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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85 2015-03-10 14:26:48 51
“방탄 개” 주인 지키다 머리에 총 맞은 개 [새창]
2015/03/10 07:06:32
1111 마스티프 과의 견종이 여러가지있는데...기본적으로 마스티프 라고하면 초초초초 대형견입니다... 가끔 사람죽였다는 기사도 나옴;

아는동생이 선물받아서 예전에 관심있게 지켜본적있어서 알게됐어요 저도...완전 사자같음;
6384 2015-03-10 14:24:33 9/12
“방탄 개” 주인 지키다 머리에 총 맞은 개 [새창]
2015/03/10 07:06:32

1 사진보니 머리는아니고 어깨관통인듯.

머리는 빗겨맞은듯..
6383 2015-03-10 14:21:25 2
원딜로 브론즈 탈출하기 : 딜량 1위 생존왕 [새창]
2015/03/10 01:37:01
한편으론..심해 얼마나 개고생을 했을까..상상이되서...웃픈.....
6382 2015-03-10 14:15:22 105
“방탄 개” 주인 지키다 머리에 총 맞은 개 [새창]
2015/03/10 07:06:32

마스티프 믹스견이라 그런가 용감하네;;;역시 마스티프 피는 못속이는듯.
6381 2015-03-10 13:57:23 38
박근혜 저격 래퍼 괜.찮.아.요?… 시국선언 풍자랩 신변 걱정 잇따라 [새창]
2015/03/10 12:22:31
대'박' !!!!!!!!!!!!!!!!!!
6380 2015-03-10 13:50:17 13
진짜 보수우익과 가짜 극우보수의 차이. 그리고 노무현 [새창]
2015/03/10 13:32:37
진짜 노무현대통령님 연설은 기승전결 진짜 대박인거같아요.

은연중에 나오는말속에서 그사람의 영혼이 보인다고....말은 아무리 꾸미려해도 그속에서 발산하는 영혼은 숨길수가없음...
6378 2015-03-10 12:06:28 7
한국 최초의 전투기는 바로 이것!!! [새창]
2015/03/09 19:24:51
기독교범 죄자 많다 그러면..."그건 정말 해선안될 짓이 였다 용서받을수없다 " 라는 말을 먼저해야지...

"불교도 범죄자 만던데??" 이지랄............. ㅡ_ㅡ

할말 없는 사람이

존심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가 물타기임.
6377 2015-03-10 11:53:51 0
[단독] 김무성, '친일' 백선엽에 거수경례 "장군님은 한미동맹 상징" [새창]
2015/03/06 20:02:28
--
일제의 패망은 그 밑에서 부일(附日)했던 친일파 조선인들, 특히 직접적으로 항일 운동의 진압에 종사했던 조선인들에게는 파멸의 의미했을 것이다. 백선엽은 이러한 파멸을 앞에 두고 신속하게 대처한다.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했을 때 그는 소련군을 따라온 한인 통역에게 조선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조선은 곧 독립된다. 국호는 동진(東震)공화국이 될 것이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붙잡혀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빨리 고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하순, 그는 부인과 함께 그곳을 떠나 도보로 고향을 향했다. 그는 연길과 용정(龍井)을 거쳐 무산(茂山)에서 두만강을 건너 동해안 성진(城津)으로 향했다. 성진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교통수단을 찾았으나 해방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교통은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계속 동해안을 따라 함흥(咸興), 고원(高原)까지 내려온 다음, 태백산맥으로 들어가 양덕(陽德)을 거쳐 9월 말 평양에 도착했다. 소련군을 피하기 위해 그는 1개월에 걸쳐 장장 800km를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단 평양으로 피신해 온 백선엽은 마침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친척뻘인 송호경(宋昊經)의 소개로 고당의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평양에서 김일성(金日成)이 급격히 부상되자, 백선엽은 만주국의 군관으로 만주에서 공산계 게릴라들을 추격해 다닌 사실이나 열하성에서 팔로군 토벌에 공을 세운 전력이 폭로될까봐 무척 우려했던 것 같다. 10월 하순에는 소련군의 지도로 창설된 적위대(赤緯隊)에 의해 그의 동생 백인엽이 맡고 있던 고당의 경호대도 해산되었다. 메이지 대학을 다니던 중 학도병으로 나가 일본 항공병 소위로 해방을 맞았던 백인엽은 해방 직후 고당의 경호를 맡고 있었다. 이때쯤 원용덕(元容德)이 백선엽을 찾아왔다. 일제가 패망했을 때 원용덕, 정일권 등의 만군 장교들은 신경에 모였다. 이들은 치안 조직을 만들어 '동북지구 광복군 사령부'라는 이름을 내걸고 소련군의 눈을 피해 국내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용덕은 그 마지막 대열을 이끌고 국내로 돌아오다가 평양에 들린 것이다. 원용덕의 방문을 받은 백선엽은 불안하고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자신은 감시당하고 있다며 지체없이 남하할 것을 권했다. 원용덕과 그 일행은 곧장 평양을 떠났다. 얼마 후 정일권도 백선엽을 찾았다. 정일권 역시 원용덕 등과 같이 국내 귀환을 준비하다가, 소련군에게 억류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던 중 수송열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오던 길이었다. 정일권도 백선엽의 동생 백인엽과 함께 그해 12월 초 남행길에 올랐다.

12월말에는 김찬규와 최남근이 백선엽을 찾았다. 백선엽은 이들과 함께 남행을 결심했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이들은 한 작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해주에서 내렸다. 밀항선을 마련하지 못한 그들은 12월 27일 밤 청단(靑丹) 부근에서 38선을 넘을 수 있었다. 38선을 넘은 직후 논두렁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김찬규가 "서울에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해야겠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백일(白一)'로 고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찬규는 김백일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들은 다음해인 1946년 1월 초순 서울에 도착했다.

참고.
백선엽,《실록 지리산》, 고려원, 1992
백선엽,《군과 나》, 대륙연구소 출판부, 1989
-
본인이 쓴 책에 그렇게 나와있으니 출처를 의심할필요가 없음.
6376 2015-03-10 11:53:40 0
[단독] 김무성, '친일' 백선엽에 거수경례 "장군님은 한미동맹 상징" [새창]
2015/03/06 20:02:28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 논란이 벌어졌을 때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박경석 군사평론가협회 회장(예비역 육군 준장)은 “백 장군이 국군의 원로 장성이고 국가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명예 원수 추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반대했다.
당시 박경석 회장은 인터넷에 이런 글을 올렸다.
“백선엽 장군은 나의 직속 상관이었다.예의상 나의 결례임이 확실하다.내가 밤잠을 설치면서 고뇌한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국군의 건군 이념에 훼손된다는 명제 앞에서 나는 결례의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대한민국 국군의 맥은 일본군 만주군 출신에 둘수 없다.그렇게 하면 훗날 역사에서 북한 인민군이 정통성에서 우위가 될지 모른다.북한 인민군의 주력은 항일 투쟁 세력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 출신을 국군의 최초 명예 원수로 추대한다면 훗날 역사가는 북한 인민군의 남침을 이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될지 모른다.인민군의 남침이 민족의 원수인 일본군 만주군 잔당에의 공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경석 회장은 ‘백선엽=한국전쟁의 영웅’이란 평가에도 반론을 폈다.북한 인민군의 6.25남침 당시 개성의 38선을 경계중인 1사단을 지휘한 백선엽 대령은 춘천 전선의 김종오 대령이 지휘하는 6사단의 선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응전도 못하고 거의 모든 장비를 버리고 패주 ,수도 서울 조기 함락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낙동강 방어선에서의 그의 공적은 일부 미군과 자신에 의해 과장 되었으며 낙동강 방어선의 영웅적 방어는 미국과 워커 장군의 불퇴전의 의지, 그리고 미군의 절대 우세한 화력과 국군 장병과 유엔군 장병 모두의 총력 혈투의 결과였다고 주장한다. 실제 2009년 한국전 참전 군 원로들은 국방부가 백선엽 명예원수 추대한다는 이야기가 알려지자“백선엽 혼자 싸운 게 아니라 전부 도와서 싸웠다”며 “백선엽 혼자만 원수 자격이 있느냐”고 반발한 바 있다.

박 회장은 미국과 미군 당국이 그를 한국군 최고의 영웅으로 대우하는 것은 그의 절대적 친미행위의 결과로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그는 사단장 군단장 군사령관 시절 계급상 하급자인 미군 고문관을 상전대우 하는 굴욕적 행태로 일관하고, 하급자인 미군 고문관을 상석인 지프차 앞자리에 모시고 다녔다고 한다.

2009년 당시 국방부는 의견 수렴 결과, 예상 밖으로 항일독립운동단체, 보훈처, 군 원로들의 반대 의견이 만만찮게 나오자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에선 백선엽 회고록 발간과 명예원수 추대 등 백선엽 장군 관련 사업을 모두 뺐다.
6375 2015-03-10 11:49:33 1
한국 최초의 전투기는 바로 이것!!! [새창]
2015/03/09 19:24:51

백선엽회고록인데....

이사람은 이렇게 데놓고 그렇다해도 어쩔수없다는 표현을 쓰면서 후안무치한 말을 사용했는데

....이런사람이 대한민국 국군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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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패망은 그 밑에서 부일(附日)했던 친일파 조선인들, 특히 직접적으로 항일 운동의 진압에 종사했던 조선인들에게는 파멸의 의미했을 것이다. 백선엽은 이러한 파멸을 앞에 두고 신속하게 대처한다. 소련군에 의해 무장해제 당했을 때 그는 소련군을 따라온 한인 통역에게 조선 사람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물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조선은 곧 독립된다. 국호는 동진(東震)공화국이 될 것이다. 당신은 여기 있으면 붙잡혀 시베리아로 유배된다. 빨리 고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1945년 8월 하순, 그는 부인과 함께 그곳을 떠나 도보로 고향을 향했다. 그는 연길과 용정(龍井)을 거쳐 무산(茂山)에서 두만강을 건너 동해안 성진(城津)으로 향했다. 성진에서 평양으로 들어갈 교통수단을 찾았으나 해방의 혼란으로 말미암아 교통은 마비된 상태였다. 그는 계속 동해안을 따라 함흥(咸興), 고원(高原)까지 내려온 다음, 태백산맥으로 들어가 양덕(陽德)을 거쳐 9월 말 평양에 도착했다. 소련군을 피하기 위해 그는 1개월에 걸쳐 장장 800km를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단 평양으로 피신해 온 백선엽은 마침 고당 조만식(古堂 曺晩植)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친척뻘인 송호경(宋昊經)의 소개로 고당의 비서실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당시 평양에서 김일성(金日成)이 급격히 부상되자, 백선엽은 만주국의 군관으로 만주에서 공산계 게릴라들을 추격해 다닌 사실이나 열하성에서 팔로군 토벌에 공을 세운 전력이 폭로될까봐 무척 우려했던 것 같다. 10월 하순에는 소련군의 지도로 창설된 적위대(赤緯隊)에 의해 그의 동생 백인엽이 맡고 있던 고당의 경호대도 해산되었다. 메이지 대학을 다니던 중 학도병으로 나가 일본 항공병 소위로 해방을 맞았던 백인엽은 해방 직후 고당의 경호를 맡고 있었다. 이때쯤 원용덕(元容德)이 백선엽을 찾아왔다. 일제가 패망했을 때 원용덕, 정일권 등의 만군 장교들은 신경에 모였다. 이들은 치안 조직을 만들어 '동북지구 광복군 사령부'라는 이름을 내걸고 소련군의 눈을 피해 국내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용덕은 그 마지막 대열을 이끌고 국내로 돌아오다가 평양에 들린 것이다. 원용덕의 방문을 받은 백선엽은 불안하고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한 채 자신은 감시당하고 있다며 지체없이 남하할 것을 권했다. 원용덕과 그 일행은 곧장 평양을 떠났다. 얼마 후 정일권도 백선엽을 찾았다. 정일권 역시 원용덕 등과 같이 국내 귀환을 준비하다가, 소련군에게 억류되어 시베리아로 끌려가던 중 수송열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쳐 오던 길이었다. 정일권도 백선엽의 동생 백인엽과 함께 그해 12월 초 남행길에 올랐다.

12월말에는 김찬규와 최남근이 백선엽을 찾았다. 백선엽은 이들과 함께 남행을 결심했다. 장사꾼으로 변장한 이들은 한 작은 역에서 기차를 타고 해주에서 내렸다. 밀항선을 마련하지 못한 그들은 12월 27일 밤 청단(靑丹) 부근에서 38선을 넘을 수 있었다. 38선을 넘은 직후 논두렁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때, 김찬규가 "서울에 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일을 해야겠다"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을 '백일(白一)'로 고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후 김찬규는 김백일이라는 이름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들은 다음해인 1946년 1월 초순 서울에 도착했다.

참고.
백선엽,《실록 지리산》, 고려원, 1992
백선엽,《군과 나》, 대륙연구소 출판부, 1989
-
본인이 쓴 책에 그렇게 나와있으니 출처를 의심할필요가 없음.
6374 2015-03-10 11:43:43 0
[단독] 김무성, '친일' 백선엽에 거수경례 "장군님은 한미동맹 상징" [새창]
2015/03/06 20:02:28

.....는 백선엽 회고록
6372 2015-03-10 11:24:23 3
얏호~ 국가보안법 줄줄이 엮으면 되겠구만~~~ [새창]
2015/03/09 18:41:14
11 법으로만 따지면 상해죄지 ..살인 살인미수가 성립이 안됩니다.. 그 기준으로 들이데면 사형 당할 범죄자가 전국적으로 수천명이되요

염산테러 고삐리도 사형이겠고요..
6371 2015-03-10 11:02:35 0
스압,약19) 빌보드 선정 2010년대 최고의 뮤직비디오 TOP20 [새창]
2015/03/08 13:53:14
극혐 선정적....그런걸떠나..창의적인 하나의 작품을 본거같아서 기분이좋음....

저런거 쭉보면 머리환기도되고 아이디어 짜다가 막혔던거 뻥뚫리기도해서 굉장히 좋은 뮤비들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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