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 토한 이야기 (스압 주의,더러움 주의)
게시물ID : menbung_3708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0030ZII
추천 : 2
조회수 : 48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06 01:32:29
옵션
  • 창작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20대를 참으로 건강하게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파서 병원 갔던 적이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간단한 치과 치료였고

나머지 한 번이 바로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당시에 육체적 고통과 더불어

나름 튼튼한 내 멘탈이 와르르 무너졌으므로

멘붕게에 쓰기로 함.

 

그 날은 어버이 날이었다.

사실은 어린이 날 쯤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약을 사다 먹고 있었는데

이게 나을 듯 말 듯 사람을 살살 약올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어버이 날 이브 때

부모님 선물을 사러 퇴근하고 동네 상가에 들어갔는데

나는 내가 무슨 초능력이라도 생긴 줄 알았다.

말하자면 프로 스멜러...랄까?

그 상가 안에서 나는 모든 냄새들이 디럭스화 되어서

내 코로 맹렬히 돌진해 왔다.

화장품 냄새, 새 속옷 냄새, 서점 종이 냄새, 반찬 냄새,

심지어 복도 구석에 있는 화장실 냄새까지

먼저 내 코에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을 쳐대는 통에

머리가 핑 돌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흔들리는 몸을 겨우 부여잡고는

선물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출근 하시는 부모님께

어제 산 선물과 약간의 애교를 덤으로 드리고

두 분을 배웅한 다음

잠깐의 쪽잠을 자려고 침대로 다시 들어갔을 때

내 몸이 서서히 불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온 몸이 뜨거워졌고 눈앞이 뱅뱅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어깨에 커다란 돌덩이를 짊어진 듯

천근만근 가라앉고 있었다.

또 양쪽 볼이 서서히 부어오르면서 아팠는데

그제서야 내가 어릴 때 볼거리를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속까지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며칠 동안 음식 공급을 많이 받지 못한 것을 시위라도 하듯

내 위는 쉴 새 없이 출렁출렁댔다.

이건 100% 오바이트각이었다.

 

움직여야 했다.

아무리 속이 뒤집어져도 방에서 사고를 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거기다 뒷수습도 내가 다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화장실을 향해서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나는 분명히 2족보행을 하는 어엿한 인간인데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돌쟁이 아기보다도 못한

네 발 짐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날 나는 걸어서 몇 발짝 안 되는 화장실까지

1분 넘게 기어갔다,

위에서는 커다란 돌덩이가 어깨를 질끈 누르고 있고

뒤에서는 누군가 내 다리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었다.

기어가다 중간에 엎어져서 못 일어나기도 했다.

 

천신만고 끝에 화장실에 도착.

그날따라 늘 보던 변기가 어찌 그리 사랑스러워 보이던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변기를 끌어안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 역류했고

그 순간 나는 잠시 후 펼쳐질 대참사를 차마 볼 용기가 안 나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우웨에에에에ㅔㅔㅔㅔㅔ!!!”

(나를 토해 베오베로 추... 아 이게 아니지;;;;)

 

잠깐의 정적.

그리고 뭔가 시원하고 후련한 기분.

눈을 떴다.

 

?

이게 뭐징?

분명히 뭔가 내 속에서 나왔는데 내가 예상했던 그것(?)이 아니었다.

분명 그것은 알록달록한 색깔과 버라이어티한 모양들이

넓게 퍼져 있어야 정상인데

지금 내 눈앞에 둥둥 떠 있는 이것(?)은 단색이었고 모양도 일정했다.

둥그렇게 뭉쳐져 있는 빨간 뜨개질 털실같은.

그건 핏덩어리였다.

그러니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를 토한 거였다.


세상에...

몸이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눈앞이 노래지는 와중에도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물 내리는 것도 잊고 한참을 구경했다.

예전에 과음을 이기지 못하고 몽땅 게워 냈을 때

내려가지 않고 끝까지 홀로 남아 떠다니던

씹다 만 김치 조각 구경 할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TV를 보면 각혈 하는 장면에서

대부분 액체로 된 피를 토하는데

내가 토한 건 말 그대로 덩어리였다.

붉고 둥근.

순간 피콜로 대마왕이 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알 같은 덩어리를 토하다니.

색깔은 다르지만.

둥근 모양에 선명하고 도도한 붉은 빛깔.

실핏줄 같은 것들이 덩어리를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녀석이 내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어느 새 울령거림이 멈추어져 있었다.

피를 토하는 것이 밥을 먹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 아니고

더군다나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하기도 했고 걱정도 되고 두려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뭔가 큰 병을 암시하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

 

순간 갈등을 했다.

이걸 한 번 만져 볼까 말까.

변기물에 손 넣는 것이 찝찝해서가 아니라

덩어리를 만졌을 때 퍽!하고 터져서

변기 안이 온통 핏물로 번지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카메라가 있었다면 기념으로 찍어서 남겨 두는 건데.

다시 방까지 기어가서 도로 화장실로 돌아올 엄두가 안 나서

포기해야 했다.


한동안 넋 놓고 구경하다가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내 분신(?)같은 덩어리야 안녕.

녀석은 나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세찬 변기물을 맞으면서도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다가 꾸라랏!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그 날 오후 친구의 부축을 받아 질질 끌려가다시피 병원으로 갔고

거기서 <볼거리 몸살 + 급체 = 3콤보>라는 진단을 받았다.

체온은 39.8도였고 2시간 동안 링거를 맞았다.

아침에 피 토한 얘기를 했더니

열이 많이 나면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이후 3일 동안 물과 죽 이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4일째 되던 날 겨우 밥 한술 뜰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이 완전히 회복 되는데 한 달 정도 걸린 것 같다.

 

당시에 나는 워커 홀릭이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일을 했다.

음주를 즐겼고 건강을 돌보지 않았다.

피 토하는 건 TV에서나 나오는 환타지라고 생각 했는데.


아프기 전에는 좀 뚱뚱한 편이었는데

회복하고 나서부터 살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날씬한 몸매가 된 건 자랑.

 

그날 아침에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아퍼 아퍼 엉어어어어어어ㅓㅓㅓㅓ.”

하고 운 건 안자랑ㅠㅠ

 

우리 징어 여러분 건강관리 잘 하세요.

 

 

 

 

 

 

 

 

 

 

 

 

 

 

 

 

 

 

 

 

 

 

 

 

 

출처 나의 기억과 그 날의 일기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