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계엄군이 본보기로 하나를 고른곳이 광주였고 그 배경에는 전국 시위를 계획 헸으나 다른지역은 계엄때문에 취소했지만 광주는 '그래도 하려고 준비했으니 하자'하다가 찍힌거고 그 난리가 난겁니다 전라도라서 그랬다고요? 부마항쟁때 100만 죽이는게 큰일이냐 하던 놈들입니다 우리는 광주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윤동주는 같은 나라 사람들은 고통속에 사는데 자신은 편하게 글을 써 괴로워 하는 마음으로 '쉽게 쓰여진 시'라는 시를쓰고 일제에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고 만해 한용운은 총독부쪽으로는 집 방향도 같이하지 않겠다며 서향집을 고수했는데 그때는 다 친일했다고 어거지 부리는 놈들보면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