때였다. 그년은 갑자기 역사 과목 시험지를 헤령 앞에 내밀었다. 유일하게 헤령이 그년보다 학점을 높게 받은 과목의 시험지였다. 그년은 다짜고짜 헤령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니년이 내 시험지를 커닝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 그러니 사과해. 넌 바로 내 뒷자리였잖아.’ 그런 이유였다.

당연히 사과할 수 없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년의 손뼉이 헤령의 뺨을 후려쳤다. 오른뺨이 얼얼했다. 눈에선 물샘이 핑하게 고였다. 주위에선 아무도 자신을 동정해주지 않았다. 키득대면서 박수를 쳐대는 아이들도 있었다. 두 번, 세 번 손이 계속 그 손이 뺨을 후려쳤다. 결국 참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때에도 아무도 나서서 말려주지 않았다. 비웃음 소리만이 더 크게 들려왔다. 그 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그년이 헤령의 시험지를 찢어서 자신의 머리위에 뿌려댄 것 같은 기억만이 남아있다.

그년이 카페에 있었다. 무엇이 좋은지 절친들과 키득거리면서, 비열한 눈동자를 굴리면서 비열한 웃음을 그곳에서 짓고 있었다. 헤령은 붉은 촉수로 변한 머리칼의 한자락을 후려쳐서 유리창을 깨뜨렸다. 카페안의 사람들이 모두 비명을 질렀다. 그년과 그년의 친구들도 겁에 질려서 각자 자기 앞의 의자와 책상 속에 숨어 들려 했다. 헤령은 머리칼을 뻗어 그년의 발목을 잡아채서 자기 쪽으로 질질 끌고 오게 했다. 전율이 온 몸속으로 휩쓸려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헤령은 붉은 촉수로 그년이 입고 있던 옷을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버린 후에, 사정없이 후려쳤다. 비명의 크기가 커질수록 힘의 강도를 더 높였다. 비명이 끝난 후에 헤령은 뜬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는 그년의 얼굴을 보았다. 입가에는 침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 얼굴을 다시 머리칼로 후려치자, 부서진 벽돌처럼 안면이 함몰되어 버렸다.

그때부터 경찰차와 군용차량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보도의 한 블록을 차량들이 바리케이드를 세워서 차단하며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눴던 광경도 생각이 났다. 헤령은 머리칼의 한자락 끝에 감겨져 있던 러시아제 권총을 그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병원의 원장의가 허공에 난사했던 그 총이었다. 그것을 위협으로 받아들였는지, 경찰과 군인들이 일제 사격을 가하면서 총구에서 불을 뿜었지만, 그녀의 피부에 와 닿는 감촉은 부드러운 자극일 뿐이었다.

머리칼을 휘두를 때마다 차가 휩쓸려 나가고, 사람이 튕겨 나가고, 사람의 비명이 들렸고, 누군가의 목이 꺽여진 듯한 기분이 들었고, 누군가의 배를 그 촉수로 꿰뚫은 느낌이 들었다 그 뿐이었다. 하늘에서 아주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 길래, 손을 뻗어 벌레를 잡는 것처럼 후려쳤다. 하늘에서 추락한 것은 군용 헬기였다.

모든 것에 싫증을 느꼈을 쯤에야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그녀의 주위에는 아무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주위에 나뒹굴고 있는 것은 고물이 된 병장기들과 군용차량들, 그리고 좀비 게임에서 총을 맞고 뻗은 것처럼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 뿐이었다. 어떤 여자가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듯, 길가에서 부서진 몸을 질질 끌며 기고 있었는데, 그년의 절친중 하나였다.

헤령은 다시 머리칼을 휘둘려서 그년의 발목을 낚아챘다. 그리곤 맨홀 뚜껑을 열고 구멍안으로 뛰어들었다.

발목이 낚인 그년도 끌려들어왔다. 그년은 착지부터 좋지 못해 맨홀에 빠질 때부터 목이 꺾여버렸다. 헤령은 그 시체를 머리를 감고 하수도를 헤엄쳤다. 캄캄한 하수도였지만 그녀에게는 그곳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빛이 보였다. 더 큰 희열을 만끽할 순간이 가까이 오고 있었다.

마침내 해가 바다 너머의 어둠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하는 기울어져 가는 만월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만월 또한 못지않게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 저편에서, 머나먼 우주의 저편에서, 그리고 아득한 심해의 한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들의 존재는 아득한 저 멀리 있지만, 그녀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간들의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픔도, 후회도, 미련도, 심지어는 기쁨조차 아니었다. 그저 떠나는 것일 뿐이었다.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떠나는 것과 똑같을 뿐이었다.

그녀는 미지의 해저를 향해서 헤엄을 쳤다. 수많은 머리칼과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해서, 그녀는 얀스레이의 깊은 심연을 향하여 나아갔다. 지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기분 좋고 평온한 호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그녀는 헤엄쳐갔다. 불멸의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얀스레이의 깊은 심연을 향해서. 거석과 원기둥이 즐비한 도시에 잠들어 있는 고대의 신들이 있는 곳으로. 한편으로 어머니 슈브 니구라스와 아버지 요그 소토스가 있는 외우주의 머나먼 차원으로.

저 먼 곳에서 그녀를 부르고 있는 존재들의 소리가 이제 가까이, 더 또렷이 들려왔다. 이아. 이아. 크툴루 파탄. 이아. 리예 크툴루 파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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