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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05 0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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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애장품. 관. 소리;
2일차: 오류, 오후, 오빠;
3일차: 외국, 정답, 느낌
4일차: 식사, 말, 첫사랑
함께 온 나의 애장품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이미 차가워진 관 속의 나를 바라본다. 주변의 울음소리가 공기 분자의 떨림을 타고 내게 다가왔다. 떨림은 내 고막을 때리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간다. 오류가 난 컴퓨터처럼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늦은 오후의 온기도 느끼지 못한 채, 이제는 만져 볼 수 없는 세상을 피할 필요도 없이 훑고 지나갔다. 먼저 간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잠시 해 본다.
나는 외국 한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곳이 어딘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아버지와 단둘이 탔던 귀국 비행기 안에서 시작한다. 아버지는 당신 본인과 딸에 대한 책임감으로 삶의 많은 부분을 보냈다. 다만 어린 딸이 안쓰러워서였을까? 평생에 걸쳐 당신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나도 그렇게 성장했다. 정답이 있는 일을 좋아했고, 내 느낌과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는 서툴렀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나를 드러내지 않았다.
나의 감정에 작은 균열을 낸 사람은 나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나의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유난히도 나의 과거와 현재 내 감정을 궁금해했다. 여러 질문으로 나를 귀찮게 할 때마다 그가 얻은 소득 대부분은 아무 말 없이 식사에 집중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성과가 있었다. 하루는 최초의 기억 그 이전에 있는 어머니와 오빠에 대한 모습을 이야기했다.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치열하면서도 따뜻한 감정을 진하게 느꼈다. 우리는 나의 아버지가 느꼈을 슬픔과 내가 느꼈던 무거운 공기를 짐작해 보았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소녀의 울음소리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그날은 햇볕의 따뜻함도 느껴지지 않는 맑은 날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발걸음을 옮기던 그 날이었다. 다시 돌아와 나를 조용히 안아 주었다. 그날만큼은 나의 모든 시간을 위해 따뜻하게 울어 주고 싶었다. 남이 되어서야 나를 이해하는 내 모습이 바보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위해 울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제야 햇빛은 온기를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