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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9 0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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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반을 양반이게 하는건 오랫동안 과거였고 족보가 보조적인 수단이었습니다.
그러다 평민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양반을 사기 시작하면서 1차로 양반의 지위가 위협을 받았고 2차로는 갑오개혁으로 신분이 철폐되면서, 가장 결정적으로는 6.25에 의해 무너집니다.
이 중 3차를 제외하면 점진적으로 잠식되는 상황이었는데 과거도 없어지고 족보의 신뢰도 떨어져가는 상황에 양반으로서의 권위(?)를 관혼상제를 뻑적지근하게 해서 채우려는 시도가 허례로 발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시도들은 구한말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언제 급격하게 퍼졌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3공때 그나마 경쟁적으로 하던걸 줄이겠다고 가정의례준칙이란게 생기는데 그게 이미 부풀어버린 사례들을 정리하는 수준이어서 오늘날 보기엔 소박과는 거리가 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