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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6 2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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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장문 입니다.
오늘의 일기 하니까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오늘의 일기
우리집 워리가 클만큼 컷다고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과 워리 상대로 각출하기로 하셨단다.
항상 산에 토끼 잡으로 갈때나. . .
국민학교 파하고 책보에 빈도시락 딸랑거리며 돌아오는길엔 우리 워리가 바쁜 엄마아빠 대신에 마중 나오곤했다.
아버지 술마시고 집에 오실때마다 우리 워리가 젤먼저 마중나가곤했다.
아버지 약주 드시고 기분 나쁘실땐 먼저 마중나가 워리가 아버지 발길질에 께갱하고 먼저 신호를 주었고 우리 5남매는 어머니의 신호에따라 아버지 주무실때까지 논의 볕가리나 동네 어귀의 정자나무 근처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독제자 아버지가 주무실때까지 기다리다 집에 들어가곤했다.
때론 아버지가 동구나무 근처에서 밝은 목소리로 워~리하며 밝은 목소리리로 부르면 우리집 워리를 따라 아버지께 반갑게 인사하면 10원짜리나 50원짜리를 손에 쥐어주곤 하였다.
그럼 다음날 점빵에 들러 쫀디기나 하드를 군것질하곤했다. 점빵 까지도 5킬로이상 산길로 걸어야 했지만 힘든줄 모르고 다녀오곤 했다.
근데 그런 워리를 각출하다니. . .
난 우리 워리를 지키려했고 워리 또한 자신이 각출당한다는 걸 아는듯이 좁은 마루 밑에서 낑낑거리며 나오질 않았다.
아버지는 동네 어른들과 합세해서 좁은 마루밑에 우리 워리 목에 노끈을 걸려 했지만 눈치챈 워리는 마루 구석구석으로 몸을 피했고 결국 아버지는 직접 워리목에 노끈 묶는걸 포기 하시고 당시 체구가 작은 나에게 우리 워리 목에 노끈을 걸으라고 하셨다.
각출이란 각자 돈을 모아서 동네에서 복날 개잡아 먹는거란걸 어렴풋이 알던 나이 이기에 난 우리 워리가 목 매달리고 몽둥이에 머리가 부셔질만큼 맞은뒤 짚푸라기에 그슬려서 죽을걸 알기에 아버지의 도움을 단칼에 거절 했었다.
동네 어른들의 눈빛과 아버지의 지게 작대기에 맞아서
어쩔수 없이 좁은 마루를 기어가 구석에 겁먹고 웅크린 워리 목에 나이론 올가미를 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해 한다는 듯만 체념 어린 우리 워리의 눈빛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워리 목에 올가미를 씌우고 워리가 어른들의 힘에 끌려 가면서도
나를 바라보던 우리 워리의 눈빛 때문에 아무도 없는 대낮에도 귀신이 나온다는 뒷산로 뛰어가 반나절을 울었다.
울만큼 울고보니 나무며 그림자가 정말 귀신같아 서둘러 집에 왔다.
어느덧 날은 저물어 있었고. .
시골 늦은 저녁 밥상이 차려저 있었는데
명절때 아니면 먹을수 없는 고깃국이 밥상 중앙냄비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날 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