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
2017-08-24 02:4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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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자 커다란 박스가 보였다. 인형이 들어있었던 그만한 크기의 박스였다.
나는 인형을 방 안으로 옮겼다. 인형만 한 무게였다. 왜지? 병태녀석 왜 말도 없이 돌려보낸 거야. 이 변태녀석...
그 때 휴대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창길. 창길이가 무슨 일일까. 난 전화를 받았다.
"야, 잘 지냈냐? 어휴... 소식 들었냐. 병태가 죽었단다. 애들끼리 모여서 장례식장 가려고 한다. 시간 어때?"
나는 소름이 끼쳐서 말도 없이 창길이의 전화를 끊어버렸다. 옆의 박스가 보였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집어들고는 일단 밖으로 뛰쳐나왔다.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다시 전화를 해보자.
" 여, 여보세요? 창길이냐? 아까는 전화가 그냥 끊어졌네. 장례식장이 어디냐"
....
....
....
2시간 후 나는 장례식에 올 수 있었다. 마련된 공간에 들어가자 친구들은 벌써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길이가 보였다.
"창길아."
"어, 왔냐."
나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길아... 병태가... 어떻게 된 거야?"
"사고로 죽었다더라."
"사고?"
"응."
"무슨 사고?"
"글쎄. 그것까진 나도 못들었네."
사고? 나에게 말도 없이 인형을 돌려보내고는 사고로 죽어버렸다고? 어떻게 죽은 거냐고 대체.
"근데 사고 현장을 기욱이가 처음 발견거든? 그런데 말을 안 하네."
창길이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기욱이를 잠깐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기욱이는 표정이 굉장히 안 좋아 보였다. 기욱이에게 물어야겠어. 난 사실을 당장 알아야겠다고.
"기욱아. 어떻게 된 일이야 도대체?"
기욱이가 말을 안 한다. 질문을 조금 바꿔야겠다.
"병태는 어떻게 발견하게 된 거야?"
"... 병태가 자기가 지금 아프다고, 도와달라고 전화가 왔거든. 그래서 병태 집에 간 거지."
"그래서?"
기욱이가 말이 없다.
"기욱아. 병태가 어떻게 된 거냐니까? 말 좀 해봐."
"... 피가 많이 났어."
"피? 뭔가에 다친 거야? ... 혹시 입에서 피를 토한 거야?"
기욱이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어떻게 된 건데?"
"잘렸더라고."
나는 섬찟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질문을 안할 수가 없었다.
"어디가?"
"... 거기."
나는 그 말을 듣고는 속이 좋지 않아서 장례식장을 급히 빠져나왔다.
휘청거리며 걸었다. 그러고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은 하루 종일 멍하게 밖을 싸돌아 다녔다. 그 날도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 생활하는 건 돈이 많이 나간다.
이렇게 평생을 생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결국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리는 거야. 커다란 쓰레기 봉투를 사서. 그래. 버리자.
일단은 집을 향했다. 아직은 낮이니까. 낮에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훨씬 덜해지니까.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방 안은 여전했다.
방 한 가운데 놓인 커다란 택배 박스. 코끼리가 집에 있는 것 같은 이상한 풍경.
그 때, 갑자기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며 불명확하게 들렸던 말이 떠올랐다.
기욱이가 뭐라고 했었는데. 그게 지금 왜 떠오를까. 중요한 말이었나?
그리고 나는 기욱이가 한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고야 말았다.
[... 그리고 그건 못 찾았어.]
나는 천천히 택배 박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개봉되지 않은 택배 박스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