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 가입 이후 눈팅만 하다가 오늘 너무 화나는 일이 있어서 처음으로 글 남겨봅니다.
이런 글 쓰기 어렵네요. 차라리 소설이 나은 것 같습니다ㅠㅠ 자기 이야기 쓰는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지금도 생각하면 치가 떨리네요.
오늘 코엑스에서 '서울 국제 사진 영상전'이 있었습니다.
매년 가는 사람으로 그냥 올 해도 연례행사차 방문했어요ㅎㅎ; 조카 선물해 줄 미러리스 카메라도 한 번 찾아볼 겸 해서요.
오후 12시 경에 삼성역에 도착해서 나오는데 역 근처가 좀 시끄럽더라구요. 평소에 안 보이는 큰 스피커도 있었고요.
뭔가 하고 슬쩍 봤는데 태극기 집회더라구요. 아직 시작하기 전인데 스피커 테스트를 하는지 전시장까지 가는 길이 너무 시끄러운 통에 대화도 못 할 지경이었습니다.
이런 일에도 나름 내성이 생겨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는데 두 노인께서 주변 보도에 스티커로 된 작은 포스터를 붙이고 계셨어요.
제가 또 궁금한 건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이라서 다시 쫄래쫄래 돌아가서 읽어보니까 참 가관이었습니다.
너무 화가 나 자세히 쓰진 못 하겠네요. '5.18 유공자와 그 가족, 유족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챙기며 귀족 행세를 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떼보려고 했는데 무슨 양면 스티커인지 떨어지지도 않더라구요. 집회 끝나고 제대로 회수했나 의문도 드네요.
거기까지 확인하고 전시 구경하러 갔습니다. 나오면서 집회하고 있으면 좀 찍어가야겠다 생각하고요.
그리곤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역시나 집회는 한창 진행중이었습니다. 한창 진행하다가 분위기가 후반부 같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렌즈 마운트하고 촬영준비에 들어갔죠. 집회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습니다. 200명이 채 안되어 보였어요.
경찰들 보호나 바리케이트가 철저해서 사진은 비교적 편하게 찍었습니다.
저도 뭐 보도사진을 찍으러 온 것도 아니니 그냥 간단하게 몇 컷 남기려 했죠.
그런데 한 노신사께서 제가 사진 찍는걸 보고 오시더니 "왜 사진을 찍느냐"면서 찍지말아라, 하시곤 가셨습니다.
그 분이 가시고 나서 바로 코엑스 보안팀? (시큐리티 복 입고 계시더라구요) 이신 분이 제게 오셔서 "신경쓰지 마시고 찍으셔도 됩니다."하셨어요.
뭐 당연한거죠. 집회 사진이니까요.
여기까지도.. 별로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그 다음 다시 카메라를 든 순간 터졌습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덩치 크신 남성분이 오셔서 저에게 시비조로 말을 거셨습니다.
"야 너 뭔데 사진 찍어?"
저는 일단은 그냥 무시했죠. 그렇게 시비거시는 분이 한 둘도 아닐 뿐더러 경찰도 옆에 다 있었으니까요.
"이 사람들 다 초상권 있어! 이거 초상권 침해야!"
저도 많이 짜증나있던 상대라 대꾸했습니다. (원래 현장에선 이런 분들 상대를 안 하시는게 맞습니다만...)
"집회 사진 찍는 건 법적으로 초상권 침해 아니에요" 하고요.
그런데 그 분이 "아니 찍지 말라고" 라고 하시면서 제 쪽으로 한 발 나오시는겁니다.
저도 안 지고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쳐다봤습니다.
그 분이 끼고 계시던 선글라스를 벗으시면서 "뭘 꼴아봐?"라고 하셨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가니까 바리케이트 치지던 경찰분들도 심각성을 느끼시고 제 쪽으로 모이셨습니다.
주변에서 바로 6분 정도가 뛰어오셨던 것 같아요.
저와 그 분 사이에서 경찰분들이 상황을 조금 진정시키려 하시길래 제가 다시 한 번 그 분에게 말 했습니다.
"집회 사진 촬영은 법적으로 허용된 부분이고 이럴 때는 초상권 침해가 아닙니다."
그러니 그 분도 경찰이 막고 있는 상황이라 감정이 격하셨는지 욕을 섞어 말을 하시는 겁니다.
"야 이 새끼야! 어? 니가 뭔데 노란리본 달고 사진을 찍냐고! 이 XX새끼야!"
제 카메라 가방에 붙은 노란 리본이 신경쓰이셨던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경찰 분들도 좀 더 직접적으로 오셔서 말리시고 충분히 거리가 나왔다고 생각해서 저도 은근히 신경을 긁었습니다.
"지금 이렇게 욕 하신 것 경찰 분들도 다 보셨고 모욕죄로 신고할 수도 있습니다. 입 조심하시죠"
이러니 그 분도 엄청 열이 받으셔서 뭐라뭐라 더 욕을 하셨습니다. 너무 수위가 심해서 여기에는 차마 못 적겠네요;
이쯤 가니까 저도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갑자기 아침에 본 5.18 관련 악담이 생각났습니다.
편견은 좋지 않겠지만 어차피 이런 집회에 참가하시는 분들... 이니까 엇비슷할거라 생각했습니다.
이게 사이다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요
거기서 경찰분들을 믿고 무리수 하나 던졌습니다.
그 분위기에 저도 흥분했는지 그 자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습니다.
그 분이 욕을 계속 하셨지만 그냥 꿋꿋이 다 불렀어요. 경찰분들, 아마 의경인 것 같았는데 고생하게 해서 너무 죄송합니다.
사실 그 분이 알아들었을지 어떨 지 모르겠어요. 요즘 '임을 위한 행진곡' 모른는 분들도 많더라구요.
근데 그냥, 앞서서 나가니 산 자는 따르라! 하고 1절까지 다 불렀습니다.
그리고 저한테 계속 "그냥 가시는게 좋을 것 같아요"하고 앞에서 말려주시던 고마운 경찰분께는 "죄송합니다." 말을 남기고 그 남자분 보면서 씩 웃으면서 7번 출구로 후다닥 갔습니다... 바로 앞 출구로는 뭔가 무서워서 못 들어가겠더라구요. ㅇㅡㅇ;;
같이 간 친구한테도 미안했네요... 괜히 옆에서 기다려주다가 같이 봉변당할 뻔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역까지 가면서 계속 뒤를 힐끗힐끗 보면서 왔습니다. 갑자기 와서 퍽치기 하는건 아닌가 걱정도 좀 됐고요.
3월 10일이었나요 사다리로 폭행했던 그런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무서워졌습니다. ㅠㅠ;;
역시 객기 부리고나서 정신 차리면 이불킥한다고 괜히 경찰분들 곤란할 일 만든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기까지가 제 오늘 체험담이고요..
오늘 집회를 보면서 사실 좀 많이 느꼈습니다. 규모는 작아졌는데 중간중간 젊은 분들이 적잖이 보이더라구요.
초등생으로 보이는 아이 데려오신 어머니 분도 계셨습니다.
규모는 작았고, 또 사상의 차이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배웠지만 우리나라의 미래가 좀 걱정이 됐습니다.
(제 기준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상을 주입당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는 일베에서 파생된 잘못된 근현대사관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해서요.
비록 상황 때문에 몇 장 찍지는 못 했지만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을 몇 장 첨부합니다.
잘 찍지는 못 했어요..ㅠ 이것도 15장 밖에 못 찍어서 적당히 골랐습니다. 그냥 이랬구나.. 하고 인증 정도로만 봐주세요.
제대로 찍기 전에 그냥 어떤 느낌인지 대충 보려고 찍은 것만 있어서 사진은 별로입니다..ㅠㅠ
그래서 아무 보정 안 했습니다. 폰 유저분들을 위해 화질만 다운시켰어요.
오늘 촬영한 모든 현장 사진은 판례 (2009가합41071)의 "공공장소에서의 집회·시위를 촬영할 경우 원칙적으로 초상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결에 따라 적법하게 촬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