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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5 16: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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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될 때까지 제 삶은 실의와 절망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십년간 계속 '나는 뭘 해도 최고가 되지 못하는 이류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호빵맨>의 원작자 야나세 다카시의 말이다. 현재 아흔세 살인 야나세가 호빵맨이라는
그림책을 그린 것은 쉰네 살 때다. 호빵맨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은 예순이 넘어서였다.
그전까지 야나세는 길고도 긴 절망의 터널 속에 있었다. 그 사이에 동료 만화가들이 차례로 이름을 날렸다.
신인들에게도 완전히 밀리고 있었다.
야나세는 젊은 시절을 전쟁터에서 보냈다. 중일전쟁이 벌어져 포병으로 중국에 파병될 즈음 이런 말이
들려왔다. "지금 중국 민중이 어려움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우리가 구해 줘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의로운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자 다른 말이 들려왔다. "일본군이 중국 민중을 괴롭혔다."
당시 일본 국민 모두가 정의라고 믿었던 것은 대체 무엇이었던가. 야나세는 고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정의를 위해 야나세의 동생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때 발견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정의는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 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단팥빵인 자기 얼굴을 때어 먹이는 마음씨 좋은 호빵맨은 이 생각에서 탄생했다.
호빵맨 그림책에서 야나세가 가장 그리고 싶었던 장면은, 호빵맨이 배고픈 아이에게 얼굴을 먹이고,
얼굴이 없어져 버린 탓에 에너지를 잃어 하늘을 나는 속도가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그즈음에는 울트라맨이나 가면라이더처럼 강한 영웅 캐릭터가 큰 인기를 모았다.
그에 반해 누더기 망토를 걸친 호빵맨은 비만 맞아도 약해지는 세계에서 가장 약한 영웅이었다.
그림책을 출판했을 당시 출판사의 반응은 이러했다.
"이런 그림책은 이번으로 끝내세요."
그뿐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책을 사주려던 부모들은 호빵맨이 굶주린 사람들에게 얼굴을 먹이는 장면이
잔인하다며 크게 반발했다. 아동도서 전문가들도 "그런 그림책을 도서관에 비치해서는 안 된다."라며
심하게 혹평했다. 하지만 야나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을 도우려 한다면 나도 상처받기를 각오해야 해.
나를 희생할 각오가 없는데 어떻게 정의를 실현할 수 있겠어.'
호빵맨을 부정적으로 본 것은 어른들뿐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인기를 끌고 있었다.
유치원 아이들은 호빵맨을 읽어달라고 선생님을 졸랐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호빵맨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호빵맨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나는 무슨 일을 해도 느리고 머리도 나빠서, 보통 사람들이 사흘이면 아는 것을 30년 걸려서야 간신히
알게 될 때도 있습니다. 지금 하는 공부도 몇 년을 해도 발전이 없어서 이상하다며 웃곤 하지요.
호빵맨도, 그림도 이렇게 천천히 조금씩 해왔습니다. 그래도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름의 발자취가
생기더군요. 저보다 훨씬 빨리 출세했던 사람들이 어느덧 은퇴하는 걸 보니 내가 탁월한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도서 : 마음이 꺾일 때 나를 구한 한마디
출처 : http://blog.naver.com/010global?Redirect=Log&logNo=60193361790
추억의 호빵맨.. 제가 27살인데 초딩때 잼나게 봤더랬지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