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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세상의 어떤 종말
게시물ID : panic_9462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묻어가자
추천 : 13
조회수 : 1324회
댓글수 : 5개
등록시간 : 2017/08/07 07:25:05
어느날, 인류는 영생을 누리게 되었다
이미 내 친구들은 모두 불멸의 몸을 가지고 있었고
나는 이렇게까지 늦게 영생을 미루고 있었다
어떤 공포심 때문이겠지
컴퓨터를 하다보면 친구들이 이따금 찾아와서 
어서 빨리 너도 오라고 권유한다
사실 컴퓨터를 하지 않아도 사방이 컴퓨터라서
친구들을 피할 수가 없었다
컴퓨터는 너무 작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필 정도의 크기는 
컴퓨터가 10만 개 이상 들어갈 수 있는 부피였다 
내 신발은 전부 컴퓨터였다
컴퓨터가 결합하여 신발이 된 것이다
그것은 신발이자 동시에 컴퓨터였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차를 몰았다
차역시 컴퓨터였다 
1000억 개도 넘는 컴퓨터로 이루어진 차였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도, 철썩 거리는 파란 바다도,
하얀 뭉게구름도, 모두 컴퓨터였다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구는 전부 컴퓨터였고 화성도, 금성도, 태양도,
우리 은하계도, 주변의 모든 은하계도
전부 컴퓨터였다
컴퓨터는 자기 복제를 하듯 
모든 물질을 컴퓨터로 바꾼 것이다
친구들은 컴퓨터 세상에서 데이터화되어 살아갔다
이 모든 세상이 컴퓨터였으니
친구들은 도저히 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백업을 수십 수백개는 만들었다
백업은 우리 은하에도 있고
다른 은하에도 있고
우주 어디에도 있었다 
우주가 종말하지 않는 이상 사람이 죽을 일은 없었다
나는 두려웠다
어쩌면 죽지 않는다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친구들이 나를 데려가려고 한다 
영생의 세계로.
정보화된 세상으로.
나는 파도가 철썩거리는 모래사장에 누워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모래가 움직이더니 내 팔을 내 다리를 모두 컴퓨터로
바꾸고 있었다
바뀌어버린 내 몸에는 친구들이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나도 내 몸에서 살아갈 것이다.
컴퓨터는 점점 내 장기들을
내 심장을 바꾸어놓았고
그리고 결국에는 내 머리까지 도달했다
나의 지식과 기억과 성격이 모두 정보화되며
파도 같은 울렁거림을 느꼈다
이윽고 모든 과정이 끝나자
나는 모래사장에서 일어나 다시 차를 향해 걸었다
나의 몸과 정신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나는 전부 컴퓨터였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의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고
우주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다
이 이상한 진실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어쩌면 정보화되는 과정 중에서 죽은 것이고
지금 보는 세상의 모습은 컴퓨터가 만든 환상이 아닐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난 다시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갔다
거대한 컴퓨터 산이 보였다 
혹은 산 모양의 환상일 수도 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꼈다
이것도 어쩌면 세상의 어떤 종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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