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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4 23:4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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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렉트라.
아가멤논의 딸.
나는 그 구절에서 책을 덮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물론 프로이트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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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에 올라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것을 필히 당연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굳이 뒤에 덧붙였다.
성적인 의미로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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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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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와 함께, 그 사람을 사랑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엘렉트라와 다르다.
어머니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도 그럴것이 어머니가 처음으로 한 말은
정신나간 년,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지극히 정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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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밀쳤다.
아무도 없는 산 절벽에서.
잠깐 쉰다고 앉아있던 바위에서
발로 툭, 밀었다.
떨어지면서 어머니는 말했다.
정신나간 년, 이라고.
일그러진 얼굴로 떨어졌고
이내 부서졌다.
물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지극히 정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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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나는 그 사람을 어머니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분명 어머니는 그 사람과 나의 사랑을 방해했겠지.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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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미래를 생각했다.
아이는 몇 명을 가질까.
아이는 남자아이가 낫겠어.
나같은 여자아이면 귀찮으니까.
관계는, 조만간 갖는 게 좋겠지.
그 사람이 어떤 타입을 좋아하더라.
분명 청순한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아.
긴 머리카락이라 다행이야.
나도 빨리 그 날이 왔으면.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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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렇게 꿈이 젖어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 사람은 나와 말하지 않았다.
눈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아니, 나 자신을 피하는 듯 했다.
그것은 하루, 이틀을 넘어 일주일, 한 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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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너무나도 슬펐다.
어머니의 죽음 따위보다.
훨씬 더, 정말 많이.
그 사람에게 버림 받는 걸까.
내가 한 일이 들킨 걸까.
나는 무서웠다.
무엇보다도 그 사람에게 미움받는다는 것이 무서웠다.
다른 무엇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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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그 사람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그 사람은 웃고 있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눈물만이 볼에 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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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이었다.
그 사람이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곤 슬쩍 손을 잡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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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단 한마디, 미안하다고 했다.
역시나.
이 사람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이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
아직은 성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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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서야 나는 마음을 놓았다.
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얇은 옷 너머로 단단한 육체가 느껴졌다.
언젠가 나를 끌어 안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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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을 토닥이자 그는 조금 울었다.
그 모습마저 나는 사랑스럽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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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달빛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자고 했다.
분명 그는 착한 사람이니까.
아니, 성실한 사람이니까.
내가 행복하기를 이라던가, 이 가족이 행복하기를 같은 그런 소원을 빌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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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깊게 빌었다.
이 가족이 파탄나기를.
이 관계가 끝나기를.
그래야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질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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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착하지만 연약한 사람이다.
내가 밀어붙이면 아무 것도 못하겠지.
조만간, 정말 조만간이다.
그때 우리들은 한 번 부서졌다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그것을 생각하면 두근거렸다.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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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비친 책상에는 책 한 권이 놓여있었다.
엘렉트라.
아가멤논의 딸.
나는 그녀와 다르다.
나는 성공했다.
우린 분명
‘행복한 가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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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었다.
이젠 이 웃음은 그 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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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그제서야 웃었다.
이젠 이 웃음은
나 만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