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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35 2015-12-19 23:10:23 14
작전지시: 정치적 다양성 [새창]
2015/12/19 22:58:57
당원 가입 러시의 중심이 오유다보니 국정원. 기무사. 십알단. 정보사. 등등 오더 떨어졌네요.

다음 아고라. 82쿡등 몰락하는 과정과 똑같습니다.
7534 2015-12-19 23:05:47 1
오유 반대 정치 성향이지만 오유 하는 이유 [새창]
2015/12/19 22:45:18
댓글 학원 어디 나오셨어요? ㅋㅋㅋㅋㅋㅋ
7533 2015-12-19 22:54:27 7
오유 반대 정치 성향이지만 오유 하는 이유 [새창]
2015/12/19 22:45:18
노파심에 말씀드리지만 작성자님과 같은 분은 보수주의자기 아니라 정치혐오자 입니다.
신성한 보수의 가치와는 안드로메다 정도의 거리가 있급니다.
7532 2015-12-19 22:52:32 0
[새창]
공돌이가 아닌 문돌이라도 비공감만 받은 글을 잔뜩 모아놓고 여기가 편향되었다는 소리는 개소리라는건 알 수 있죠.
보류게에 비공감받은 글 모아놓고 오유는 편향되었다. 라는 개소리와 일맥상통 합니다.
7531 2015-12-19 22:49:21 0
오유 반대 정치 성향이지만 오유 하는 이유 [새창]
2015/12/19 22:45:18
재밌는 글 이네요. 당원 가입 러시 하니까 위기는 위기인가 봐요.
7530 2015-12-19 22:23:11 2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네 추구해야한다는 목표에는 절대 동의합니다. ㅎㅎ
근데 그 중도라는 말에 정치적이라는 수사여구를 붙여서 뭔가 되는양 나는 중도주의자다! 이러는건 말도 안되는거라는거죠 ㅋㅋ
7529 2015-12-19 22:10:42 3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그러니까 그게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ㅠㅠ 예수나 부처나 가능한거에요.
중도란 말은 최근 들어거 급격히 쓰이고 있는데 조중동에서 정치적 혐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중도나 중립 타령하는 사람들 보면 대부분 정치무관심자나 혐오자가 대부분 입니다.
마키아벨리님은 중용의 삶을 견지하시고 있는거고요. 중도라는 수준 낮은 카테고리에 들어가시면 안돼요. ㅎㅎ
7528 2015-12-19 21:57:45 4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내용이 다소 어려울수도 있어서 한방에 요약해드리면 성리학과 노자, 주자등 철학에서 세계 최고수중 하나이며 중용의 삶을 내재적 삶의 가치로 삼고 있는 도올 교수조차 박근혜 대통령보러 꺼지랍니다. 이게 바로 진짜 중용 입니다.
7527 2015-12-19 21:51:21 1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중도 = 옳은 길, 안철수가 만들어낸 허상이자 메시아적 단어이며 신기루 입니다.
7526 2015-12-19 21:50:31 5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마키아벨리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은 정확히 중용 입니다. 정치적 중도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 입니다.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해드리면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12세기의 성리학의 끝판보스인 주자가 말하는 '중용'의 큰 의미중 하나가 시중(時中) 사상입니다. 일명 상황(時)의 중(中)입니다. 세상은 무한히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인정하고 그 변화에 맞춰 정확한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중입니다. "수시이처중야(隨時以處中也)라!" "그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정확한 중을 찾아 처해야 한다!" 여기서 '수시'는 상황의 변화입니다. '처중'은 그 상황분석에 따른 정확한 판단과 실행입니다.

또한 중용을 영어로는 golden mean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영어 단어 속에는 mean 즉 ‘중간’ 이라는 정지되어 있는 수치적 개념의 중용을 강조하고 있어 동양의 역동적인 중용의 의미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중용이란 A와 B의 수치적이거나 기계적인 중간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부인의 고부 갈등에 중용을 지킨다고 어머니가 계신 안방도 아니고 부인이 있는 부엌도 아닌 거실에 있는 상태가 중용은 아니라는 것이죠. 중용은 모든 개인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수학적인 중간이 아니라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하고 역동적으로 그 기준이 움직이는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수치입니다. 중용은 이도 저도 아닌 중간의 위치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때로는 나아가고 때로는 물러설 줄 아는 진퇴를 아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조직 내에 옳지 못한 결정이 내려질 때 중용을 지킨다고 가만히 침묵한다거나, 조직의 생존을 위협할 만한 불의에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적당히 타협하는 것 역시 중용은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침묵과 불의에 타협하는 행태, 즉 안철수식 중도, 적어도 한국적인 정치지형에서의 중도라는 것은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마키에발레님이 말씀하시는 범주는 중용입니다. 중도가 아닙니다.
그런 인물을 언급해본다면 융화주의자, 여운형 같은 노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7525 2015-12-19 21:39:29 0
제가 진짜 이해 안되는거 한가지 (마지막 글) [새창]
2015/12/19 21:27:33
편항적이지 않고 상식적인 게시판입니다.
그럼 제 질문에 대답해보세요.

얼마 받으세요?
7524 2015-12-19 21:38:26 6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아예 다른 말 입니다. 의미가 없다뇨. 중용과 중도와 중립은 다 별개고 나름의 의미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우리나라에 중도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유럽식의 정의인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습니다.

정병기 교수의 논문의 결론을 인용해드리겠습니다.
<참고문헌>
김수행ㆍ정병기ㆍ홍태영, 2006, 『제3의 길과 신자유주의: 영국,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개정판,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중략)
5. 중도는 가능한가: 발전적 종합과 실천의 미학

공간적 의미에서 단순히 양 극단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도는 의미가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역사적으로 모든 중도는 자신만의 내용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중도도 분명 인간의 발전을 위한 정치를 추구하고 그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무사안일과 현상유지만으로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적어도 올바른 중도이고자 한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는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역사적으로 보아 왔듯이 중간의 위치를 의미한다 하더라도 그 추구하는 바는 언제나 분명한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좌익에서 추구한 중도든 우익에서 추구한 중도든, 언제나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양 극단을 지양하며, ‘개인의 자유를 토대로 하는 공동체의 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도는 대연정과 같은 좌우 타협의 주도세력이 될 수 있었다.

둘째, 단순한 중간이나 절충적 종합이 아니라 발전적 종합이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논쟁된 모든 ‘제3의 길’ 혹은 ‘중도’는 단순한 공간적 중간도 아니었으며 절충적 종합도 아니었다. 모든 주장들은 내용적으로 ‘발전적 종합’을 지향했다. 중도의 진정한 의미는 양 극단에 대해 철저히 알아야만 정립될 수 있다.

셋째, 극단을 지양하는 것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비판성을 가져야 한다. 현실을 비판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그 자체로 퇴보이며 역사적 정의에서 도태되는 수구적 의미의 보수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역사의 흐름이라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배를 상상해 보자. 전쟁이나 분열, 부정부패나 혼란과 같이 역사의 흐름이 때로는 올바르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배의 사공이 우리라고 한다면, 적어도 잘못된 강물의 물살만큼이라도 노를 저어야 그 흐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그 흐름의 현실을 비판하지 않는다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잘못된 흐름을 수구적으로 지켜나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일관성 있는 실천력을 담보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중도가 처음 의도했던 발전적 종합을 지켜나가지 못하고 체제적응의 길을 좇아간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양 극단의 탄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좌초된 경우도 있지만, 의지의 부족이나 권력 추구에 의해 스스로 포기된 경우도 적지 않다. 실천성을 담보하는 것이야말로 마지막으로 언급하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내용만이 아니라 현실로 존재할 수 있는 중도적 정치세력은 이러한 실천성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요약을 해드리면..

첫째, 중간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음에도 그 추구하는 바는 언제나 분명한 내용이 있었다. 반면 안철수와 같은 작자는 항상 두루뭉실 했습니다.

둘째, 절충적, 단순한 중간을 표방하지 않아야 하고 발전적 종합을 지향해야하지만 안철수와 같은 중도는 현실에 대한 비판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중도라고 볼 수 없고 기회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마지막 단락에서 일관성있는 실천력을 분명히 언급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태어났던 중도세력과 안철수까지 일관성있는 실천력이 있던 적은 안타깝게도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정치적 중도는 허상에 가까우며 악취나는 썩은음식을 보기 좋게 포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7523 2015-12-19 21:34:08 0
제가 진짜 이해 안되는거 한가지 (마지막 글) [새창]
2015/12/19 21:27:33
그러니까 편향이 왜 잘못됐는데요?
설명을 해보세요.
7522 2015-12-19 21:32:21 0
제가 진짜 이해 안되는거 한가지 (마지막 글) [새창]
2015/12/19 21:27:33
얼마 받으세요?
7521 2015-12-19 21:29:31 7
오유에서 중립 운운하시는분들 [새창]
2015/12/19 21:09:17
그건 중립, 중도가 아니라 중용 입니다.
정치적 중립, 정치적 중도. 그런건 있을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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