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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브금주의]어느 봄날의 이야기
게시물ID : panic_4094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계피가좋아
추천 : 6
조회수 : 1302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3/01/13 17:53:39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ldDW3






“♪ ♬~”


‘멘델스존 론도카프리치오소’


10평 남짓한 방에서 조용히 울리는 음악소리에 기범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마 전 거금을 들여 구입한 고급 스테레오에서는 피아노 건반의 낮은 부분까지 손상되지 않은 깔끔한 음질

로 듣는 기범의 마음을 조금 더 편안히 만들었다.

눈을 감고 조용히 음악을 듣던 기범은 어느새 연필을 잡고 음악소리를 따라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악과 하나가 된 듯 움직이는 그의 손은 마치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를 연상케 했다. 큰 움직임이 없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의 손을 통하여 하얀 종이 위에는 어느새 평화로운 마을이 그려져 있었다.

조용하게 흐르던 음악에서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갑자기 음악이 바뀐 듯 빠르고 짧은 스타카토 위주의 음

악이 시작되었다. 음악이 빨라짐과 동시에 기범의 움직임도 함께 빨라졌다.

쉬지 않고 계속되는 음악을 따라 종이가 한 장 한 장 늘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화려한 마무리까지 완

전히 연주되어 더 이상의 음악이 나오지 않게 되고도 몇 분 동안 움직이던 손을 멈추지 않던 기범은 8장의 

종이에 그림이 완전히 그려졌을 때 비로소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우....”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고도의 집중력과 쉬지 않는 움직임 때문이었을까 기범은 들고 있던 연필을 

내려놓으며 긴 한숨과 함께 옆에 있던 담배를 집어 들었다. 이러한 작업과 그 후에 이어지는 담배를 태우

는 행동은 그에게 익숙한 듯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러웠다. 폐 깊숙이 들어오는 담배연기에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며 긴장했던 그의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나른함이 싫지 않은지 의자를 뒤로 젖

힌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음악, 미술성적우수자 최기범.”


“오~”


모든 과목의 성적우수자를 불러주던 선생님의 입에서 기범의 이름이 호명되자 반 아이들은 일제히 그를 쳐

다보며 감탄사를 날렸다. 반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되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나가는 기범은 살짝 미소를 지

었다. 


“잘했다. 그런데 기범이 너는 음악하고 미술만 하지 말고 수학하고 영어도 좀 해야겠다? 완전 양을 치던

데?”


“와하하하”


선생님의 농담에 반 아이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얼굴이 달아오른 기범은 상장을 낚아채듯 빠르게 잡고 자

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장을 만지작거렸다.

전교에 5% 안에 들면 주는 성적우수자 상장을 기범은 1학년 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특별히 노래를 엄청나게 잘하거나 시험성적이 무조건 만점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타고난 귀가 있었으며 

그것을 표현할 그림실력이 있었다. 평소에 그림을 그리라고 시키면 뛰어나다 싶을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있

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음악을 듣고 그리는 그림을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의 재능이 제일 먼저 발휘된 때는 그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그가 쇼팽의 혁명을 듣고 그린 그림은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하였고 그전까진 그저 조용한 학생 중 하나였

던 기범은 학교 전체에서 예술의 신동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도 그러한 별명이 싫지 

않은지 가끔씩 음악을 들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그 음악에 맞는 그림을 그려주었다.

하지만 그의 예술성은 대학이라는 진로에서 한 번 꺾일 수밖에 없었다. 음악과 미술을 제외한 나머지 과목

에서 항상 뒤처지던 그는 다른 공부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며 완전한 음악도 아니며 완전한 미술

도 아닌 조금은 애매한 자신의 예술성에 맞는 학과를 찾지 못하여 결국 대학진학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진학에 포기한 그가 절망에 빠져 방황하고 있을 때 그를 구원시켜준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그가 두 번째 미술 응모전에 지원했을 때 심사위원 이었던 대학교수였는데 그의 작품이 맘에 든다며 그에

게 맞는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었고 매주 잡지에 실릴 그림이나 전시회 등에 전시될 그림을 그려주는 일을 

그는 몇 년간 성실히 했다. 그 결과 지금의 그는 많지는 않지만 부족하지 않는 월급에 자신만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치익...”


거의 다 태운 담배를 짓눌러 마지막 불씨까지 완전히 끈 다음 왼손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그린 그림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며 옆에 걸려있던 옷들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옷을 다 입고 거울을 보며 얼굴을 찡그려보고 다시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리곤 뭔가를 잊은 듯 턱을 긁적이

다 생각이 난 듯 구강청정제를 입에 몇 번 뿌렸다. 입안을 맴도는 박하향기에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

며 집을 나섰다. 이제 막 시작된 4월의 날씨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하였다. 적당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습하지도 건조하지도 않은 그러한 황금 같은 날씨 속에 기범은 표현 못할 약간의 기쁨을 느꼈다. 자신이 있

는 이 도시 속이 날씨에 맞지 않는 것이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나름의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이었

다. 며칠 전 모르는 전화를 받았을 때 아무런 서두도 없이 그와 맞는 직업에 관심이 있다면 정해진 장소로 

나오라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아무런 격식이나 예의도 차려지지 않은 전화였기에 조금은 불쾌함을 느꼈지

만 여태껏 그가 찾지 못했던 자신에게 맞는 직업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평소에 입지 않던 조금은 단정한 옷을 입고 약속 장소로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딸랑 딸랑”


기범은 골목길에 있는 작은 카페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페에서는 그에 알맞은 깔끔한 인테리어와 조용하

고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범은 혹시나 자신이 약속시간에 늦었을까 시계를 확인하고 아직 약

간의 시간 여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창문이 있는 구석자리에 앉아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였다. 그리곤 이내 

가지고온 메모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악에 집중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기범은 누군가 와서 자

신의 어깨를 두드릴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툭툭’


“어....?”


“안녕하세요~”


정신없이 그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반대편에 앉는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긴 생머리를 뒤로 묶고 약간은 갸름한 턱에 동그란 눈매를 가진 그녀는 기범을 보며 배시시 웃었

다. 전화로 들었던 자신감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한은서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전화 드렸었죠?”


“아... 예... 최기범이라고 합니다.”


“전화로 연락드려 다짜고짜 일방적인 통보만 해서 죄송해요. 왠지 이렇게 안 하면 나오실 것 같지가 않

았거든요...”


그녀의 말은 맞았다. 만약 그녀가 횡설수설 이야기를 했다면 아마 기범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런 점에 끌려서 나왔습니다. 저도 돌려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아 그렇다면 얘기가 길어지기 전에 마실 것 하나만 주문하고 올게요.”


“네 그러세요.”


자리를 일어나 주문을 하러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기범은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그는 어느 순간부

터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하여 그 사람의 기분이나 말의 진실성 등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지금 들은 그녀

의 목소리에서는 알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여러 감정들이 들어있었다. 

보통 사람은 말을 할 때 한 가지 내지 두 가지의 감정이 섞여있다. 이를테면 기쁨이나 슬픔 혹은 거짓말을 

할 때의 목소리에서는 불안감과 공포라는 감정이 섞여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녀의 경우는 무엇인가 특별했다. 그녀의 말에서는 기쁨과 슬픔 불안감 등의 여러 복잡한 감정들

이 섞여있어 기범은 그녀의 진심을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그가 봐왔던 사람들과는 다른 경우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그것에 신경을 끄기로 했다. 주문을 마치고 커피를 가지고 온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제가 사적인 자리에서 기범씨를 만났다면 날씨가 좋다거나 커피를 좋아한다 등의 쓸데없는 이야

기로 시작을 하겠지만 지금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바로 본론만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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