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렷, 경례!"
반장 준식이가 발딱 일어나 외쳤습니다. 아이들은 머리가 책상에 닿을 정도로 아침 인사를 했습니다.
"다 왔군. 좋아."
선생님은 교실을 휘둘러 보고 나서 싸늘하게 말했습니다. 그러곤 팔을 있는 대로 벌려 교탁 양쪽 끝을 움켜잡았습니다. 작달막한 키가 더욱 작아졌습니다. 아이들은 겁먹은 얼굴로 몸을 사렸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폭폭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너희들! 오늘부터 선생님이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도록 해 주겠다."
뜻밖에도 선생님의 목소리는 쾌활했습니다. 더욱이 재미있는 놀이라는 건 더 뜻밖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웬일인가 싶어 서로를 흘깃흘깃 훔쳐보았습니다.
아침 조례 시간의 첫마디는 으레 일본과 조선은 하나이고, 천황폐하는 우리들의 어버이시니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천황이란 말을 할 때의 선생님은 불에 덴 것처럼 깜짝 놀라서 차렷 자세를 했습니다. 그러고선 일본 쪽을 향해 구십 도로 허리를 꺾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놀이라니요? 아이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걸 봐라."
가로 삼 센티, 세로 십 센티 정도의 나무패가 높이 치켜졌습니다. 횃불마냥 우뚝 솟은 나무패는 굉장한 힘이 있어 보였습니다. 선생님은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아주 천천히 나무패를 움직였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는 작은 나무패가 가는 대로 이 쪽에서 저 쪽으로 따라갔습니다.
"이게 뭔지 알겠나?"
교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반장, 일어나라!"
준식이가 발딱 일어섰습니다.
"받아."
나무패가 붕 떴습니다. 준식이는 두 손을 마주 펴 손목에다 찰싹 붙였습니다. 손바닥 안에서 척! 소리가 났습니다.
'위반.'
얄따란 나무패에는 일본말로 '위반'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준식이는 얼른 주먹을 쥐어 글자를 가렸습니다. 붓으로 쓴 까만 글자가 무슨 괴물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렸습니다. 곧이어 깐깐한 목소리가 아이들의 마음을 옭아맸습니다.
"반장은 잘 듣거라. 너는 그 패를 가지고 있다가 노는 시간에 조선말을 쓰는 자가 있거든 그걸 주어라. 그걸 받은 자는 조선말을 하는 동무가 눈에 띄는 즉시 다시 넘겨 주어라. 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누가 저 패를 가지고 있나 보겠다. 맨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자는 무조건 손바닥 열 대씩이다. 자, 서로서로 잘 살피도록. 알았나?"
재미있는 놀이를 기대했던 아이들은 실망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일어났습니다.
(중략)
"어, 나비다!"
옆줄에 있던 명서가 손가락으로 맨 꼭대기 창문을 가리켰습니다. 호랑나비 한 마리가 팔랑팔랑 창가를 날고 있었습니다. 올 들어 나비는 처음이었습니다.
"아리가토오(고맙다)!"
호창이는 들고 있던 나뭇조각을 잽싸게 던졌습니다. 명서가 제 머리카락을 움켜잡는 걸 보고도 호창이는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종례 시간은 바짝바짝 다가왔습니다. 애가 단 명서는 혹시나 해서 귀를 활짝 열었지만 아이들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복도에서는 슬리퍼 끄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교실 문이 드르륵 열릴 겁니다. 안절부절못하던 명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아얏!"
하는 일이 굼떠서 별명이 칠득이인 재득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명서가 뺨을 꼬집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조선말이 나왔습니다. 느닷없이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이따이!'라는 일본말로 아픔을 표시하겠습니까? 명서는 다람쥐보다 더 빠르게 나무패를 떠넘기곤 손바닥을 탈탈 소리나게 털었습니다.
"비겁한 놈!"
명서의 짝꿍인 승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명서를 향해 달려들려던 재득이가 주춤했습니다. 다음 순간 입술이 벙긋이 벌어진 재득이는 좋아라 승우 손에 나무패를 쥐여 주고 제자리로 갔습니다.
승우는 반 동무들이 입을 모아 히도츠(하나) 후다츠(둘) 미츠(셋)를 외치는 소리를 들어 가며 고스란히 손바닥 열 대를 맞았습니다. 다나카 선생님이 몽둥이를 뗐을 때 승우의 여린 손은 피멍이 들어 푸르뎅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