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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20 21: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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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식사시간은 굉장히 오랜만의 일이라, 별것도 아닐 평범한 일임에도 일상을 벗어난 색다른 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떠돌이로서 상을 차릴 일이 드문 것은 어쩔 수 없다. 더군다나 우리는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여행 시작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식사를 한 적이 없고, 항상 걸어다니며 보관식을 씹어댄 것이 전부였다. 그런 생활이 이젠 반년에 가까울 정도일 지경이니, 상을 차리는 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이다.
이런 식생활을 해온 것은 여러 일에 휘말리다보니 얼떨결에 그랬을 뿐, 딱히 식사비나 시간을 걱정해서 그런 게 아니다. 오히려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을 지경이라 마음만 먹으면 식도락을 즐길 수도 있었겠지만, 마주앉아 식사를 같이 하고 있는 소녀가 특별하다 못해 특수할 지경이라 먹거리에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이 소녀가 했던 말 중에서는, '난 얼마든지 잘 수 있지만 얼마든지 안 잘 수도 있다.'거나 '먹을 기분이 나면 먹긴 하지만, 평소엔 딱히 안 먹어도 상관없다.'는 등의 허풍스러운 것이 몇 있었다. 나 또한 당연히 허풍으로 받아들였지만, 같이 지내면서 점점 반신반의해지더니, 이제는 사실이라고 믿게 되었다(실제로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식사는 이 소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모든 사건이 끝나고 정리될 때 즈음, 돌연 나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배가 고프니 뭔가 먹으러 가지 않을 것이냐고 물어왔다. 이 소녀가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보다도 훨씬 전의 일이라, 이때 나는 대체 무슨 의도인지, 아니면 내 생각이 틀렸던 것인지 참으로 여러 생각을 했다. 이 소녀가 제대로 된 식사를 하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긴 하지만, 가방에서 몰래 꺼낸 육포조각을 입에 물고 있던 광경은 언제나 봐왔기 때문이다. 나는 안 먹고 살아도 된다는 말을 사실로 믿고 있었으니 입이 심심한 것인가 했지만, 의외로 조금씩 먹는 것을 합쳐보면 식사량에 버금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소녀의 몸일 때 식사를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그때 이 소녀가 배고프지 않았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굳이 거짓말을 해가며까지 나와 식사시간을 갖길 원했다는 소리다. 정말 식사를 원했다면 혼자 해결할 돈도, 능력도. 권위도 있다. 그 이전에, 식사를 해야할리가 없다. 뼈 하나 부러졌다고 자살한 다음에 새 몸으로 부활하는 정신나간 방법을 쓰는 녀석이 몸 어디를 걱정하겠는가?
하여간, 내가 그녀의 몸을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몸을 걱정하진 않을 것이다. 음식도 섭취하지 않아도 되고, 잠도 안 자도 되고, 심지어는 원한다면 늙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소녀는 굶주렸을지도 모르겠다. 반년간의 짧디 짧은 여행, 그리고 수많은 일들. 그러니까, 굳이 나와 식사시간을 갖길 원할 정도로 배가 고팠다는 소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