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시험기간이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부분인데, 요즘은 대체 학교에서 뭘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발 각종 신조어에 온갖 ‘신박한’ 비속어에는 빠삭하면서 정작 어휘력이 무지 부족하다.
‘어의가 없다.’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길래, 틀린 말이라고 지적했더니 이 때 쓰는 ‘어의’는 ‘어의(御醫)’의 ‘동음이의어’란다.
나 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더 심한건 저 때 ‘동음이의어’라는 말을 듣고 자기도 그 비슷한 단어를 들어봐서 안다며 옆에있던 다른 녀석이 한 말이다.
“나도 그거 비슷한 거 들어봤는데. 율곡이이.”
…웃자고 한 농담이 아니다. 걔는 나름 진지했다. 퇴계이황이라고 안 한게 차라리 다행이려나 싶었을 정도다. 동음‘이의’를 동음‘이이’로 들었다는 걸까, 저 반응은.
여하튼 한자어가 한 글자라도 섞여있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위에도 쓴 말이지만 ‘인터넷발’이란 말에서도 저 ‘발’이 무슨 사진빨 포샵빨 할 때 그 ‘빨’인 줄 아는 애들이 적지 않다.
어지간 하면 다들 스마트폰 들고 다니면서, 얼짱 각도로 셀카찍어 페북이나 트위터에 올릴 시간은 있어도 모르겠는 말 몇 글자를 검색해 볼 시간은 없어 보인다.
학교 영어 시험지를 보면 왜 그렇게 시험대비기간에 학원에서 교과서 본문을 죽어라고 외워 쓰게 시켰는지 알 수 있다. 지문을 읽고 요약하거나 주제를 찾아쓰는 문제는 거의 없더라. 교과서, 부교재, 프린트물 이외의 지문은 눈곱만큼도 없다. 하다못해 교과서 본문의 상황을 살짝 바꾼 식의 지문도, 하나 정도 있으면 많은 편이려나.
객관식 뿐만 아니라, ‘주어진 지문을 영작하시오’류의 서술형 문제도 별 거 없다. 다 교과서나 프린트물에 나온 영어 문장을 그대로 옮겨쓰면 5점 만점에 최소 부분점수 3점이 보장된다. 그나마 객관식 문제용 지문에 겹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정말로 수업 시간에 배운 문법 요소를 동원해서 처음부터 영작해야 하는 문제는 이른바 논술형이라고 하는, 배점 큰 문제 하나 정도인데 이것도 다 맞는 애들은 정말 공부 잘한다는 몇몇 뿐이고 어지간하면 그냥 부분점수 좀 받고 만다.
이러니 단어장에 나온 예문으로 시험보자고 하고 ‘나는 어제 그녀를 만났다/ I ( ) her yesterday.’를 완성해보라니, ‘I (meet) her yesterday.’라고 당당히 써서 틀리지. 외우는 건 해도, 제대로 적용은 못한다.
암기하는 머리는 커도, 문장을 이해하는 머리는 부족하다. 실질적 문맹률이 높아진다는 게 이런걸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