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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줍는 할머니.
게시물ID : menbung_39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취취
추천 : 16
조회수 : 3174회
댓글수 : 70개
등록시간 : 2016/10/21 18: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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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저희 가게 근처에 폐지 줍는 할머니 한분이 계세요.
저랑은 꽤 가깝게 지내요.
만나면 인사하고 일상얘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오셔서 물도 담아가시고 가끔 저녁 식사나 음료수도 대접해드리고요.
저희 어머니가 가게 오실때면 항상 할머니께 현금을 쥐어드리곤 해요.

할머니 휴대폰 번호도 알고 있어요.
가끔 전화해서 요기 하시라고 음식 포장해서 드리곤 하거든요.
할머니는 엄청 밝고 말도 잘하시고 착하세요.
몸이 안 좋으셔서 자주 병원에 가시는데 그런 얘기도 저한테 다 하시거든요.
할머니 아드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항상 몸도 안좋으신데 더울때나 추울때나 항상 밤부터 새벽까지 리어카 끌고  폐지나 고물 주우러 다니시니까 걱정돼서 만류하고 있어요.
벌써 몇번이나 자신의 리어카와 고물 모아놓은걸 도둑 맞았다는 하소연도 들었어요.

근데 오늘 아랫 블럭에서 쪽갈비 장사하시는 사장님이 오픈 준비하는데 저희 가게에 찾아오셨어요.
항상 가게 앞에 내놓는 불 피우는 철제 상자와 화구가 통째로 없어졌다는 거에요.
불 피울때 화력이 세고 재가 날리는걸 방지하기 위해 그 박스 안에서 피우는건데 그게 출근해보니 없어졌다네요. 

옆 카센타 CCTV를 보니 새벽 3시쯤 한 할머니가 그걸 힘들게 끌고 갔다는데 그 할머니가 저랑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 같다고요.

저는 그 할머니는 함부로 남의것 손대시는 분은 아니라고 다른 할머니 일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전화번호를 아니 연락해서 물어보겠다고 했죠.
그 사장님도 신고나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당장 오늘 장사를 해야되는데 큰일 이라면서 그냥 빨리 돌려받기만을 바라신다고 했어요.
제가 할머니께 계속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셨고 일단 사장님은 돌아갈테니 연락되면 알려달라고 하셨죠.

한 열댓번 전화를 했을때 할머니가 전화를 받으셨고 아드님과 외식하고 영화 보느라고 전화 못 받았다고 하시는데 아드님과 데이트 때문인지 목소리가 많이 신나셨더라고요.

일단 할머니께 조심스럽게 자초지총을 말씀드리고 혹시 실수로 잘못 가져가신거 아니냐고 물었는데.
본인은 어제 아파서 폐지,고물 수집은 커녕 집에만 누워 계셨다며 아니라고 했어요.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알겠다고, 죄송하다고 얘기하고, 혹시나 걱정돼서 전화 드린거라고 하고 끊었어요.
그리고 쪽갈비 사장님께 전화해서 그것 보라고, 그 할머니 그러실분 아니라고 얘기했어요.

잠시 후 사장님이 그 CCTV를 폰으로 찍어서 갖고 오셔서 보여주는데 이건 뭐 생각할 필요도 없이 빼박 그 할머니 셨어요.
그 할머니 인상착의가 상당히 특이하시거든요.
그냥 보자마자 그 할머니 였어요.

하..순간 멘붕이..

모르고 가져 가셨거나 순간 욕심으로 그러실수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제가 전화했을때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 하셨다는게 큰 충격이더라고요.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20통 넘게 받지를 않으셔요.
아마도 일부러 안 받으시는것 같아요.
왠지 모르게 중간에서 난감한 입장이 됐어요. 

결국 좀 전에 사장님은 근처 파출소에 가셔서 얘기하고 영상 보여줬더니 경찰분들도 보자마자 그 할머니 맞다고 하셨다네요.
그나마 사장님이 사건 접수하면 혹시라도 할머니한테 불이익 갈까봐 일단은 접수는 하지마시고 경찰서에서 할머니한테 연락 좀 취해달라고 부탁만 하셨대요.
제 전화는 피하니까 혹시 경찰 전화는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요.

이 할머니 진짜 매일 이 동네 돌아다니시고 사시는 집도 이 동네 빌라로 알고 있는데 어쩌시려고 저러는지..ㅜㅜ

저도 이제는 할머니와 이전처럼 가깝게 못 지낼것 같아요.
항상 그 자리에 있던 화구박스와 화구를 다 가져간 것도 그렇고 저한테 했던 새빨간 거짓말.
진짜 충격과 함께 배신감 마저 드네요.

형편 안좋아서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노모지만 어쨌든 결국 남의 물건 도둑질하고 거짓말까지 한거잖아요.

이제 얼굴봐도 인사도 못할것 같아요.
진짜 무섭네요.
사람이라는 존재. 
출처 배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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