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에서 길을 잃은 남자는
갈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덩굴 장미로 만들어진 거대한 미로…
미로는
침략자들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하지만
성의 주인이 몰락한 이후
사람의 손길이 끊긴 미로 정원은
예전의 아름다움을 잃고
음산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한때
미로 정원의 정원사였던 남자는
근방을 지나다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을 발견하고는
미로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로 정원을 거닐며 추억을 짚어가던 남자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미로 정원의 모습에
무척이나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붉은 장미와 초록 초록한 잎들로 가득하던 미로는
꽃과 잎이 시들고
앙상한 줄기에 돋아난 날카로운 가시들 때문에
무시무시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남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건
가시에 걸린 사람의 살점들과
바닥을 검게 물들인 핏자국들이었습니다.
그 불길한 모습에 겁먹은 남자는
서둘러 미로에서 빠져나가려 했지만
기억이 장난을 치는 걸까…
남자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마주치는 건
가시 돋은 줄기가 사악하게 엉켜 만들어진 벽들뿐
출구는 도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남자가 미로를 헤매는 사이
해가 지고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낮고 무거운 북소리…
점점 커지는 북소리에 귀 기울이던 남자는
순간
웅장한 나팔 소리와 함께
미로를 둘러싼 높은 성벽에서
일제히 불을 밝히는 횃불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벽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들뜬 표정의 사람들도…
순간
무시무시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남자는
출구를 찾아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퉁이를 돌아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남자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절망감에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서로의 목숨을 뺏기 위한 사투를 벌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
그들의 무기가 서로 부딪칠 때마다
성벽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그들을 더욱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자가 한때 영혼을 갈아가며 가꾼 미로 정원…
성의 주인이 몰락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미로 정원은
피와 살이 난무하는 투기장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남자의 머릿속에
이 끔찍한 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모두를 죽이고 혼자 살아남는 것…
하지만
무기가 될 만한 것이라고는
조경용 가위를 들어본 게 전부인 남자에게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절대 무리라는 걸
남자 자신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