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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0 16: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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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까지 입시판에서 뛰놀던 수험생이었는데, 몇 자 적어 봅니다. 수능 사회탐구에서 국사는 점점 특수과목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직 서울대만이 한국사를 필수 응시과목으로 지정하다보니 서울대를 노리는 상위권 학생들은 싫어도 국사를 선택해서 공부해야 하죠.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몰리다 보니 변별력을 위해 국사 시험은 다른 과목에 비해 살인적인 난이도를 가지고 출제됨은 물론 갈수록 문제가 찌질해집니다. 어떤 수능에서는 400쪽이 넘는 교과서 본문 중 '반 줄' 언급된 자잘한 내용이 수능에 출제되어 정답률 10%대를 기록한 적도 있었구요. 서울대를 가고 싶은 학생들은 엄청난 공부부담을 떠안으면서도 그런 문제들을 맞추기 위해 역사적 소양과는 관계없는 지엽적인 암기에 매진합니다. 경험상 매우 힘듭니다.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토씨하나 안틀리고 암기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서울대를 목표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은... 감이 오시지요? 바보가 아닌 이상 국사 선택은 자살 행위임을 알 것이고 국사는 기피 1순위 과목으로 전락합니다. 국사에 비해 범위가 좁고 큰 맥락만 알면 비교적 쉽게 풀리는 근현대사 과목은 반면 인기가 높아 매년 사회탐구 선택자 탑3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죠. 그런데 이번에 국사와 근현대사 과목이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과목이 되었습니다. 서울대는 어김없이 이 한국사를 필수응시 과목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말 다 했죠. 얼마전 서점에서 사회탐구 문제집을 고르는 고등학생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 한국사를 고르려는 학생에게 옆에 친구가 '야 한국사는 절대 하지마 서울대 가는 애들이 하는 거야.' 라고 말리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서울대가 오히려 고등학생들의 역사 학습을 방해하고 있다는걸 빨리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사 필수 응시 항목을 폐지하고, 국사를 특수과목의 자리에서 내려놓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수능 사탐으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3,4급 정도를 (고1 교과과정 수준의 지식이면 충분히 딸 수 있습니다.) 의무화하든가, 대학에 입학해서 교양 한국사 과목을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등의 제도를 실시해야지 지금과 같아서는 국사를 선택하는 학생과 선택하지 않는 학생 모두 한국사에 대한 애정이 떨어지게 하는 결과밖에는 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