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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다리, 소심함 그리고 용기(feat. 사모님)
게시물ID : menbung_379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싸지름
추천 : 2
조회수 : 3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09/23 16: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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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몇 년 전 일이다. 
평범한 주말이였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하는 일도 잘 풀리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 저녁이였다.
"치킨 먹자."
툭 뱉은 제안에 여자친구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어디꺼?"
난 잠시 고민을 했다.
"음..."
사실 '치킨'이 머리속에 떠오르자마자 함께 생각해 놓은 브랜드가 있었지만, 잠시 고민하는 척하며 여자친구의 반응을 기다려봤다.
하지만 그녀는 치킨이라는 말만 들어도 좋은지, 본인이 '어디꺼?'라고 물은걸 잊은 듯 보였다.
"내가 갈마동 살았을 때 좋아하던 곳이 있는데 거기꺼 먹자."
"거기?"
"응"
사실 여자친구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여서, 내가 최고로 맛있었다는 썰을 풀어놔도 어림없었던 브랜드였다.
하지만 난 '오늘 그 치킨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평소 나답지 않은 행동력을 보였다.
"시킨다."
여자친구는 약간 실망하긴 했지만, 그래도 치킨이 어디인가.
"오예, 오예~ 치킨! 오예~"
그래, 난. 사소함에서 즐거움을 찾던 너의 모습을 좋아했었어.

「잠시 머물러라
  조금만 있어주거라//
  짧은 움직임과
  그보다 큰 바삭함으로
  너는 잠시 내 안에
  머물렀다.
                     - 치킨 -」

후라이드 한마리였다. 어설픈 편법 따위는 없었다. 
오랜만에 먹는 치킨은 닥치고 후라이드다.
여느 커플들과 같이 우리는 닭다리에 서로 양보가 없었다.
쿨하게 하나씩.
가장 먼저 보인 닭다리를 하나 집어 여자친구 손에 쥐어줬다.
꽃다발을 받은 것 마냥 활짝 웃었다.
나도 닭다리.
그런데, 닭다리 하나가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안 보인다.
아무리 찾아도 닭다리는 단 하나였다.
온 몸에 닭살이 돋고 소름이 밀려왔다.
나의 모습을 보던 여자친구는 손에 쥐고 있던 닭다리를 힘없이 떨구고 말았다.
난 침착하게 말했다.
"아... 닭다리가 왜 하나 없지... 아... 미친... 뭐지..."
여자친구는 나를 보더니 어찌할 바 모른다. 잠시 가졌었던 닭다리는 다시 포장박스 안에 들어가 있었다.
내가 분노와 닭살에 떨고 있을 때 여자친구는 말했다.
"그냥... 먹을까?"
난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따뜻한게 나와도 아무말 않고 먹는 사람이였다.
싸우느니 그냥 져버리고 마는 스타일이였다.
소심했던 나보다 더 소심한 사람.
난 그녀를 위해서라도 그냥 질 수 없었다.
그녀의 만류에도 난 휴대폰을 집어들고 전화를 걸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온갖 생각이 다 지나갔지만, 내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사장님의 사과와 닭다리 하나를 다시 보내주는 거였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휴대폰 반대편에서는 주문할 때와 다르게 남자가 아닌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저기요. 여기 아까 치킨 주문한 곳인데요. 닭다리가 하나 없어요."
"네?"
"닭다리가 하나 빠져서 왔다고요."
반대편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뜻밖에 말을 해왔다.
"다음에 하나 더 드릴게요."
"네?"
"다음에 주문하시면 하나 더 드린다고요."
순간 나의 멘탈은 산산조각 났었다.
'오늘은 닭다리를 제일 나중에 먹겠네.'라고 생각했던 나의 꿈은 무너져 버렸다.
크게 낸 용기도 함께 무너져 버리고 있었다.
나의 빌어먹을 소심함은 내 유리멘탈을 근거에 두고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는 여자친구와 차가워진-내 생각에만- 치킨이 눈에 보였다.
간신히 정신을 붙잡았다.
"사장님이세요?"
"아니요. 사장님 와이프입니다. 사장님 바꿔드려요?"
나는 '네'라고 대답하면서 잠시 생각했다. '뭐지 이 사람?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나쁜 뇌인건가?'
휴대폰을 타고 들려 오는 반대편의 상황.
남자가 '왜?'라고 묻자 여자가 '닭다리가 하나 안 왔대.' 이러고 있었다.
아직 희망은 있었다. 
정상적인 사장이길 간절히 빌었다.
"네. 손님. 닭다리 하나가 없다고요?"
"네. 근데 다음에 닭다리를 하나 더 준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아... 네. 그러면 어떻게 해드릴까요?"
글렀다.
빌어먹을 사장.
빌어먹을 사장은 말했다.
"제가 2천원 빼드릴까요?"
난 모든걸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아... 됐고요. 아 짜증나..."
전화를 끊었다.
지금이라면 2천원이라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소심했던 나는 큰 용기를 냈음에도 벽에 부딪히자 그냥 주저않고 말았었다.
참 바보같았던 모습이였다.
결국 그 날은 태어나 처음으로 닭다리가 하나뿐인 치킨을 먹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치킨은 태어나서 두번째로 맛 없었다.
첫번째는 세마리에 만원주고 사먹었던 트럭에서 파는 치킨바베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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