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댓글, 글 밑에 써 진 것들 다 읽어봤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제가 '남'이란 단어에 근본을 몰랐습니다.
동의해주신 분들도 그렇고 반대 누르신 분들도 그렇고...
모두 다 알 거에요.
'남'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죠.
저는 기준을 '나의 삶의 관점' 혹은 '철학'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생각하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남'을 결정짓는 건 '희생'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버리고 희생할 수 있는가? 없는가?
모성애, 부성애가 그 예라 볼 수 있겠죠.
할머니한테 냉면 먹고 싶다고 하니 조금 덜어서 냉면 채로 주는 만화도 역시 그렇고요.
내가 어떤 것을 희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게 '남이 아닌 사람'인 게 맞더라고요.
주관적인 해석이다 / 제가 말한 삶의 지침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해석할 수 있는 게 '희생' 이더라고요.
때문에 저는 굉장히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습니다.
가치판단을 하려 했으니까요.
인간의 본성 속에서 나오는 '희생'이라는 것이 우리를 만드는 것인데..
독립군 분들도 그러하죠.
대한의 백성들이 남이 아니니까 희생을 한 것이겠죠.
임진왜란 때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이 남이 아니니까 의병을 한 것이겠죠.
그건 목숨을 건 희생. 꼭 목숨을 걸지 않더라도 내가 가진 것을 타인에게 베푸는 희생.
그렇기 때문에 '남'을 결정 짓는 건
'내가 그 사람을 대신하여 내가 가진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줄 수 있는가?'
이게 남을 결정짓는 잣대더라고요.
그러니 당연히 '남'이라는 건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것이죠.
왜냐하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대상은 매번 바뀌고, 또 한정적이니까요.
시부모님의 친척을 보러 가는 것 역시 나를 없애고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고.
애인의 친구들을 보러 가는 자리 역시 어떻게보면 부끄럽고, 또 걱정스런 자리지만 희생하는거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남'은 기준의 잣대로 해석가능한 것이 아니라 '희생'이라는 나의 의지가 만드는 것이더군요.
때문에 시부모님의 형제가 '남'이 맞다 볼 수 있겠어요.
왜냐하면 시부모님의 형제를 위해 내가 희생을 할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이죠.
단, 만나러 간다면 '배우자를 위한 나의 희생' 이 되겠죠.
물론 11시간 가느니 차라리 해외여행을 가시는 걸 더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계속 언급하지만요.
이야기하다가 많이 배워갑니다.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또 반대 먹으려나. 암튼 저는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