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게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개신교, 특히 선교를 싫어하게 된 계기를 써볼까 합니다.
때는 바야흐로 초등학생 때, 토요휴무일이 실행되기 전부터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만 학교를 나가지 않았던, 약 3년에 걸쳐 일어난 일이다.
그 때 당시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꽤 큰데다가 외부인 출입이 쉽지 않은 구조라 내 또래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다. 아마 997가구인가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1000가구가 되면 학교를 지어야해 그 밑의 숫자로 했다고 들었다). 그 아파트 단지에는 동갑인(모두 같은 학교) 그리고 지금까지도 기억하는 애들의 숫자가 열을 넘으니 그 수가 꽤 많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단지 내 상가에 있는 교회의 유치부 출신이었다. 즉 대부분이 교회를 나갔고, 그로 인해 교회를 안다니는 나머지도 교회에 곧잘 나갔다. 하지만 나는 예외였다.
그 때 난 같은 아파트에 살고 같은 학원에 다니는 네다섯 명의 아이들과 같이 하교를 하곤 했다. 그 것은 4교시만하고 급식은 먹지 않고 끝나는 토요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토요일은 유난히 무언가를 홍보하고 선교하는 사람들이 많은 날이었다. 가장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은 단언컨대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라 말하는 선생님들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탓인지 언제나 먹을 것을 한가든 들고 있던 그 사람들이 내가 개신교를 싫어하게 만든 계기를 만든 주체들이다.
그들은 단지 내의 교회 유치부를 담당했던 선생님이었던 듯하다. 내가 같이 다니던 무리는 나를 제외하고 전부 그들과 서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친구들을 예뻐했다. 그래서 그들은 내 친구들을 만나면 선교는 뒷전이 되고 1~5분정도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먹을 것을 안겨주곤 했다. 내 친구들이 교회를 나가건 빠지건 그건 변함이 없었다. 나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옆에 멍하니 서 있곤 했다. 그 후 다시 길에 접어들 때 나만 제외하고 모두 먹을 것을 먹고 있다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이사와 나와 같은 입장인 친구 하나가 추가되어도 옆에서 멍 때리던 사람이 늘었을 뿐, 변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고 그게 익숙해져 멍 때리고 있던 시간이 소외감(그때는 그게 소외감인줄 몰랐다. 그냥 왜인지 모르게 섭섭하다고만 생각했을 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심심함만을 느끼는 시기가 왔지만, 무뎌졌지라도 분명한 것은 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상처받아 왔다는 것이다.(당시 난 겨우 초등학생이었다)
그리고 그 일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야 끝이 났다. (어쩌면 졸업하고 이사하지 않았다면 중학교에 가서도 계속됐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예뻐하던 아이 친구로 보이는 애가 있으면 한번이라도 먹을 거 주면서 너도 교회 와라는 말을 할 법도 한데. 그런 일은 없었다.
사실 이 사람들이 원래 교회 다니던 애들 에게만 먹을 것을 주었는지 아니면 모든 애들에게 주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만약 원래 다니던 애들한테만 주었다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 사람들이 싫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꾸준한 차별아닌 차별로 인해 나는 선교하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하게 되었다. 그 때의 친구들이 나에게 너 너무 심한 거 아냐?-라고 말 할 정도로 교회 이야기 하는 사람에게 예의 밥 말아 먹은 것처럼 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친절하게 선교하던 어느 아저씨에게 싸가지 없게 굴었던 것이 가끔 생각나 후회되기도 한다.
그리고 약 2주 동안이나 꾸준히 내게 선교하던 어느 아주머니에게는 선교하는 사람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라 알려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기분이 (이제와서는) 든다.(당시에는 상당히 귀찮았다)
전 오히려 지금보다 초등학교 시절 더 많고 다양한 선교활동을 당해 보았습니다. 그 때는 그것을 거절하는 것을 잘 하지도 못했고 선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면 좀 귀찮고 지루하긴 했지만 나쁜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와중에 하나님 안믿으면 지옥간다 겁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보통은 좋은 이야기를 해주고 그랬지요.
지금 소위 말하는 개독이라 말하는 강제 선교자들을 많이 겪어보니, 그때처럼 거절못하고 계속 듣게 되더라도 좋은 말을 해주던 그런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