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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09: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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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임종을 할 무렵에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독립군 동지가 머리맡에서 "이제는 만주에 돈 보낸 사실을 이야기 해도 되지 않겠나?"고 하자 "선비로서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야기 할 필요없다"고 하면서 눈을 감았다고 한다.
막대한 재산도, 명문가 장손이라는 명예도 버리고, 일가친척들을 포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는 파락호라고 경멸받고, 심지어 하나뿐인 외동딸에게마저 원망과 미움을 받으면서도, 죽는 순간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 진정 노블리스 오블리제라 하겠다.
여담이지만, 그의 장인인 이중업은 1914년 안동과 봉화 장터에 격문을 돌리고, 1919년 베르사유 회담에 보낼 청원서에 넣을 강원도, 경상북도 지역의 유지들의 서명을 받고 중국으로 가던 도중 사망했다. 그의 장모인 김락은 예안면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56세의 나이에 고문을 당하다 실명했다. 처남을 비롯한 그의 처가 역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10].
위키에서 긁어 왔습니다. 로열패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