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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9 20: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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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금의 경우 80~90년대부터 일본 문부성 장학금이라고 해서, 사실 이 문부성 장학금을 타서 대학원 유학을 하신분들이라면 굉장히 경쟁률도 심하고 시험으로 선발되서 수혜받을수 있는 장학금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명문사학으로 알려진 와세다, 게이오는 해당이 안되고, 주로 일본 구제국대학들(동경대, 도쿄대, 북해도대 등)에 유학하신 분들이라면 사실상 이 장학금을 수혜받지 못하면 학위과정을 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오늘날에야 미국 칼텍이나 미시건대 UCLA들이 레벌이 높고, 유럽권 대학 유학생도 많지만, 한일물가차이가 두배넘게 나던 80~90년대에는 일본정부에서 수여하는 저 문부성 장학생에 선발되기 위해 경쟁도 치열했다고 들었습니다.
굳이 일본 구제국대학을 가서 정치학이나 법학을 전공한 케이스가 아니라면 이공계 유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모두 친일파이고, 식민제국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습니다.
사실 갑신정병을 일으킨 김옥균정도가 일본 최고액권의 모델이었던 후쿠자와유키치에 의해서 포섭된 친일파라고도 하지만, 제물포조약이후 사절단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누군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조선은 대적할수 없다고 염세주의에 빠진사람도 있었고,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같은 사람들은 일본의 문물의 받아들여서라도 부국강병을 하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일본의 진심과 저의를 간파하지는 못했지만 한일합방을 그리 허무하게 내어준데는 군사와 사회정치, 화폐 개혁을 꿈꿨던 젊은 관료였던 김옥균의 과오보다 일본의 궁성침투사건때 일본으로부터 선물받고 미국으로부터 직접 구매해서 사들인 개틀링 건 단 한발조차도 경복궁이 상할까봐 못쏴봤던 고종과 관료들 그리고 이때 사들인 개틀링건은 우금치에서 우리 백성인 동학농민군을 학살하는데 사용됩니다.
말이 길어졌는데 역사에 대한 평가를 좀 더 엄정히 할 필요가 있고, 비교적 국권침탈이 이루어지던 초기에 친일파와 매국노는 구별할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