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카페 5년차의 이모저모
게시물ID : menbung_2053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재와빨강
추천 : 16
조회수 : 2861회
댓글수 : 62개
등록시간 : 2015/07/08 16:55:30
후, 잠시만요 한숨 좀 쉬고...
 
안녕하세요, 햇수로 5년을 지나 6년차를 바라보고 있는 한 마리 바리스타입니다.
알바 2년과 정직원 3년이군요... 그 사이 매니저 직도 겸했었고, 아무튼 벌써 6년이 다 되어 간다니...
각설하고,
 
1.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
 
당시 제가 테이크 아웃 커피 전문점 매니저로 있을 때였습니다.
ㅅ동에 있는 매장이었는데 유일하게 홀이 있는 매장이어서 잠깐의 여유를 즐기시는 분들도 많고 하여튼 그랬어요.
사건은 한가롭고 평화로웠지만 그게 폭풍전야일거라곤 생각도 못했던 어느 일요일 날
당시 ㅅ동 근처엔 등산코스가 있어서 굉장히 많은 중년 손님들이 몰렸습니다.
주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가시는 손님들이 오전, 산을 타고 내려와 여담을 마무리 짓는 손님들이 오후에 분포되어 있었죠.
저는 평소처럼 열심히 태운 콩가루즙을 뽑아댔습니다.
솔직히 하루 몇 시간동안 바에 서 있는 동안, 어떤 손님이 오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저 옷차림만 보고 등산객들이구나, 하고 말아버리죠. 문제는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부부처럼 보이는 한 중년남녀가 들어와 나란히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음악소리 때문에 제대로 대화가 들리지도 않거니와, 남일에 워낙 신경 안 쓰는 편이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신경도 안 썼습니다.
조금이 지나고, 한 남자 손님이 커피를 주문하고 앉을 테이블을 물색하다가 두 사람을 보고 맙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부부 같은 두 사람은 불륜커플이었고 후에 들어온 남자 손님은 여자분의 남편이었습니다.
일순간 남편분의 눈에선 혹한의 바닷가처럼 싸늘함이 감돌다, 이내 베수비오 화산을 방불케 할 정도로 이글거리는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전 당황한 나머지 우유스팀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발견한 순간
아내의 얼굴은 마치 살해당하기 직전의 릴라 크레인을 연상케 할 정도로 끔찍하게 일그러지더군요.
남편분은 마치 분노조절에 이상이 있는 사람처럼 주변에 비치된 물건들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거기에 화가 난 나머지 저기요! 하고 소리쳤지만 남편분의 귀는 이미 세상과 단절되어 어떤 소리도 듣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남편에 행동에 당황한 아내분은 소리를 지르고, 그 옆에 있던 내연남은 도망가려 하더군요.

그런데 쉽게 도망이 가 지겠습니까? 당연히 잡혔죠.
문제는 그 과정에서 테이블이 하나 완전히 못쓸 정도로 파손되었고, 의자가(나무였습니다) 세 개나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제 장점 중 하나라면 비브라늄으로 긁어도 실기스 하나 안 날 정도로 멘탈 튼튼데스 입니다.

결론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경찰을 불러 빠르게 해결했습니다.
그 사이 남편분은 폭력만 휘두르셨고, 저를 포함한 다른 분들이 말리긴 했지만... 내연남은 바닥에 웅크리기만 했고
아내분은 구석에서 울기만 하더라구요. 남편분은 계속 분노 때문에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구요.
사람이 그렇게 화가 나서 핏줄 선 거 태어나서 처음 봤습니다.
 
아무튼 사건은 그렇게 해결이 되었고, 저는 그 뒷수습하느라 한 시간동안 알바생과 함께 유니폼이 흥건하도록 몸을 움직였다죠....
암튼, 그랬다고요.
요약.
1. 평화로운 일요일
2. 불륜커플 등장
3. 여자 남편 등장
4. 전쟁터가 된 매장
5. 수습으로 고생하는 알바와 나
 
2.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
 

 
1
1과 동일한 회사였고, 매장만 다른 경우였습니다. 그날은 하루가 수상쩍었습니다.
오전근무를 끝내고 퇴근을 할 무렵 받은 전화 한 통, 오후 파트 직원의 "나 응급실이야."
전날 회를 먹고 배탈이 나 응급실에 실려갔다더라구요. 덕분에 하루 16시간을 근무하게 된 저는 한숨을 푹 쉬며 근무를 이어갔습니다.
오후 두 시쯤. 손님이 적당히 빠지고 쉬엄쉬엄 할 무렵, 쇼케이스에 빠진 빵을 굽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 할 즈음이었습니다.

- 학생, 커피 두 잔 줘 봐요.
아주머니 두 분이셨습니다. 웃음기가 얼굴에 가득한, 막 부엌에서 일을 하다 나오신 어머니 상 같은?
커피를 주문하고 두 분께서 넌지시 뒷말을 덧붙이십니다.

- 근데 내가 동전이 많아서 그런데 동전 괜찮지?
저는 아무 생각 없이 네~ 하고 대답해버렸습니다. 뒤에 일어날 크나 큰 일의 무게를 생각하지도 못한 채 말이죠.
두 분은 갑자기 빵도 몇 개 먹고 싶다며 몇 가지를 더 고르셨고, 금액이 팔 천원이 조금 넘어갔었습니다.
갑자기 한 분이 가방에서 온갖 잡다구니를 꺼내기 시작합니다. 안경케이스, 성경, 노트, 그리고 지갑
전 당연히 지갑에서 돈을 꺼낼 줄 알았죠. 그런데 지갑을 내려놓더군요.
그리곤 가방에서 느껴지는, 불현듯 악몽에서 헤어나오질 못하다가 갑작스럽게 깬 다음 등 뒤에서 느껴진 서늘함.
그 서늘함이 저를 감싸고 놓아주질 않더라고요.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가방 안엔, 동전들이. 그것도 오백 원도, 백 원도 아닌 오십 원 짜리가 아주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슨 동전 수집하시는 분인 줄 알았습니다.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오십 원짜리 동전은 처음 봤습니다. 심지어 매장에서 구비하고 있는 오십 원 짜리 동전보다 많았습니다.
그렇게 전 당황한 목소리로 스탭룸에서 밥을 먹고 있던 알바생을 불러

일일이 돈을 셌습니다....
그 상황에서 안 된다고 하면 아까는 된다며? 루트로 빠질 게 눈에 선했습니다.
신기한 건, 돈을 맞췄다는 수준으로 가방에 있던 오십 원과 두 분이 주문하신 가격이 똑같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두 분은 커피와 빵을 사서 유유히 사라지시고, 저와 알바생에게 남은 건 지독한 구리냄새와 퉁퉁 불은 라면뿐이었습니다.

2

이번 건 좀 기분나쁜 일이었습니다.
오후 다섯 시 즈음, 퇴근 시간이 다다를 무렵. 러쉬를 대비해 할 일이 많아집니다.
테이크아웃 매장 특성상 중년과 노인분들이 굉장히 많이 오십니다. 가격이 싸기 때문이죠.
저는 싸구려 원두라도 맛있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관리를 정말 철저히 하고 항상 샷도 균일한가 테이스팅을 했죠(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처럼 샷을 뽑아 맛에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던 중, 흰머리가 성기게 돋아난 노인분이 직원을 불러 주문을 합니다.
그런데 이 노인, 저를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제 뒤에 있는 여자 알바생을 뚫어져라 쳐다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노골적으로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고, 입술은 거머리처럼 꿈틀대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한 잔 달라더군요. 계산 내내 노인은 알바생의 뒷모습만 보고 있었습니다.
알바생 뒷태에 돈이라도 걸려 있는 줄 알았네요.

저는 빠르게 눈치를 챈 뒤 알바생에게 말했습니다.

- ㅇㅇ씨 창고가서 물건 좀 정리해주세요.

알바생은 갑작스런 내 말에 당황하면서도 뒤에 선 음흉한 노인 때문에 금세 눈치를 채고 재빨리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커피를 타기 시작하자 등 뒤에서 말이 들려왔습니다.

- 에이, 커피는 여자가 타줘야 맛있지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게 하나 있다면,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당하는 겁니다. 물론 그 직원들이 잘못했을 경우 사과하는 건 맞지만
무조건적인 사과, 다 필요 없고 사과해, 무릎꿇어 같은? 이런 경우도 해당되겠죠. 성희롱.
순간 커피에 아밀라아제를 첨가해드릴까 0.8초 고민하기도 했습니다만 서비스에 특화된 몸뚱어리가 그걸 막더군요.
얼굴에 조커 미소 같은 뒤구린 웃음을 품은 채 그분 께 커피를 안겨드리고 저는 그분이 갈 때까지 카운터에 서서 그분을 노려봤습니다.
후에, 여직원은 노인이 한 말 때문에 소름이 돋았다는군요.
그러게 일할 때 치마 좀 입고 오지 말라고 말했지 않느냐 라고 했던 제 말을, 그 이후 꼬박꼬박 듣더군요
바에서 일을 하면 화상 입을 일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반바지 치마 굽 있는 신발을 금지하는 거구요.

아무튼 그 손님은 제 철벽에 진저리가 났는지 그 이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뭐, 모르죠. 저 없을 때마다 왔을지?
 
 
3
 
저녁이라고 끝난 게 아니죠. 머피의 법칙의 지속시간은 랜덤인데, 이날 하루를 몰빵당한 기분이었습니다.
무슨 커플이 와서는 서로 껴안으며 서로를 탐하더군요. 네, 주문 받는 카운터 앞에서요.
솔직히 니들이 뭔 짓을 해도 나는 상관 안하겠다 모드였는데 이 두 쌍의 뱀은 서로가 한 몸이 된 것처럼 행동하더군요.
당시 본사에서 버블티를 신메뉴로 내놓는 병크를 저질렀는데, 덕분에 맞은편 가게랑(버블티 전문점) 싸움나고 난리도 아니었죠.
이 두 커플이 주문한 건 타로 버블티 두 잔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별 탈 없이 버블티를 만들 생각이었습니다.
 
- 버블 마아아아니~ 마아아아니~ 쥬떼여!
 
...
...
 
농담 아니고 진짜 저렇게 말했습니다.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이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합니다.
혀를 직화구이라도 했는지 그 오글거림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래서 버블 많이 달라길래 많이 주긴 했습니다.
컵의 14온즈 테이크아웃 컵의 절반을 버블로 채워서 말이죠. 배불러 죽어도 모르겠단 심정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눈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음료보다 많은 타피오카의 향연을. 컵 속에서 꿈틀거리는 그 까만 알갱이들의 움직임을.
 
뭐, 다 먹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음... 적으니 대충 이 정도 나오는군요.
사실 돈 던지기, 기저귀 투하, 반말테러, 음료 바닥 샤워 정도의 진상들은 이제 웃으며 넘길 정도로 저는 하루하루 보살이 되어가고
알바생들은 그런 저를 보며 할렐루야를 외치더군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다잖아요.
 
오늘도 빙수 바닥에 엎고 말도 안 하고 튄 학생 샊... 아니 손님들 때문에 홍역을 치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좋은 하루 되시라고 웃으면서 맞이하는 바리스타 되렵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