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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28 10: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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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증가 정책 자체는 당시에도 프랑스나 서독, 스웨덴, 덴마크 등 서구권은 물론이고 소련이나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등 동구권에서도 널리 행해졌으며 현재도 많은 나라에서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만큼 시행 자체를 비판 할 수는 없다. 임대아파트와 보조금 의존도를 이용하는 영국 같은 경우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임대아파트와 보조금이라고 해서 좋아 보일지 몰라도 영국의 주택은 임대아파트 비중이 높은 데다가 임대아파트와 보조금은 출산이 이루어져야 받을 수 있다. 또한 영국에서는 거주 주택이 없을 경우 취업도 되지 않는다. 보호자도 없는데 출산할 수단까지 막히면 그냥 인생 종쳤다고 봐야 한다. 또한 출산하는 대로 지원해 주는 출산장려책을 강력히 편 국가들도 출산율이 크게 늘지 않았다는 점을 보아도 더욱 그렇다.
하지만 차우셰스쿠가 시행한 것은 출산'장려'가 아니라 출산강제였고, 당시 루마니아의 인구 상황이 막장은 아니었기에 다른 나라들의 출산 정책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그 어느 나라도 차우셰스쿠 집권기의 루마니아처럼 맛이 간 수준으로 시행하지는 않았으며 현재도 하지 않고 있다. 산아정책을 강제적으로 다스린다는 점에서 한국의 산아제한정책과 중국의 계획생육정책을 떠올리게 함에도, 이쪽을 훨씬 정상적으로 보이게 해 줄 정도니[2] 그 막장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동시기 서구권 대다수 국가들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으면 출산 축하금을 주고 어느 정도 고용도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후달린 동구권 국가들의 경우에는 육아용품이 다소 부족하긴 했지만 적어도 보육시설들(탁아소, 유치원, 학교)은 제때제때 확충하여 육아 부담을 덜어 준데다가, 아이가 학교과정을 전부 마치면 취업을 시켜주었고 웬만큼 잘못이나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평생 직장은 보장해 준데다가 결혼하면 아파트도 무상으로 나누어 주는 등의 노력은 했다.[3] 서구에서 출산율이 늘어난 국가들의 공통점 중 하나가 비혼 출산에 관대한 곳이라는 사실이다. 영국이건 프랑스건 미국이건 북유럽이건 복지는 천차만별이지만 비혼 출산을 국가 차원에서 권하거나 지원금을 주고 기본 양육만 알아서 하도록 하고 그 이상은 공교육에 의존하게 한 점은 똑같다. 반대로 독일이나 일본, 이탈리아는 국가 차원에서 비혼 출산보다는 부부 출산을 권장했고 가정과 부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나 차우셰스쿠는 이런 온건한 대책을 내놓아서 출산율을 증가시키지 않고 단순히 일정 수 이상의 아이를 낳도록 강제하면 출산율이 쉽게 늘어날 것이라는 식으로 정책을 추진하여 심한 폐단을 가져온 점에서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 당시 루마니아가 외채 때문에 온건한 대책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강경책 자체가 비난받을지언정 온건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걸 비난할 수는 없다. 물론 출산율이라는 게 정말 양육에 적합한 조건이 형성되더라도 개인들의 인식에 따라 낮아지는 경우가 매우 흔하지만, 서구 선진국이 이걸 몰라서 지원책에 집중하겠는가?
특히 '아이를 가질지 말지 결정할 자유'를 박탈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강압적 정책을 실시하지 않는다. 2400년여 전 중국 월나라에서 구천왕이 인구를 늘려 오나라에 맞서려고 오늘날로 치면 출산 장려 정책을 폈는데 여자가 17세 남자가 20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부모를 처벌했다. 반면 아기를 낳으면 여자아이면 술 두병에 돼지고기, 남자아이면 술 두병에 개고기, 쌍둥이면 유모를 붙여 주고 세쌍둥이면 식량을 주었다. 조선시대에는 법으로 일정 나이가 되면 결혼시키도록 했으며 실제로 국가에서(주로 사또가 나서서) 노총각, 노처녀를 찾아내 결혼시키기도 했다(근데 이때 노총각 노처녀 기준은 19살 혹은 20살이었다.).[4]
또한 수령칠사라고 하는 수령이 해야 할 7가지 임무 중 하나가 호구를 늘릴 것(=인구를 늘릴 것)이었다. 이처럼 2400년 전 중국에서도 강경책과 동시에 온건책을 썼고 조선시대에조차 백성들에게 닦달하긴 했지만 동시에 수령도 닦달했다. 하다못해 혼란기였던 중국 삼국시대에도 위나라가 세병제라 하여 토지를 주고, 군인 신분도 부여 및 세습하여 가정을 유지할 경제력을 가지게 하였다. 이와 비교해보면 현대에 살았던 차우셰스쿠의 정책은 이들보다도 못한 셈이 된다. 물론 차우셰스쿠도 보상을 주긴 했는데 후술하겠지만 4명을 낳아야 주는 게 어디 제대로 주는 건가? 더군다나 고대 국가에서는 국가가 까라고 하면 백성은 까야 하는 수준이었다.
훗날 공산권 체제 붕괴 이후에 구 공산권 국가들이 이러한 탁아소를 단순히 공산주의 체제의 유산으로 여기는 바람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서 출산율 하락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이 많다. 출산율이 급감하자 뒤늦게 탁아소 시설 확충에 신경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다소 회복되었지만 1980년대 당시 때의 출산율 회복은 요원한 일이다. 러시아의 경우 1990년대 말에 출산율이 1명대 초반으로 떨어졌다가 푸틴 때 들어서 다시 상승세를 타서 2014년 기준으로 1.7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불가리아나 체코, 우크라이나, 벨라루스도 마찬가지의 상황이긴 한데, 2010년대 들어서 경기침체의 여파로 주춤해진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