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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31 1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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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일본 어느 지역에 장기 출장 갔던 시절 이야기...
숙소로 잡아주신 그 지역엔 마땅한 식당이 없어서 ㅠㅠ
식대는 영수증 처리해주신다고 해도 숙소 주변에 덜렁 대형 고급슈퍼가 두 개,
밤에만 여는, 재즈만 틀던 고오급 이자카야가 두 개....
근데 일이 매일 오후 15시 이후부터라, 굳이 맛난 거 먹으러 돌아다니기도 귀찮....
근데 우연히, 숙소 근처에 런치시간만 한다는, 카레만 한다는 집을 발견!!!
아싸!!! 맨날 먹어주겠어!!!!
기염을 토하며 입장!!!
근데 손님이 아무도 없음....
사장님은 저 위에, 보아 양의 다양한 눈길을 받고 있는 분 나이 또래? 정도의... 오동통하다 할 수 있는 청년...
메뉴도 정성껏 손글씨로 "건강지향 어쩌구" "10종류 베지터블 어쩌구".....
아싸!!! "베지터블 카레 플리즈~~"
주문하자마자 5분?8분?도 안됐는데 이미 나옴!!!
오오~ 이 얼마만에 먹어보는 베지터블인가!!! 텐션 맥스!!!!
그런데..... 기름에 튀긴 바삭바삭 베지터블!!! (의사가 튀긴 음식 그만먹으라고 경고하고 있던 시기)
텐션 급 떨어지며... 다음엔 안 튀긴 베지터블 시켜야쥐!!! 라며 맛나게 먹고, "잘 먹었어요!!" 지불하고 나옴.
다음 날 점심, 또 찾아감!!!
손님은 역시 나 뿐....
"안 튀긴 베지터블 플리즈!"
안 튀긴 베지터블은 없다고....
해서, 그럼 해산물 카레를 시킴... (의사의 경고를 떠올리며...)
근데... 뙇!!!! 튀긴 해산물을 얹은 카레가 나옴...
엥 - - ;;; 다음엔 안 튀긴 해산물을 시켜야쥐.... 튀긴 건 뭐든 맛있는 건지, 그 청년이 특별히 잘 튀기는 건지, 맛있게 먹고 나옴....
다음날, 정기휴일...
다음날, 역시 아무도 없는 손님....
신문 읽고 앉아 계시던 청년 사장님께 "안 튀긴 해산물이나 안 튀긴 베지터블 프리즈"
안 튀긴 해산물도 안 튀긴 베지터블도 없다고....
해서, "가끔씩... 고기도 먹어주자" 싶어서 "안심?인지 등심인지? 하여간 고오급고기카레 플리즈"
뙇!!! 고기 튀김을 얹은 고급고오기카레가 나옴...
어...?? 싶었지만, 사장님이 쑥스러움이 많으신지 카레만 주고 그 좁은 식당 어딘가에 숨어계신지
지불할 때와 주문할 때 이외엔 눈에 안 띄심...
그 다음 주, 또 찾아가도 손님은 나뿐.... "뭐든지 안 튀긴 걸로 플리즈"
"우리집엔 안 튀긴 거 없음"
"???? 건강지향어쩌구 여기저기 구구절절히 써 놓으셨던데... 메뉴 어디에도 모든 재료 다 튀김이라고 안 써 있는데, 안 튀긴 게 없다구요...???"
"없음...그리고 우리집은 건강만 지향함"
"그럼 혹시... 제가....약을 먹고 있어서 그런데, 혹시 가능하다면, 베지타부르을, 전자렌지에 돌려도 좋고 그냥 쌩으로도 좋으니깐 안 튀기고 주시면 안 될까요???"
"이미 튀길 준비를 다 해놓고 있어서 그런 건 불가능"
그날도 변함없이 손님 나하나 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냥 나오기도 뭐해서 튀긴 10종류 베지터블 맛나게 먹고 나옴...
지불하면서, 사장님도 나도 함께 점점 오동통통해지고 있음을 느끼며 끈끈한 정신적 유대감을 나눈 듯...
그렇게 건강지향 모든 재료를 튀기는 마인드의 젊은 사장님 카레 방문기와도 같은 나의 오동통 장기출장 끝나고....
몇 달 후, 우연히 그 지역을 지나가다, 너무 궁금해서 굳이 그 카레집 앞까지 가보니 그, 모든 재료를 튀기지만 메뉴에는 튀긴다고 일절 언급없는, 바삭바삭 맛있는 튀긴 재료를 얹어주는 맛있던 그 카레집 작은 현관 앞에, 손글씨로 "성원에 보답하고자 열라 메뉴 개발 중... 다시 돌아오겠음...어쩌구..."라고 써 있던데...
다음 해, 그 옆 지역 출장 가게 돼 오랜만에 건강지향 10종류 튀긴 베지터블 카레를 먹어보고 싶어 일부러 스케줄을 만들어 찾아가보니 "메뉴 개발 중... 다시 돌아오겠음"이라던 종이 붙어 있던 흔적만 남아 있고, 안에 있던 테이블 등 집기마저 없는 듯....
그러고 보니, 튀긴 치즈와 튀긴 달걀을 올린 카레도 저 집에서 먹었던 기억이.....
(토핑 메뉴에 달걀, 치즈 등등 써 있길래 치즈랑 달걀 시켰더니, 뙇!!! 하여간 뭐든 다 튀겨버리는 건강지향 카레집!!! )
결론 : 1. 그 이후, 백면서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홀로 사장님 알바 회계까지 다 하시는 듯한 식당은 거르게 됨.
2. 첫 날, 어? 싶으면 한꺼번에 다 물어보자... (안 그럼 매일 가게 된다 ㅠㅠ)
3. 튀긴 건 뭐든 정말 맛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