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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7 19: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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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배씨대종회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배씨(裵氏)의 뿌리는 멀리 2천여년 전 신라 건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의 모체인 6부 촌장의 한 분인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지금의 경주 명활산 아래 분황사 일대)의 촌장(村長) 지타공(公)이 바로 우리나라 배씨(裵氏) 성을 갖게 된 최초 할아버지이시다.
서라벌 6부 촌장들은 모두 천강(天降)하신 신인(神人)으로 기록된 바 있고, 금산가리촌의 영역은 상·하서지(上·下西知), 내아(乃兒) 등으로 지금의 동촌이 이에 속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삼국사기》에는 배씨 득성조(得姓祖)인 지타공에 관련된 기록이 있다.
신라 태조 3년(서기전 55 병인년)에 6부(六部) 공신(功臣)의 위차(位次)를 정할 때 지타공은 개국좌명1등원훈총재태사(開國佐命一等元勳宰太師)에 이르렀다.
신라 3대 유리왕 9년(서기 32년)에는 신라개국의 공을 참작하여 신라 6부 촌장에게 마을 이름과 성(姓)이 내려졌다. 금산가리촌은 한지부(漢祗部:지금의 경주)가 됐고, 시조께서는 배씨 성을 받았다. 그때 함께 성을 받은 이, 최, 정, 손, 설씨와 함께 우리 배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성씨가 되었다.
법흥왕 3년(서기 516년)에는 공에게 시호(諡號)를 문양(文讓)으로 내리셨고, 무열왕 3년(서기 656년)에는 장렬왕(壯烈王)으로 추봉(追封)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오늘날 우리 배문은 무열공 휘(諱) 현경(玄慶)을 중시조(中始祖)로 하여 배씨는 같은 세계(世系)를 갖는다.
무열공 휘 현경께서는 왕건을 도와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에 공신위차(功臣位次)에서 공(公)이 개국정사1등원훈(開國定社一等元勳)에 오르고 대상(大相)으로서 첫 수상(首相)이 되었으며, 서기 994년(고려 성종 13) 태묘(太廟)를 처음 세웠을때 고려 태조 묘정에 배향되었고, 우리 배씨는 금산가리촌장이신 문양공(文讓公) 휘(諱) 지타를 시조로, 고려개국원훈(高麗開國元勳)이신 무열공(武烈公) 휘(諱) 현경(玄慶)을 중시조로 모시는 단일혈족이며 지금에 이르기까지 명문거족으로 중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