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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5 21: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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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님이 남친분을 사랑하지 않아서 고민중이 아니라는건 알겠어요.
두려움이죠. 미래와 내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요. 안전벨트...안전벨트를 확인하고 싶은거에요.
저는 결혼하고 1년정도 있다가 혼인신고를 했어요. 그전에 혼인신고를 안했던건 귀찮음이 가장 크긴 했지만 그 다음을 차지하는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성자님하고 비슷하게 '내가 남편을, 남편이 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이 컸다고 느꼈죠.
막상 결혼하고 싸울 일도 많았고 힘든일도 많았어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혼인신고를 하지 말아야지 보다는 언젠간 할거라는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구요. 그냥 남편을 사랑하니까? 이 사람하고 평생 살고 싶으니까? 그렇게 무겁지도 않지만 가볍지도 않은 그냥 그 중간 어디쯤이었어요.
여차저차.. 혼인 신고 하고 나니까 깨닳은게 하나 있었어요.
내가 이런 저런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느라고 그런줄 알았는데 꼭 그런것만은 아니더라구요.
저는 그 순간 제 선택이 너무 무서웠고 제가 한 선택에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거였어요.
결국 전 혼인신고를 했고 잘 살고 있습니다. 힘든 날도 있지만 이게 내 선택이고 전적으로 내가 책임 질 일이라고 생각하고 잘 살고있어요.
내가 힘들고 지치면 부모님께 기대서 쉴 수는 있겠지만 내가 한 선택은 되돌릴 수 없답니다. 시간은 거꾸로 가지 않으니까요.
어른이 된다는건 내가 한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것 같아요. 사실 그렇다고 해도 전 아직 어른이 아닌것 같지만요.
(스스로 비하가 아니고 진심으로 정신연령 20세 미만 추정입니다;;)
어떤 분은 아주 어릴때 부터 내가 한 선택에 책임지고 살아오신 분도 계실거에요.
어떤 분은 가고싶은 대학을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하다가 내 길이 아니다싶으면 그만두기도 하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하죠.
이것도 나의 선택이고 나의 책임인거에요. 밥을 뭘 먹을지 이걸 사도 될지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해도 될까.. 등등..
선택과 책임은 사소할 수도 있지만 인생을 흔들어놓을만큼 큰 것도 있더라구요.
저는 그게 늦어서 결혼전에 10년가까이 자취를 한 입장에서도 아직 내가 선택하기보다는 부모님께 조언을 구한다고 생각하면서
은연중에 엄마아빠가 그 선택을 내려주기를 기다렸던것 같아요. 그리고 뭔가 잘못되면 엄마가 아빠가 그렇게 말했잖아 하고 합리화 시키고
그것을 나의 실패나 나의 과오로 보지 않고 난 그냥 부모님 말에 따랐을뿐이야 했었죠. 학교도 직장도 친구문제도.. 다정한 엄마한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면서 실제로 엄마의 조언도 구했고 엄마의 선택을 내 선택인양 살기도 했죠.
그래서 결혼식과 혼인신고가 왠지 모르게 더 크고 무겁게 다가왔어요. 책임지기 싫어서 선택을 회피하고 있었던거에요.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알게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성자님 생각이 저랑 같을거라고는 장담은 못하겠는데, 결혼과 혼인신고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하시는 작성자님께 혹여나 도움이 될까 하고 써봤어요.
그리고 작성자님,
공개된 게시판에 올릴 땐 작성자님의 뜻하고 반하는 반응들이 올라올 수도 있어요. (악플 말고요)
왜냐하면 작성자님과 남친분과의 관계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고 있는거지 그 글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유저들은 거의 모르는거랑 다름없잖아요.
작성자님이 올리신 글만 가지고 판단해서 하는 말이잖아요.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근데 댓글로 달린 말이 악플도 아니거니와 작성자님한테 상처가 된다고 해서 사과하라고 할 수는 없는거에요.
공개된 게시판에 한정적인 정보를 올리고 조언을 구하신건데 그정도는 감수하셔야하는거 아닌지 생각해보실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인터넷 글에 너무 일희일비 하지마세요.. 건강에 해로워요.. 어떻게 보면 답정너일수도 있지만 어쩔수 없어요. 글을 보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다 아는게 아니잖아요.
심지어 현실 친구처럼 많은 부분을 이미 공유했던 사이도 아니구요.. 그러니까 그건 작성자님이 마음을 좀 놓으셔야 작성자님이 편하실것 같아요.
너무 상처받지 마시구요.. 남친분하고 좋은 선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작성자님이 꽃 길 걸으시길 바라면서 써봅니다. 부디 언짢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