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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8 08: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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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국에는 자기만 고집을 피울수 없고,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 였습니다. 반대했지만 대세를 거스를수는 없었죠. 결국 노사모를 토대로 열린우리당 창당했고 언론들은 노무현당이라고 비하를 해대기 바빴습니다. 당시 신문 기사 입니다.
" 2002년 12월 17일. 새천년 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회견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당선되면 본격적인 정치 개혁과 민주당 개혁에 착수하겠습니다. 국민과 당원의 뜻을 모아 신당을 창당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의 문호를 전면 개방하겠습니다. 새 정치와 뜻을 함께하는 젊고 유능하며 도덕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새로운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서 당의 면모를 일신하겠습니다.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는 전국통합정당을 건설하겠습니다.”
당시 회견을 취재하던 기자가 물었다. “민주당 개혁이 대대적 당직 개편입니까, 아니면 신당 창당입니까?”
노 전 대통령은 “선거 과정(2002년 6·13지방선거, 8·8재·보선 참패)에서 나타난 민심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재창당, 신당을 포함해 민주당 대개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직 개편으론 되지 않습니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김대중 정권의 부패와 실정에 책임 있는 세력과 인사들도 응분의 책임을 지우도록 하겠습니다. ▲낡은 권위주의 정치의 행태를 극복하지 못한 인사 ▲인사에 부당 개입하는 등 국정운영과 쇄신에 장애를 가져왔던 인사 ▲부패와 관련 있는 인사 ▲실정에 책임 있는 인사 등은 법적 혹은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회견 이후 언론은 일제히 〈盧 “당선되면 신당 창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견 이틀 뒤인 12월 1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유효투표 총수 2476만141표 가운데 1201만4277표(48.91%)를 얻어 1144만3297표(46.59%)를 얻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인 12월 22일, 신기남·정동영·추미애·유재건·송영길·이강래 의원 등 민주당 초·재선의원 23명은 당 쇄신의 일환으로 ‘민주당의 발전적 해체’를 주장하고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밝혔던 정치 개혁에 대한 일종의 화답(和答)이었다."
-> 이런 신당론에 화답하여 신기남·정동영·추미애·유재건·송영길·이강래 의원 등 민주당 초/재선의원 23명이 집단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고 당내의 신구세대 의원들끼리 엄청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결국...
盧 “열린우리당 창당, 어쩔 수 없이 따라간 것”
과연 노 전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노 전 대통령이 염 전 의원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진실일까. 검증을 위해 노무현 정부 핵심 인사를 다수 접촉해 당시의 상황을 들었다.
김병준(金秉準) 국민대 교수는 “염 전 의원의 인터뷰를 읽었다”며 “염 전 의원이 전한 열린우리당 창당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은 맞는 이야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노무현 정부 임기 내내 청와대 정책실장과 교육부총리 등을 맡은 핵심 인물이었다.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을 독대(獨對)하는 경우도 잦았다. 김 교수의 이야기다.
“염 전 의원 이야기가 100% 맞아요. 열린우리당 창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원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노 대통령은 창당을 원하지 않았어요. 당시 노 대통령과 가까운 측근 그룹이 신당 창당을 주장했는데 노 대통령은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어요.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하게 정계개편을 추진하면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물리적인 분리보다는 화학적인 통합을 원했던 셈이죠.”
그가 말을 이었다.
“노 대통령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측근들과의 자리에서도 ‘내가 열린우리당을 만들고, 나중에 당을 부쉈다고 하는데 다 알지 않느냐. 내가 (민주당을) 쪼개고, (열린우리당을) 부수고 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 당 일각에서 열린우리당 창당을 강하게 추진했는데 추진한 사람들은 내가 놓칠 수 없는 인물들이고 주변에서도 그게(열린우리당 창당) 맞다고 하니, 내 고집만 내세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내가 따라간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하소연은) 다 맞는 이야기지요.”
-> 노무현 대통령이 마음을 바꾼 계기도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을 쪼개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는 데 반대했다고 하던데요.
“그분이 반대할 이유가 뭐가 있습니까. 본인이 원하는 당이 만들어지면 좋지 않겠어요. 저는 분당의 일차적인 원인은 당시 지도부에 있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 안 도왔던 사람이 계속 지도부에 있으면서 당을 장악하려고 하니까, ‘독자신당 창당론’이 나온 것 아닙니까. 그다음 원인은 노 전 대통령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당을 깰 마음이 없었다면 저희의 부탁을 들어줬어야 합니다. 한 대표를 모양새 좋게 물러나게만 했다면 당이 깨지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에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한화갑 대표를 만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로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에 반대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노 대통령이 당시 한 대표를 만나지 않은 것은 인간적으로 싫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구주류로 분류됐던 전직 민주당 당직자는 “2003년 초에 노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강철씨가 민주당 대구시지부장에 내정됐는데, 국회의원도 아니고 지구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시도지부장이 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며 “당시 당내에선 노 대통령이 신당 창당에 대비, 이 실장을 미리부터 내년 총선 ‘TK(대구·경북) 사령탑’으로 전진 배치해 놓은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씨가 독자신당 창당을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어서 ‘노심’이 신당 창당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기억했다.
이와 관련해서도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신당을 만드니 마니 할 때 노 대통령이 한탄하면서 나한테 한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단 한 곳도 내 공천장을 갖고 안정적으로 당선될 곳이 없다. 그런 내가 어떻게 남의 정치적 운명을 이래라저래라 하겠느냐’고 했다. 분당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노 대통령의 뜻이었다”고 반박했다.
李美卿 의원이 머리채 잡힌 것 보고 마음 굳혀
2003년 9월 4일 신당 문제를 결판내기 위해 열렸으나 또다시 난장판이 돼 버린 민주당 당무회의에서 구주류 한 여성 당직자가 신주류인 이미경 의원의 머리카락을 낚아채며 “나갈 테면 나가라”고 고함치고 있다. 이 의원 옆에서 놀란 표정으로 여성 당직자를 말리는 사람은 박금자 당무위원.
지금까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노 전 대통령은 ①민주당이 쇄신해야 한다는 점에는 찬성했지만, 신주류 강경파의 ‘독자신당 창당론’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었고 ②신주류 중진과 구주류가 주장하는 ‘당을 쪼개지 않은 통합신당’ 쪽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③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동교동과는 절대 같이할 수 없다며 신주류 강경파의 ‘독자신당 창당’을 주장했고 ④언론과 대다수의 정치인은 이를 노심이라고 믿었다. ⑤노심이 신당에 있었다고 해석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노 전 대통령이 본인 입으로 직접 독자신당을 지지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창당을 반대했다는 주장이 객관적 사실에 가깝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창당을 허락했다. 천정배 의원의 이야기다.
“노 전 대통령이 허락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탄생한 것이죠. 대통령이 받쳐주지 않는데 저희가 무슨 재주로 신당을 만들겠습니까. 결국 노무현 당입니다. 열린우리당은.”
그렇다면 당을 쪼개고 신당을 창당하는 것에 반대하던 노 전 대통령의 마음이 갑자기 돌아선 이유는 무엇일까.
염 전 의원은 “노 대통령이 (민주당이라는) 배를 수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고 했다.
“2003년 9월 4일 신당 추인을 위한 당무회의가 소집됐습니다. 이때도 민주당+알파(전국의 범개혁세력이 연대)를 할지, 독자신당으로 갈지 결론이 나지 않았지요. 그런데 이날 사달이 난 겁니다. 구주류가 당무회의 육탄 저지로 맞서면서 회의장이 뒷골목 싸움판처럼 변한 것이지요.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구주류 여자 당직자가 신주류 이미경 의원 등 뒤로 다가가 머리끄덩이를 힘차게 잡아당겼는데 이 의원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다음날 《조선일보》 1면에 나왔어요. 이후 신주류 중진들이 ‘구주류와는 절대 같이할 수 없구나!’라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대통령께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당을 깨야 할 것 같습니다’고 의사를 전달했지요. 대통령도 동의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대통령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당시에 ‘《조선일보》의 머리끄덩이 사진이 신당을 도왔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지요.”
염 전 의원의 증언대로 2003년 9월 4일 신당 추인을 위한 민주당 당무회의는 심한 난투극과 욕설이 오간 무법천지였다.
유인태 의원도 언론 인터뷰에서 “분당의 최대공신은 ‘문팔괘(文八卦·당시 여성특위 부위원장)’란 여성이에요. 이미경 의원의 머리채를 낚아챈 그 여자요. 그걸 보고 다들 ‘같이 일 못 하겠다’며 당이 깨진 거죠. 그 사건이 없었고, 공천방식이 바뀌지 않았으면 열린우리당 탄생도 없었고 제1당도 못 됐을 겁니다.”
-> 정리하면 측근들과의 불협화음, 시대적 요구, 새천년민주당의 구태행위 떼문에 거스를 수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에 천정배가 열린우리당 창당에 관해 사과한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와 호남의 적자라를 본인의 위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