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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0 16: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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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확인해주시고 답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절대자' 라는 관념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관념과 다르다는 것. 그래서 그것을 추종하고 신앙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동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에 다가간다는 것은 불교의 관점에서는 아닌것.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저도 불교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제석천, 또는 도리천, 도솔천의 '법'의 자리가 과연 인격인가? 이것에 대한 논의가 동양에서는 수천년간 이어져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인격으로써 변화무쌍한가, 또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주도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알기가 쉽지가 않으니 현대과학처럼 추론을 하여다가갔죠. 성리학으로 치면 이와 기의 근원이 있긴한거 같은데 변화 무쌍한거 같은데 진짜 인격이 있는건가? 당/송/명... 조선에 이르기까지 추론에 대한 검증과 논의로 많은 학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변화하는 원동력과 변화의 관계에 대해서 괘, 상수학(하도와 낙서, 역법 등), 이기론.. 등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심에 대해서 언급이 되는 유교 경전, 노자/장자의 언급,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삼라만상 변화의 중심에 대한 이야기들이 인격적인 것인가에 대해서는 토론만 있고 말씀하신것처럼 서양의 종교의 잣대와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신앙의 대상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발전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교의 역사적 흐름에서 주목할만한 재미있는 것은, 중국 한나라때까지 이어져오던 상수학의 중심, 역의 중심에 있는 변화의 근원의 자리, 태극의 자리를 인격으로 보고 있었던 기록들이 많은데, 당나라때까지 이어지다 오히려 송나라때는 이법으로써만 연구되는 (주자에 의해서) 추세가 보이게 됩니다. 유교의 제를 올리는 문화가 점점 퇴색되고 이법 연구에 치중되는 흐름이 보이다가, 명 쇠퇴기에 유교에는 없던 단어, 불교의 '천주' 라는 단어를 쓰면서 '천주실의'가 나오게 되었는데, 오히려 다시 한나라때처럼 인격신으로써 이법의 중심자리를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카톨릭이 들어오면서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유생들에게 퍼지면서 카톨릭이 천주학으로써 자리잡게 됩니다. (절대 기독교가 우월하다 이런 얘기가 아닙니다. 제가 볼때 기독교는 이렇게 이법의 변화 체계나 원리를 밝혀낸 것이 아무것도 없고 오로지 목적과 믿음의 자리만 강조하다보니 원리가 약하기에 발생되는 이단 발생 현상들이 많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아버지의 형상/성령으로 존재한다.. 등등의 이야기만 나오죠....)
정리하면, 불교에서 '천주'의 개념과 명나라 말기에 도입되는 '천주'의 개념은 다르나, 이법의 중심이라는 것은 당대 학자들이 동의하였고 이것이 신앙으로 받아들인 불교 승려나 유교 학자들은 없습니다. 즉, 기독교처럼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변화를 이해하고, 깨달은 사람들이 왜 그걸 믿어야하는지도 납득이 안되었기 때문입니다(다만 소승불교처럼 수행을 강조하는 사람들, 또는 도교에서는 그 도리천, 제석천을 기독교처럼 추종하여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파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천주'의 '인격적 실체'를 이야기하고 받아들였던 사람들이 천주교인들이 되었습니다(정약용, 정약전, 이기백 등... 당시 정조 임금도 경연장에서 이러한 인격적인 선언에 혼란을 가졌습니다. 분명 한나라때 문서와 후대의 문서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해서 반박을 할 수 가 없었던거죠. 저도 이 부분을 더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불교가 절대적인 근원자리에 대해서 신앙할 필요도 없고, 변화하는 현실을 넘어 변화의 진리를 깨닫는 부처를 이야기 하는 조교인데,
이에 대해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관점으로만 여타 종교들에 대해서 접근하여, 기복신앙이니, 우주의 중심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느니,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아에 생각도 못하고 있다느니 하는 얘기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종교로도 생각하지 않고, 심지어 마귀... 지옥불.. 이런 한심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로지 절대자의 유무에만 매달리는 거죠.
불교의 '만' 표시... 히틀러가 디자인적으로 거꾸로 뒤집고 돌려서 나치의 문양으로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태극의 형상을 나타내었고 그 중심으로 모이고, 또 중심에서 뻗어나가서 꺾이고 변화되는 진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분명 신앙의 대상, 추종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렇게 이법이든, 사물이든, 공과 색의 근원을 이야기하고자 했던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절대자의 자리'라고 저는 표현한 것이며, 어떻게 표현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뭐 다 이단이네, 자기만의 사상에 빠졌네 하는데, 제가 볼때 경전이 해석하는 사람 중심에 맞추면 그게 이단이지, 그것을 역사적인 자료들과 각 종교들이 말 한 것을 추린다고 이단이 되는 건 아닌거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들은 모두 조선 실록에도 있는 이야기며, 정약용 선생 일기에도 있는 이야기 입니다)
결국 동양은 변화와 원리에 집중하여 절대적 신앙일 필요가 있었냐가 주된 흐름이었다면,
서양은 목적에 집중하였다. 뭐 이렇게 되는거죠.. 결국 말씀하신 내용이 맞습니다. 다른 종교의 절대자에 해당되는 존재는 애초에 있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 절대자라는 표현과 관념 때문에 생기는 오해인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