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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택배: 자그만치 3개의 병크가 조합된 컴비네이션
게시물ID : menbung_5242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레스코
추천 : 0
조회수 : 55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7/08/28 00:46:11

*맨 밑 세줄

 

3개의 병크란 바로 무지한 나와 야속한 인력 업체 사장, 그리고 조폭같은 중간관리자를 말함미다. 여러분의 속독을 위해 말끝을 최대한 줄이겠음미다.

 

 

때는 군에 들가기 전 택배 알바를 해보기로 마음먹은 어느날, 사실은 불과 얼마 전 일이다.

 

사후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택배 알바를 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더라.

 

노동자 -> 인력업체 사장 -> 공장 관리자 -> 지정된 장소(화물 컨테이너 라인)에 배치

 

쓸데없이 복잡했던 신상 등록절차는 후딱 넘어가고 바야흐로 나는 석식을 제공받고 인력업체 사장니미 계신 테이블에 앉아 얼마 남지 않은 노동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은 시간에 근로계약서나 읽어볼까 했는데 사장님이 어차피 곧 들어가야한다고 말했다. 그 후 사장니미 어디 가고 안 보이는데 갑자기 젊은 노동자 커플이 나를 공장으로 안내하더라. 사다리를 오르내리고 라인을 뛰어넘는 등 공장 라인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며 이 친절한 커플은 나를 공장 복판에 있는 깡마른 관리자에게 데려갔다.

 

일은 낯설었지만 쉬웠다. 무거운 걸 들 일 없이 라인을 지나가는 화물이 막히지 않게 잘 흩어놓아야하는 게 전부였다. 15분 일했을까? 공기도 답답하고 지루하지만 나름 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다음에 생긴다!

 

갑자기 사장님이 허리가 다친 친구와 내 자리를 바꾸자고 부탁하였다. 제발, 결단코, 분명히 나는 이때 거절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허리가 다쳤다는데... 뭐 얼마나 빡센 데로 보내겠냐... 생각하며 두 번째 라인(a,k.a 돌아올 수 없는 강, 특이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으로 나올 두 번째부터 네 번째 라인은 같은 관리자들이 맡는다. 그러니까 나는 사장의 중도 개입 알선에 의해 다른 관리구역으로 옮겨진 셈이다.

 

옮겨진 곳의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웃통을 벗고 험한 일들을 하는데 문신 근육 짱짱한 친구들을 보며 참 건강한 육체구나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이렇게 순수하게...

여러분도 예상하다시피 두 번째 라인 일을 고달팠다. 지게차로 옮겨온 화물을 라인 위에 놓는 일인데 숙련자 외의 사람의 지구력으론 오래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한 박스당 적어도 체감 20키로 훌쩍 넘는 일을 30분 내내. 그래도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 육체미 관리자가 탐탁지 못했는지 나를 세 번째 라인으로 보냈다. 내가 허락도 없이 정수기 물을 마셔서 그런가?

 

아무튼 세 번째 라인에선 라인 위의 크고 무거운 화물을 다른 라인으로 옮겨야했다. 건조하게 말해서 그 자리는 노동자에게 열악한 환경이었다. 머리에 기다란 철제 모서리가 있어 구부정하고 옆으로 휜, 말하자면 두 번 구부린 자세로 그 특정 화물을 찾아 옮겨야 했다. 여기서부터 나는 끊임없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사람이 먼저인 곳은 아니구나' 이제 여기 세 번째 라인에서 나의 무지를 고하고자 한다.

 

나는 분명 그 사장니메게, 그 친철한 커플에게, 그도 아니면 지금 내 옆에서, 일 좀 제대로 하라며 쪼아대는 관리자에게 질세라 톡톡 쏘아붙는 이 까칠한 아주머니에게

'쉬는 시간은 언제입니까'라고 물어봤어야 했다. 사후적으로 알았지만 쉬는 시간은 2시간 이내에 한 번씩 관리자의 허락을 맡고 휴게소 및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이라 하더이다.

 

그러나 이래저래 눈치도 보이고 옆 아주머니의 히스테릭할 반응이 두려워 나는 그저, 저짝 건너편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사오십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아저씨가 자리를 비우기를 기다렸다. 그 때가 내 쉬는 시간이 되리라. 그렇게 약 2시간 반이 지났을까...

 

내가 생각해도 내 일의 능률은 떨어져가고 있었다. 험악한 관리자는 계속해서 반말 찍찍 뱉으며 나를 쪼아대다가 결국 일이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내색 안하거나 거짓말은 하기 싫었다. '네 힘드네요' (화상아 쉬는 시간 얘기부터 했어야지...)

 

나는 네 번째 라인으로 옮겨졌다. 트럭을 통해 공장에 도착한 화물을 처음으로 라인 위에 올려놓는 일이다. 나도 예상했고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이건 악의성으로 배정된 훨씬 빡센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일했다. 하지만 그 라인에서 내 옆에 있는 육체미 친구(곧 관리자가 될 것 같은)에겐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지만 아무리 봐도 녹초가 된 나는 너무 일을 못했다. 10분 쯤 지나니 꼭대기의 화물을 끄집어 낼 수가 없었다. 그 놈의 쉬는 시간...

 

이제 절정의 시간이 왔다. 나는 녹초가 되었고 관리자는 나를 불러 반말과 욕을 하며 나가라고 했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기에 존댓말 따박따박하며 응수했다. 내가 두 번째 라인부터 봐온 그들은 더 이상 건강한 육체미 친구들이 아니라 그저 조폭이었다. 그러니 나는 흔히 말하는 중간 관리자, 이를 테면 중세시대의 마름 같은 존재들이 얼마나 나쁜 새끼들인지 몸소 체험하는 중이시겠다. 그래서 말을 더듬을지언정, 상황을 타개할 카드가 없을지언정 더더욱 주눅들 수 없었다. 일당제여서 중간에 나가면 돈을 못 받는다. 내가 계속 일하겠다는 의사를 보일 때 나는 상대를 바꿔 덩치 큰 조폭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나를 으슥한 밖으로 불러냈다. 녹초가 돼서 미쳤는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밖에서의 대화, 여기서 나는 패배를 당했다. 나는 내 일의 능률이 떨어져 관리자가 노동자를 거부하게 된 문제의 핵심이 쉬는 시간 안내에 있음을 지적했는데 그 젖가슴 내민 덩어리는 쉬는 시간 안내의 책임이 인력 업체 사장이랑 나에게 있다는 말을 천박하게 했다. 근로 계약서를 읽었으면 이 말에 반박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나는 구질구질하게 (절대 그 조폭이 아닌) 일에 매달리다가 밖으로 나왔다. 데미소다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나가는데 잠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빡센 라인에서 나이 어린 새끼들한테 막말 들으며 일하시는 아주머니와 아저씨, 공단 입구에서 측은한 인상으로 나를 보내는 젊은 경비원 아저씨, 그 모두(관리자, 사장 해당 없음)를 향한 이상한 감정이 몰려왔다. 동질감? 안쓰러움? 혹은 그 무엇. 겁나 비싼 할증 장거리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그 때서야 사장니미 참 야속해지더라. 그는 내가 옮겨갈 현장 분위기를 다 알고 있었을 텐데. 야비한 자와 악마같은 것들.

 

그리고 그 이상한 감정은 요상스럽게도 아직은 뻐근한 몸으로 그날을 회상할 때 커다랗게 밀려와 나는 눈물 흘리고 질질 짜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 너는 그저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향해 그저 무심했을 뿐이었잖아? 이제 와서 이 감정이 무슨 지랄이냐? 같잖은 동정이냐? 뒤늦은 연대의식이냐? 이 초라하고 비겁한 놈아, 모지리 같은 놈아. 죄송합니다. 건너편에서 일하셨던 아주머니와 아저씨. 제가 일에 매달려 두 분께 제가 일을 많이 못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대답으로 관리자에게 속으로나마 복수를 하고 싶었나봅니다. 이미 승패는 결정됐는데. 제가 그 질문을 했을 때 두 분이 그 자리에 있지도 않은 누구를 의식하면서 대답을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1. 야속한 인력업체 사장이 나를 꼬드겨 천당 라인에서 지옥 라인으로 보내다.

2. 지옥을 관장하는 조폭들과 말다툼하다.

3. 택배일이나 무슨 알바를 하거든 쉬는 시간부터 알아보자. 그리고 앞으로 대전에서 택배일은 하지 말자(알바 공고글에 허위공고 신고라도 하려고 했는데 공고글 다 내렸더군요. 이제 그 자는 다른 이름을 달고 다시 인부를 모집하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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