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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부 연쇄살인사건 혹은 정남규 사건
게시물ID : panic_9166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99콘(가입:2011-03-08 방문:3388)
추천 : 23
조회수 : 5396회
댓글수 : 25개
등록시간 : 2016/12/01 2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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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글에는 실제일어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기에 잔인한 묘사와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잔인한 묘사와 글이 거북하신 분들께서는 읽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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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소개해 드릴 이야기는
    13명을 살해하고(14명이라고 나오는 곳도 있습니다) 33명의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정남규 사건을 이야기 할까합니다.
     
    그는 어린시절 알콜중독의 폭력적인에서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가정이 경제적인 상황 또한 좋지 않을거란건 누구나 다 예상가능하실겁니다.
    알콜중독의 무능력한 아버지....그걸 해결해야 하는건 어머니의 몫이였을테고
    자식들이 부모의 어느 누구에게라도 따듯한 사랑을 받는건 힘들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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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어린시절 상당히 얼굴이 곱상하게 생긴 외모때문에 여자아이로 자주 오해를 받았는데
    그가 초등학생때 동네 주민으로 부터 강간을 당하하고 이후에도 몇번의 성희롱, 성추행을 당합니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과 어린시절의 끔찍한 사건들로 인해 정남규의 성격은 내성적이었고
    그런 성격탓에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배들의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렸고
    따돌림과 폭력은 그를 보호해야할 교사들 조차도 예외가 아니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정남규는 23살의 나이로 군에 입대를 하게 되는데
    군에서도 그의 성격이 바뀔리 없었고 군복무중 고참들과 심지어 동기들에게 조차 구타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후임병들에게 조차 기수열외를 당했다고 합니다.
    (기수열외란 선임병을 후임병들이 선임병으로 대우해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군대의 왕따)
    전역후 정남규는 사회생활에서도 적응하지 못했고 그런 정남규에게 일자리를 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70대의 노모, 누나와 함께 살았지만 가족누구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유일한 수입이라곤 노모 이름으로 된 낡은 주택에서 나오는 월세 55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이었습니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던 중
    2004년 1월 놀이터에 놀고 있던 두 남자아이를 근처 야산으로 유인해 강간하고 목졸라 살해후 암매장하는데
    (어릴때 마을 주민에게 당한 강간때문에 아이들을 강간후 살해 했다고 진술하기도 합니다) 
    이때부터 그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시작됩니다.
    (이사건으로 인근에 살던 중학교 2학년 박모군(당시14살)을 살인용의자로 긴급체포하게 되는데 
    이때 박모군의 진술이 전부였고 그 진술또한 신뢰성이 떨어졌으며
    당시 목격자의 진술(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스포츠머리의 170cm의 30대 남성이라고 진술함)이
    무시 되었다는게 밝혀져 무리한 강압수사라고 욕을 자배기로 먹습니다
     
    2004년 2월6일서울 이문동 골목길에서 귀가하던 전모씨(24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이문동 살인사건은 유영철이 경찰에서 자신이 저지른 범죄라고 자백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후 경찰의 무리한 끼워넣기 수사라며 언론의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기도 합니다.)
     
    2004년 2월10일 새벽 우유배달을 하던 손모씨(여 당시28세)가 둔기로 때려 살해
     
    2004년 4월 22일 구로구 고척동에서 피해자 김모양(당시20세)를 집앞에서 흉기로 찔러 살해
     
    2004년 5월 9일 보라매 공원에서 귀가하던 여대생을 흉기로 10곳이 넘는곳을 찔러 살해
    (이때 칼에 찔린 피해자는 칼에 찔렸다고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하지만 도착당시에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2004년 5월 13일 서울 대림동에서 조선족 김모씨를 김씨의 가게 화장실에서 옆구리와 가슴에 4곳에 칼에 찌르고 도주
    김모씨는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사망합니다.
     
     
     
    위에 언급한 살인사건 이외에도 살인미수에 그친 상해사건이 몇건 더 있는데
     단기간에 살인을 저지르고 다녔으니 언론에서는 연쇄살인사건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고
    정남규 또한 몸을 사렸는지 2005년이후로는 살인사건이 현저히 줄어 듭니다.
     
    2005년 5월30일 우유배달 중이던 재중동포 41세의 김모씨(여)의 목과 배를 찔러 살해
    (2004년 2월10일 우유배달 중 사망한 손모씨가 사망한 곳과 불과1km 떨어져 있는 곳)
     
    2005년 10월 19일 봉천동 자신의 집에서 자고있던 변모씨(당시 26세)를 성추행 후 사망 외 1명을 둔기로 가격 후 방화 
    (기사에 따라 방화 내용이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습니다)
     
    2006년 1월 18일 새벽 자신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송모양을 성추행 후 살해 방화
     
    2006년 3월 27일 관악구 봉천동의 주택에 침입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세 자매를 성추행 후 둔기로 내리쳐 2명 사망 1명 중상
     
    이렇게 멈출줄 모르던 그의 살인이 멈추게 된건
     
    2006년 4월 22일 서울 영등포 신길동의 한 주택에 들어가 평소와 같이 피해자 김모씨(당시 24세)를
    둔기로 가격하던 중 피해자의 저항과 소리를 듣고 뛰쳐나온 아버지와의 격투끝에 검거 되는데
    어이없게도 사건 발생후 30분 뒤에 경찰에 체포 중 도주 하게 되는데 
    2시간 후 동네 주민의 신고로 검거됩니다.
     
    그는 검거되면서 혼잣말로 '완전범죄는 끝났다' 라는 말을 하게되는데
    이말을 들은 형사가 예사 사건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꼈다고 합니다.
    검거 후에도 삼시 세끼 꼬박 꼬박 규칙적으로 밥을 잘 드신건 물론이고
    그동안의 피곤함(?) 때문인지 7시간 넘게 숙면을 취하고 경찰에게
    이제껏 태어나서 이렇게 먹고 자고 말을 많이 하고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신은 내성적이고 대인기피증까지 있었는데 이렇게 관심을 받아 기분이 좋다고 말하기도 했고
    조사과정에서 나온 정남규의 말에 따르면 13명을 살해 33명에게는 중경상을 입혔다고(중상 20명) 말하는데
    그는 "억울하다" " 죽이고 싶었다 천명을 채워야 하는데 못채워서 억울 하다"
    "신은 나를 버렸다" "옆방의 큰놈부터 처리했어야 하는데" 등등의 말을 하기도 합니다. 
    방을 압수수색 결과 자신의 사건을 다룬 기사를 꼼꼼하게 스크랩 하고 있었고
    과학수사에 관련된 잡시를 구독까지 하면서 꼼꼼히 공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건을 조사했던 형사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의 프로파일링을 어떻게 하는지 보고 있었고
    그쪽 분야에 굉장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에게 미안하지 않느냐?" 는 질문에도
    단호하게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면 그 짓을 했겠느냐? 라고 되물었고 죄의식 같은 것들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3
    조사중 범행 당시의 행동이나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물어 볼때면 눈빛이 굉장이 날카로워 졌고
    심지어 현장검증을 끝내고 돌아가던 길에는 취재진들을 향해 웃음까지 보였다고 합니다.
    검찰 송치직전에는 묻지도 않은 범죄 (이문동 여대생 살인사건)을 언급하면서
    내가 했는데 유영철이 했다고 언론에 나와 기분이 나빴다라고 말하기도 해 당시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들을 기막히게 만들기도 하고
    유영철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유영철을 전문성이나 완전범죄 면에서 자신보다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하기도 했고
    살해수법이 바꾼이유가 수사의 혼선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살인을 할때 즐겁다는 말과 피에서 나는 냄새가 향기롭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재판장에서는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체포후 2007년에 사형이 확정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는데 2009년 11월 구치소 독방에서
    목을 메달아 자살을 기도한것을 교도소 근무자가 발견하여 병원으로 옮기지만 다음날 사망합니다.
    (그가 목을 메단곳은 1m높이의 선반에 비닐봉투를 꼬아 만든 끈으로 목을 메달았다고 합니다) 
     
     
    자신보다 약한 피해자들만 노렸던 정남규
    상당수 사람을이 그저 싸이코패스 연쇄살인마 혹은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 정도로 알고 있지만
    범행의 대상이 힘없는 무방비 상태의 여성이고 그가 했던 말중에 하나를 소개해보자면
    "어린시절 자신을 괴롭히던 순간 아무 저항도 못하고 빨리 이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고 말한 정남규를 볼때면 
     
    온갖 말로 허세를 부렸지만 욕도 아까운 
    한없이 소심한 겁쟁이에 비겁한 ㅄ 관심종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끝으로
    지금까지도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피해자분들과 가족들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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