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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공포15 <소설6월10일>
게시물ID : panic_9857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빛나는길
추천 : 2
조회수 : 52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8/06/01 09: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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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15. 저녁 6시만 되면 들려오는 팝송
 
 

청량리 로터리에 위치한 제과점에서 주고받는 예전 고등학교 시절, 서울 전학생 폭행 사건을 듣고 있던 최성식의 표정이 밝지 않다. 눈치 없는 김용수만 신나게 떠들고 있다.
그때 정훈이 덕분에 나도 반성문을 쓰지 않고 석방됐지. 으흐흐~”
최성식은 진지하게 이정훈에게 묻는다.
정훈아, 내가 왜 경찰이 되려고 했는지 아니?”
이정훈이 모르겠다고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최성식이 조용히 말한다.
그때 여수 경찰서 그 형사 손가락 하나에 너희들 앞길, 운명이 걸렸다고 생각하니 그 사람이 그렇게 멋져 보이더라고. 등록금 겨우 내는 우리 집 형편에 내가 살아갈 길은 이거다 싶어서 경찰대학을 간 거야.”
그리고 최성식이 담배 한 개피를 피워 물며 속 깊은 얘기까지 털어놓는다.
서울에서 전학 온 걔들 아버지 공장에서 우리 아버지가 그 당시 일용 잡부로 일하고 있었어. 내가 걔들한테 꼬봉처럼 굽신거렸던 내 처지를 니가 이해해주기 바란다.”
당연히 이해한다.”
그런데 김용수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둘 사이 대화에 끼어든다.
성식이는 그때 형사가 멋있다고 했지만 나는 정훈이가 어른처럼 보이더라고. ‘반성문 쓰지 않겠습니다.’ 우와! 독립투사 보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정훈이 할아버지가 여수 대지주였는데 독립운동 자금 대는 바람에 전 재산 다 날렸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어.”
그런 얘기해서 뭐하니?”
이정훈이 이제 그만하자고 김용수 말을 끊지만 김용수는 계속 말을 한다.
정훈이 너는 억울하지도 않아? 독립운동 하다가 할아버지가 감옥도 가시고 재산도 다 날리셨는데…….”
억울한 건 없고.”
이정훈이 잠시 한 호흡 쉬었다가 얘기한다.
우리가 공격했던 서울 전학생 중에, 한 명의 할아버지가 일제 때 고등계 형사였다고 여수 경찰서장이 나와서 쩔쩔매는 걸 보면서 그놈들 때리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었어.”
이정훈 얘기에 최성식도 마지못해 씁쓸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갑자기 제안한다.
내가 서울 놈들 연락처 아는데 우리 고등학교 동문회 한번 할까?”
걔들 뭐하는데?”
전문대학인가 다니다가 미국 유학 준비한데, 미국 가기 전에 동문회 내가 한번 만들어볼게.”
최성식의 미국 유학이라는 말에 이정훈의 귀가 솔깃해진다.
김용수가 이정훈에게 남은 빵 하나를 권하며 얘기 한다.
잘 사는 분들은 세상 참 편하게 사는구먼. 미국 유학이라……. 부럽다. 우리 정훈이도 맘만 먹으면 미국 유학 갈 수 있는 거 아냐?”
미국 유학 가는 거 쉽지 않아. 그러면 다음에 또 보자. 내가 다른 약속이 있어서 그만 갈게.”
그래, 같이 나가자.”
최성식이 테이블 위에 있는 무전기를 챙기며 일어선다.
정훈아! 어디로 연락하면 돼? 전화번호 알려줘.”
김용수가 메모지와 볼펜을 꺼내며 묻는다.
신림동 고시원에서 공부하는데 전화 사절이야. 용수, 니 연락처 알려주면 내가 연락할게.”
김용수가 자기 사는 집 전화번호를 메모지에 적어 이정훈에게 건네준다.
다시 거리로 나온 3명은 인사를 나누고 서로 헤어져 걷는다. 최성식과 김용수는 청량리 로터리에 주차해있는 전투경찰버스로 향하고 이정훈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며 생각한다.
우리 셋이 살아가는 방법이 가난한 민중의 아들들이 걸어가야 하는 길인 거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이정훈이 버스를 타고 잠실 비밀 아지트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린다. 라면을 사러 슈파마켓에 들어가며 주인 아저씨한테 인사를 한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어서 와, 요즘 회사 일이 바쁜가 봐. 늦게 퇴근하네?”
, 미국에 수출할 물건이 너무 많아서요.”
라면을 고르는 이정훈 옆으로 6살짜리 주인의 손녀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아저씨, 이거 봐! 회장님이 하는 거야.”
손녀가 KBS 프로그램 <유머 1번지> 회장님 코너에서 개그맨 김형곤이 하는 유행어와 동작을 해 보인다.
여러분! 잘 될 턱이 있나!”
늙은 회장의 목소리까지 굵게 흉내 내는 손녀에게 이정훈이 손뼉을 쳐준다. 라면을 사고 슈퍼마켓을 나오면서 이정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개그맨이든 가수든 뭐든지 금방 따라 하는 똑똑한 아이다. 고향에 있는 누나 딸이 한 살이 되는데……
이정훈이 보안수칙대로 살고있는 연립주택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미행자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연립주택 1층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먼저 손을 쑤욱 내민다. 이정훈이 깜짝 놀란다. 여기 연립주택에 사는 술 취한 호스티스가 자기가 먼저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이 여자는 4층에 살고 있다. 이 여자가 바로 저녁 6시만 되면 오오오오오하는 팝송을 틀어놓는 장본인이라는 걸 이정훈이 알고 있다. 진하게 풍겨오는 술 냄새, 자신의 직업을 이 여자가 말한 적은 없지만, 외모와 평상시 출퇴근 시간으로 봐서 짐작됐다. 오늘은 퇴근이 엄청 빠르다. 아직 저녁 10시도 안 됐는데…… 여자가 비틀거리며 4층에 올라간다.
저녁 6시만 되면 틀으시는 팝송 제목이 뭔지 물어봐야하는데…….”
이정훈이 혼자 허탈하게 웃는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5, 화장실에서 이정훈이 김영철에게 뭔가를 건네준다. 청량리 로터리 지역 시위약도를 그린 종이다. 김영철이 그 종이를 상의 안주머니에 넣고 총학생회 사무실로 간다. 거기에 있는 복사기로 그 약도를 복사하려는데 종이가 계속 걸린다. 고장이다. 그러자 김영철이 가방을 들고 법학과 사무실로 간다. 김영철이 문을 노크하고 들어간다.
조교님, 안녕하세요?”
김영철을 반갑게 맞아주는 남자가 법학과 79학번 조교다.
영철아! 밥은 잘 먹고 다니니?”
, 조교님이 종종 주시는 용돈으로 밥 잘 먹고 있습니다.”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을 낀 조교는 이정훈, 김영철이 소속된 사회문화연구회 선배이기도 하다. 이정훈이 입학하기 전, 1981, 학내 시위를 주동해 군대에 강제 입대, 징집을 당했던 학생운동 선배이기도 하다.
전공 책 조금만 복사해도 될까요?”
김영철이 가방에서 영문학 원서를 꺼내 보인다. 조교의 허락을 받고 그 책 사이에 끼워져 있는 청량리 로터리 시위 약도를 10장 정도 복사한다.. 조교는 편하게 복사하라고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학과장 책상 쪽으로 몸을 옮긴다. 청량리 지역 시위약도 복사를 다 마친 김영철이 그 종이들을 영문학 원서 책갈피 사이에 끼어 넣는다.
복사 다 했습니다.”
영철아, 내가 언제 맛있는 점심 한번 사줄게.”
우와, 말씀만 들어도 배가 부르네요. ~ 감사합니다.”
김영철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 ‘대머리단어는 1980년대 파쇼정권의 전두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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