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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 2017-04-08 11:21: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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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역사연구회

195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삼성화재해상보험에서 연수부장으로 재직중이던 정광수를 주축으로 해상보험의 시각에서 거북선을 연구하기 위해 결성된 '이순신 연구 동아리'를 모태로 했다. 여기에 기업연수 전문지 '월간 HRD'의 편집장이던 이병노를 비롯 교사, 홍보마케팅 담당자 등 다양한 직업인들이 합류하면서 동아리 형태의 연구회가 조직되기에 이른다.

이후 자료수집, 현장답사를 비롯 국내외의 크고 작은 조직 및 동아리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이순신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이순신과 당시 조선조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89 2017-04-08 11:12:5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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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포로 조지면 침몰했다.
공성전 양상의 전투는 거의 있지도 않고, 먼거리에서 화포로 조진 전투만 대다수다.
종이비행기라 폭발력이 없어도 그냥 화포로 조지면 침몰한다.


-이런 주장들은 당초의 통설에 가까운데,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근거로 비판적으로 접근하면 다 틀린 소리가 됩니다. 본인 주장의 틀린 부분은 언급하지 않고, "그래도 화포전이 중심 아니냐"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288 2017-04-08 11:07:2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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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2017-04-08 11:07: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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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2017-04-08 11:06: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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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2017-04-07 22:30:50 1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해전 수행 방식-화포전 중심이었는가? [새창]
2017/04/07 20:52:21
화포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근접전(접현전, 등선육박전)도 벌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 수군이 화포로만 왜군을 다 때려잡을 수 있었다는 주장에 대해서, 실제로는 근접전의 비중도 만만치 않았다는 반론을 하고 있는 겁니다.
284 2017-04-07 22:27: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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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수군의 해전이 백병전 중심이다-틀림
조선 수군의 해전이 원거리 화포전에 의존했다-틀림

조선 수군의 해전이 화포전 중심이었지만, 실제 운용에 있어서의 난점이 있었다. 해상요동에 의한 명중율 저하, 근거리 하향사격 불가, 부족한 화약 재고량, 인명살상에 유리하지만 선박격침에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부족한 탄종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그에만 의존하지 않고, 해전에 있어서 사수(궁수)를 적극 운용하였고, 근접전용 화약무기 등을 갖추었다.

실제 해전의 전개는 1-2회 방포 후 근접전(접현전, 등선육박전 포함)으로 이행되었다. 1차 사료에 의하면 화포사격 후 왜선에 등선하여 조선인 포로를 구출한 기록, 근거리에 붙어 판옥선에 오르려는 왜군과의 근접전, 6-10m 거리에서의 사격전 등이 나온다.

즉 충무공의 승리는 단순히 무기체계의 우위(판옥선과 화포)에 기한 것이 아니라, 당대 화포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잘 써먹어서 이뤄낸 것이다.
283 2017-04-07 22:02:34 1
임진왜란에서 조선 수군의 해전 수행 방식-화포전 중심이었는가? [새창]
2017/04/07 20:52:21
아뇨. 외려 기존의 통설-접현전, 등선육박전을 멀리하고 화포 중심의 해전이 벌어졌다-의 미비한 부분을 지적한 논문입니다.

화포의 사거리 등을 바탕으로 안전하게 원거리에서 화포로 때려잡았다는 인식과 달리 실제 해전에 있어서는 해상요동에 따른
화포 명중률 때문에 최대사거리에 턱없이 미달하는 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거라고 봅니다. 거기 더해 50m 이내의 근거리는
하방 사격이 곤란한 관계로 화포 사용에 제한이 있었는데, 조선 수군이 화포에만 의존하지 않고, 근접전용 무기를 챙겨서 실전에
사용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즉, '원거리에서 화포로만 때려잡았다'는 건 화포의 우위에 경도된 잘못된 생각이고, 실제 조선 수군은 근접전도 대비했고 실제
치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지적을 가지고, "화포가 중요했고 백병전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로 보시는 건 무리입니다.
282 2017-04-07 21:46:41 0
아니 님들 왜 100m 들고와서 근접전 햇다고 우기세요 [새창]
2017/04/07 17:16:36
조총 유효사거리에 대해서는 50m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배에 부속된 화포보다는 사람이 조작하는 조총 쪽이 사각 조절이 더 용이하기에, 화포와 마찬가지의 비율로 유효사거리가 깎여 나가지는 않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청동합금 덩어리의 조작과 개인이 들고 다룰 수 있는 개인화기의 조작을 동일하게 보는 건 무리입니다.

화포의 명중율이 최적화되는 지점은 70m입니다. 다만 이건 너무 가까우니까 200보 거리에서 방포를 개시하라고 되어있는 거죠. 실제에 있어서는 적선이 그 자리에 서서 맞아주는 게 아니라 다가오기 때문에 1~2회 방포 이후에 조총 유효사거리 내에서 전투가 벌어지게 됩니다. 기록을 보면 조총에 의해 피해를 입은 게 생생하게 나오죠. 원거리 화포전으로만 결판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281 2017-04-07 21:13:51 0
이순신 장군을 통해 본 조선 수군의 교리/현실 문제 [새창]
2017/04/06 21:25:22
[조선시대 수군 진형과 함재 무기 운용, 김병륜, 군사 제74호]에 보면 학익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학익진이 실제 대중에게 각인된 이미지와 달리 그 효용이 한정된 것으로, 화포 중심 해전에는 썩 잘 맞지 않는 함대기동이라는 지적입니다. 이하는 논문의 내용입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전사와 군함 발달사의 측면에서 볼 때 함포 등 화약무기를 동원한 상태에서 진행되는 해전이라면 전투시 배의 측면, 다시 말해 가장 많은 함포를 탑재할 수 있는 현측(舷側)을 개방하는 것이 제일 유리하다. 함포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단위 시간 안에 될 수 있는 한 많은 탄환을 적함에 쏟아 부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가장 많은 포를 탑재한 현측을 적함으로 향하게 하고 전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함포를 사용한 해전에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적응한 영국 해군은 현측을 개방하기에 유리한 단종진을 이용한 현측 사격 위주의 해전 교리를 발전시켰다. 1653년에 제정된 영국 해군의 전투지침(Fighting Instruction)은 적함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면 단종진(종렬진)을 형성한 상태에서 현측을 적선으로 향하도록 한 후 일제사격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조선시대 진형 중 학익진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현측이 아니라 함수가 적함을 향하게 되므로 함포 운용에 그다지 이상적인 진형이라고는 볼 수
없다. 물론 비스듬하게 측면을 개방해 적함을 향해 보다 많은 함포를 사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으나 이 경우 함수에 가까운 현측과 함미에
가까운 현측에 배치된 함포가 약간씩 다른 각도로 사각 조절을 하는 등 함포마다 별개의 사거리를 적용해야 동일한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이런
형태의 해결법은 함수에서 90도 각도로 현측을 적함 방향으로 정확하게 개방하는 방식에 비해 매우 불편해 별 실익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적을 향해 90도로 현측을 개방하지 않는 한 사격통제를 하기도 어렵거니와 실제로 화력집중을 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활약 시점보다 조금 앞선 1588년 무적함대를 자랑하던 스페인 해군이 영국을 공격할 당시 학익진과 유사한 개념의 ‘V자’형 혹은 ‘독수리 진형’(Eagle Formation)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전과를 거두지 못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보다 빠른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도 오스만 튀르크 해군이 학익진과 유사한 형태의 ‘V'자형 진형으로 기독교국 해군함대와 해전을 벌였지만 결국 패배했다.

물론 무적함대와 오스만 튀르크 해군이 패배한 까닭을 진형상의 약점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는 어렵겠지만 이 두 패전 사례는 학익진 내지 이와 유사한 형태의 진형이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무적의 효과를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함포전 운용에 다소 한계가 있는 이런 진형을 가지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조선 수군은 고유의 진형이 가진 내재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던 것일까.

일단 이미 언급했듯이 오행진 계열의 진형은 화약무기 운용에 주안점을 둔 함재 무기 운용을 지향할 경우 적응하기가 매우 부적합한 진형이므로 해상 투묘 등 사주경계가 필요한 시점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운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학익진의 경우 학익진의 기본 대형을 유지하되 사격 순간에는 평저선과 한국식 노의 장점을 살려 각 함정이 완만한 선회 기동으로 현측을 노출해서 사격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학익진과 함포 운용 전술을 조화시켰는지에 대해 당시의 사료에는 어떠한 구체적 묘사도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사료 중에는 이 문제를 해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남아 있다.

해사박물관에 소장된 수조규식은 해전 전투 방법을 설명하면서 “타수가 배를 부려 주위를 돌며 선회하면서 각 면에 장착된 화기를 적에게 일제 사격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조선 수군이 대형에 상관없이 해상 전투가 일정 국면 이상 진전될 경우 배를 선회함으로써 현측을 개방, 현측에 집중 배치된 함포로 집중사격을 했음을 보여주는 매우 흥미로운 사료라고 할 수 있다. 학익진도 이와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면 선회 기동을 통해 사격 순간에는 현측을 적함 방향으로 향하게 한 후 사격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방식에도 약점은 있다. 이 방식은 기본적으로 사격 순간에는 더 이상 함대 단위의 기동이 불가능해진다. 90도로 선회한 후 그 침로를 유지하면서 기동할 경우 적과 90도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적함과 거리가 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사격 순간 선회를 해서 현측을 적함에게 향하도록 하면 그 상태로는 더 이상 적함 방향으로 기동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사격 이후 다시 학익진 대형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적 방향으로 함을 이동시키기 위해서는 선회-기동을 반복해야 하며 이 같은 기동 상태에서 다시 현측 함포로 사격을 하려면 기동-선회-사격이라는 순서를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비효율적인 결과가 나온다.

다시 말해 함정의 좌우현에 함포가 설치된 이후부터는 함정의 이동 방향과 함포의 사격 방향의 축선이 직각을 이루게 됨에 따라 일제사격 후 돌격이라는 전통적인 전투법은 더 이상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없었다. 영국 해군이 함포 운용을 본격화한 이후 학익진 같은 횡렬진 대신 종렬진-단종진을 철저하게 신봉하고 이를 네덜란드 해군과 프랑스 해군이 신속하게 수용한 것도 이런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조선 수군은 평저선이라는 선형의 특징과 한국식의 노의 장점을 활용, 상대적으로 신속한 선회가 가능한 이점을 활용해 이러한 불리한 측면을 다소나마 극복할 수ㅡ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점을 토대로 볼 때 한산대첩처럼 해전이 벌어진 장소의 지리적 환경이나 전투 국면에 따라 학익진이 승리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도 있을지ㅡ모르나 학익진 그 자체만으로 해전 승리를 항상 담보해낼 수 있는 최적의ㅡ진형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사료적 측면에서 살펴봐도 임진왜란 당시 학익진의 역할에 아직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무수한 승리를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학익진이라는 진형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사례는 몇 차례 없기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난중일기나 장계에서 학익진이 언급된 사례는 현재로서는 단 세 차례만 찾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해상 이동 중 대형을 언급한 사례를 제외하면 전투시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운용한 사례는 한산대첩에서만 확인된다.

이외에 이순신의 임진왜란 관련 기록에서 학익진이 언급되는 사례가 두 차례 더 있으나 모두 기동 순간 혹은 전투 전 준비단계에서 적용되는 진형으로 언급되는 것일 뿐 전투 순간의 진형임을 명시하지 않았다. 현존하는 조선 후기 해상훈련 관련 고문서 12종 중에서 학익진을 수록한 문헌이 6종뿐이라는 점은 그런 측면에서 좀 더 깊게 숙고할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이는 중국 명나라 계열 진형인 첨자찰진의 수록한 수조 관련 문헌이 총 10종인 점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수조홀기(유물번호 71-772)에 학익진을 아예 누락시키거나 군점홀기에서 일자진과 유사하다는 언급만하고 학익진 그림을 생략한 것은 학익진이 나름의 장점과 함께 내재적 한계도 있었던 진형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조선 후기 수조 관련 문헌에서 첨자찰진의 수록 횟수는 10회로 1
위, 학익진과 장사진이 수록 횟수 각 6회로 공동 2위이므로 학익진 또한 장사진과 함께 상대적으로 중요한 진형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다. 다만 모든 수조 관련 문헌에 예외없이 수록될 정도로 압도적이고 대표적인 위치를 지녔던 진형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의 사례를 볼 때 조선 수군에서도 현측을 개방하기 유리한 단종진의 가치를 어느 정도는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 수군이 사용한 각종 진형 중에서 영국 해군의 단종진(종렬진)과 가장 유사한 진형이 바로 장사진이다. 현존하는 조선 후기 해상훈련 관련 고문서 12종 중에 장사진을 수록한 문헌은 6종이다. 이는 총 10종의 수군 관련 고문서에 수록되어 조선 후기 수군의 기본 기동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첨자찰진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수치이며 학익진과 수록 횟수가 동일하다. 결국 조선 수군의 진형 중에 장사진은 학익진만큼이나 비중이 있었던 진형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오위진법 계열 진형 중 학익진은 함정 선회 등으로 화력집중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고, 장사진은 기본적으로 화력 집중 문제가 문제가 없었으므로 다른 여타 오위진법 계열 진형에 비해 조선 후기에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중국 명나라풍의 진형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오위진법 계열의 진형은 상대적으로 그 위상이 약화되었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1700년대 중엽부터 수조 관련 문헌에 수록된 진형 중 명나라계열 진형들의 비중이 50%를 상회하고 시대가 흐를수록 명나라 계열 진형의 비중은 더 높아졌다. 이처럼 조선 후기 수군의 수조 관련 문헌에서 오위진법에 계열에 기초한 진형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는 것도 일차적으로는 조선 전기 진형이 가지는 내재적 한계 때문일 것이다.

오위진법 계열 진형은 물론이고 학익진조차도 함포를 주력 무기로 한 새로운 시대의 진형으로는 다소 한계가 있는 진형이었다. 접근 방법은 전혀 다르지만 기존 연구에서도 학익진 등의 약점을 지적하며 임진왜란 이후 도입된 명나라식 진형들의 상대적 우수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280 2017-04-07 20:55:56 0
임진왜란때 조선이 털린 이유 [새창]
2017/04/05 19:42:14
http://todayhumor.com/?history_27832

반박글 따로 썼습니다. 충무공의 해전은 오롯이 선박과 화포의 우위에 기댄 원거리 교전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점에서 파면 팔수록 더 사기스럽기 그지없는 위대한 인물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279 2017-04-07 11:46:13 1
무시무시한 트럼프.. [새창]
2017/04/07 10:43:04
시리아 정부군이 괜찮다는 게 아닙니다. 주요 세력 중 그나마 향후 안정에 가장 나을 거란 정도. 정부군이 이겨도 문제지만, 반군이 이기면 기독교와 수니파가 학살당하겠죠.
278 2017-04-07 11:35:24 0
무시무시한 트럼프.. [새창]
2017/04/07 10:43:04
전 이게 사이다인지 의문입니다. 아사드가 개놈이고,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공격을 가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시리아 내전은 장기화되어 더 많은 난민, 더 큰 고통만 남기고 있습니다. 그나마 IS등을 비롯한 반군이 내전에서 승리하는 것보단 정부군이 승리하는 게 일반 국민에겐 더 낫습니다.

잘못했다고 냅다 때리면, 결국 반군만 좋은 결과가 되죠.
277 2017-04-04 23:19:54 0
방 창문앞에 교회 십자가가 있습니다. [새창]
2017/04/04 13:31:27
http://www.goodlight.or.kr/link.do?link=fac/civ/GihCivil

환경분쟁조정제도를 이용하세요. 민사상 소를 제기하는 것도 가능한데, 일이 번거로워지실 겁니다. 피해입증도 해야하고요. 그보단 조정이 좀더 간단합니다.
276 2017-03-24 21:05:36 0
대한민국 주변 해역에서의 잠수함전, 대잠전 [새창]
2017/03/24 21:00:00
국방예산을 세계 1위로 쓰고도 209급 한 척 접촉도 못하고, 림팩에선 항모전단이 털린 천조국은 반성해야겠죠?

그게 아니라 애초에 잠수함이 더러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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