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기 AGCT가 '글자'라면
유전자는 글자들이 모여서 의미 있는 단위를 이룬 '단어'에 해당되고
염색체는 그 단어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책'입니다.
한 생물이 가진 유전정보의 총집합은 유전체genome이라고 합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 교재'라는 전체집합에 국어교과서 수학교과서 생물교과서 등등이 들어가 있고, 각 교과서를 들여다보면 수많은 단어들이 있듯, 사람의 유전체는 23쌍의 염색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의 염색체쌍들은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번 염색체쌍이 제일 크기가 크고 22번 쌍이 제일 작습니다.
예를 들어 생물 교과목을 완전하게 가르치기 위한 정보들을 다 모아놓았다고 가정해 보면, 그 내용들을 편의상 생물1 생물2 두 권의 책으로 나눠 묶어도 되고, 기초생물-1권/2권 , 심화생물-1권/2권 이렇게 네 권의 책으로 나눠 묶어도 됩니다. 어쨌거나 책들이 담아야 할 단어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원래대로 있으면 실제로 단어들을 읽어 공부하는 학생은 원래대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원래 있어야 할 책 중 일부가 아예 없어져 버리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실제 세포 내에서는 해당 유전자들이 만들어줘야 할 여러 물질들이 안 만들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원래 있어야 할 책 중 일부가 중복해서 한 권 더 생기면, 우리들이야 그저 무시하면 되지만, 실제 세포 내에서는 해당 유전자들이 생산하는 여러 물질들을 정상보다 훨씬 많이 만들어내면서 역시 생리적으로 큰 문제가 생깁니다. 예를 들어 21번 염색체가 하나 더 있으면 다운증후군 환자가 됩니다. 21번쯤 되는 작은 염색체니까 그 정도로 끝나지, 예를 들어 1번 염색체같은 큼직한 게 중복돼버리면 아예 태어날 수조차 없습니다.(그래서 그런 환자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원래 '생물1/생물2' 두 권으로 나눴던 교과서 중 '생물2'교과서만 무겁다고 반으로 쪼개버렸다 칩시다. 그러면 원래 두 권이 있어야 할 책들이 세 권이 돼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실제 단어(유전자)들이 더 늘거나 줄었나요? 그냥 묶음의 단위만 변했을 뿐 전체적인 내용물의 균형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큼직한 2번 염색체 같은 걸 쪼개도 되고, 작은 20번 21번 염색체 두 개를 합쳐서 큰 염색체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염색체 갯수의 변화가 일어나되 실질적인 유전자의 집합이 변하진 않죠.
침팬지와 사람 염색체를 비교해 보면 정말 그렇게 작은 염색체 두 개와 큰 염색체 하나가 유사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