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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9 22:5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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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자체가 잘못된 거죠. 그래서 저도 글에서 차라리 그냥 이유 없이 들어간 사람을 일률적으로 처벌하되 형사처벌이 아닌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 찬성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처벌이 불가능한 요건을 규정했으면 처벌을 하지 말아야죠. 그게 법치주의입니다.
저기서 굳이 성적 목적을 요건으로 규정했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보라서? 아니겠죠? 정당한 사유 없이 들어간 사람을 그 자체만으로 전부 성범죄자로 처벌해 버리는 건 아무리 봐도 지나친 처벌이라는 걸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정말로 그냥 실수로 들어갔거나 용변이 정말 급해서 들어간 것도 전부 성범죄로 처벌 받으니까요. 그래서 성적 목적 요건을 규정했는데 문제는 그게 애초에 입증 가능하지가 않은 요건이라는 겁니다.
자, 그럼 법치주의 원리가 지배하는 국가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님이나 판사처럼 어차피 입증할 수 없으니까 입증 안 되도 유죄추정 원리에 따라 유죄 이렇게 판결해야 하나요? 열 사람의 도둑을 놓쳐도 한 사람의 억울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법치주의 원리는 어디로 내팽개친거죠? 입증할 수 없으면 처벌 못하는 겁니다. 그게 법치주의 원리에 맞는 거죠.
법치주의라는 게 목적만 좋으면 법률이나 조항에 따라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인가요? 범죄 사실 자체가 입증이 안 되는 걸 처벌하는 건 어떤 지고지선의 가치와 명분을 가져와도 정당화될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정말로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처벌하는 것이니까요.
정말 위험 천만한 발상이시고 너무 세상을 쉽게만 생각하시는데요. 님말마따나 긴급상황, 착오에 의한 침입 등의 경우에도 무조건 성범죄자로 몰리는 건 정말 억울한 일입니다. 그런데 님이나 판사의 판결과 같은 방식이면 바로 그런 경우들에 대해서도 판사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성범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불운과 어리석은 순간의 선택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에 관해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네요. 취중에는 착각을 하기 쉽고 판단력이 흐려지기 쉽습니다. 취중에 용변이 급한데 남자 화장실은 멀리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급한대로 용변을 보고 나가려는데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쩔 수 없었지만 어쨌든 들켜서 좋을 건 없을 테니 용변칸에서 기다릴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다가 조용해진 것 같아서 나왔는데 재수 없게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그냥 미안하다고 급해서 잘못 들어갔다고 하고 그에 대해 아 그러셨군요 하고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그렇게만 되라는 법이 있나요? 여자가 놀라서 소리치고 남자도 술 취한 김에 이성을 잃고 화를 내고 싸워서 일이 커질 수 있습니다. 물론 남자는 어리석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람이 성범죄자가 되어선 안 되겠죠.
이런 경우에 판사가 잘 판단할 거라고요? 뭘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죠? 용변이 급했다거나 착각했다거나 실제로 용변을 봤다는 것 중에 어느 것 하나 증거로 입증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똥누는 걸 동영상으로 찍어놓은 게 아닌 이상 아무 증거도 없습니다. 그냥 주장만 있을 뿐이죠. 물론 취중에 들어갔다는 건 증거가 있네요. 하지만 반대로 취중에 성적 목적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똑같이 인정할 수 있습니다. 님이나 판사처럼 어차피 입증 못 하니까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유죄가 되도 된다는 식이면 이 사람은 성적 목적 아니라는 증거가 하나도 없으니 성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