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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3 22: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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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훌륭한 위인도 아니고 저주받을 악인도 아니야. 그저 너는 너일 뿐이야. 왜냐하면 지금 너는 오직 너일 뿐, 그 무엇도 아니기에. 대신에 너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릴 수 있지. 온 세상을 잠기게 만들 만큼 눈물을 흘릴 수 있지. 네 몸은 그런 몸이지. 잠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발버둥을 치는 몸이지. 나는 너의 그런 몸을 사랑해. 지금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몸을 지니고 있어. 그 몸을 믿으렴. 그 몸이 이끄는 방향으로 너를 던지렴. 무엇이 되는 것, 그게 지금 뭐가 중요하겠어.
그게 쉬운 길이라면 누가 뭐래도 가지 마. 정답이 적힌 문자 따위가 날아온다면 한껏 비웃어주란 말이야. 멍청한 세상을 향해서는 ‘바보!’라고 소리치란 말이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어. 이게 다냐고. 겨우 이 정도일 뿐이냐고. 쉬지 말고 사랑을 갈구하되 동정이나 도움 따위는 거절하란 말이야. 아직 네 심장은 뛰고 있잖아. 더 많은 것을 요구해. 더 많은 공기를, 더 많은 분노를, 더 많은 사랑을 달라고 몸부림쳐. 세상의 중심에 서서 소리쳐. 너로부터 바뀌는 세상을 만들어. 너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너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어제 나는 이런 문장을 읽었어. “우리가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No’다. 몸과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쓸데없는 습관과 행동은 안 된다.” 러셀 셔먼이라는 피아니스트가 쓴 ‘피아노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야.
또 이런 문장도 나와. “도대체 무슨 기준과 이론이 있겠는가? 설령 있다고 해도, 젊은 연주자는 마땅히 여러 가지 성장과 변화의 단계를 거쳐야 하지 않겠는가?”
안정을 갈구하지 마. 끊임없이 불안해해. 변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의심해. 어려운 문장만 읽고 졸린 영화만 봐. 세상이 너를 괴롭히기 전에 스스로 먼저 자신을 괴롭혀. 지금의 너를 이해받으려고 애쓰지 마. 마땅히 성장하고 변화해. 누가 뭐래도 너는 너야. 그 무엇을 맛보든 너는 ‘너’를 맛보게 될 거야. 그러니 웅크리지 말고 바보 같은 세상을 향해 소리쳐. 온 세상이 너를 알아차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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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의 글입니다. 제가 남들보다 빨리 글쓴님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 글이에요. 부딪혀 깨질 수 있는 게 젊은이의 특권 아닌가 싶습니다. 환경을 떠나, 마음가짐의 문제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