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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부터는 고향에 안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긴글)
게시물ID : menbung_4246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히우지메
추천 : 14
조회수 : 2496회
댓글수 : 201개
등록시간 : 2017/01/24 17:40:32
 어릴때부터 아빠는 전교6(조부모님이 학대해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하심) 엄마는 전교1등한 수재였고, 가난해서 공부를 제대로 못한게 한이다 늘 말씀하셨죠.
부모님은 제가 어릴때부터 뭐든 그렇게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아빠는 제가 6살때부터 저를 주먹으로 때리셨는데 그래서 저는 늘 주눅들어있었고, 투정을 부린다거나 하는걸 못마땅해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애교가 없다고 혼내셨죠.
 
중학교때 엄마의 잘못된 주식투자로 공무원집이던 우리집이 순식간에 수십억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엄마는 죽네사네 하면서 한바탕 난리를 치시다가 제가 고2쯤에 피씨방을 차리셨죠. 당시 피시방이 한참 붐이라 장사도 잘됐고 빚도 잘 갚으셨지만 제가 대학갈때쯤에 등록금 낼 돈이 없다며 집근처 국립대에 가기를 강력하게 주장하셔서 저는 포기하는 심정으로 집근처 국립대로 갔습니다. 적성 그딴거 상관없이 그나마 공부는 좀 하는편이었는데 점수맞춰가자니 그 학교에서 젤 점수높은 컴공과로 가게됐죠.
 
그때부터였죠..저의 지옥이 시작된게..
 
엄마는 알바쓰는 돈도 아깝다며 저를 피시방에서 일을 시키셨는데, 수능치자마자 학교는 잘 안가도 되니까 피씨방 알바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했어요. 첨엔 월 30인가 50을 주셨는데 개강하고 학교랑 병행하게 되면서 돈도 안주시더군요. (월급 받은건 두번정도밖에 안됨) 근데 웃긴게, 그 시간만큼 알바를 써도 그 정도 돈을 주는데 저한테 주는건 너무 아까워 하시더라구요. 그렇다고 제가 일을 못한것도 아니고 시간을 적게일한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집이 바로 위에있으니 더 늦게까지도 일하고 유동적으로 더 많이 했죠. 그냥 자기딸한테 용돈을 너무 과하게 준다는 기분?이셨던거 같아요.
개강하고 아침 9시에 학교가서 11 12시쯤 집에오면 (학교가 바로 집 옆에 있었음) 엄마가 점심드신다고 올라가시고 제가 다음 수업시작할 때까지 가게보고, 그러고 다시 1,2시에 학교가서 수업듣고 5 6시에 다시 집에 오면 그때부터 밤 9 10시까지 가게를 봤습니다. 토요일 일요일은 학교를 안가니 거의 하루종일 가게를 봐야했고요.
 
스무살 그 꽃다운 나이에 하루도 안빠지고 담배냄새 찌든 피시방에 쳐박혀서 게임폐인들이나 상대하면서 보내니 안우울하고 배기겠어요. 더군다나 돈도 없어서 예쁜 옷한벌 못사입고 고등학교때 만원 오천원주고 사입은 티쪼가리 구멍난 스타킹…그렇게 매일 우울한 얼굴을 하고있으니 엄마가 날 보면 기분나쁘다고 니는 뭐가 그리 불만이 많냐며 소리지르고 구박하기 일쑤였죠. 다른집 애들은 학교다니면서 알바해서 지가 용돈 벌어 쓰고 장학금도 받아온다는데 너는 뭐 하는게 있느냐는 소리도 하루가 멀다하게 들었고요. (하루종일 피시방에서 일하는데 도대체 알바는 언제 하라는 건지??) 피시방에서만 일하면 다행이게요. 6시에 집에와서 부모님 저녁드실때까지 가게보다가 엄마 저녁먹고 내려와서 저한테 하는 말이 ‘올라가서 밥 다먹고 설거지하고 싹 다 치워놓고 내려와라’ 였습니다. 설거지하고 씽크대 물기 안닦았다고 밤새 욕먹은적도 있네요. 20대 내내 친구한번 제대로 만난적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친구가 만나자고 해도 '친구를 왜 만나냐? 얘기할거면 가게로 불러서 만나서 얘기하면 되지' 하면서 안보내주셨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학교 1년만 다니고 휴학하고 서울로 도망갔습니다. 제가 서울간다고 하니 ‘너 없으면 누가 피시방 보라고?’였습니다. ‘엄마는 나 일시켜먹을라고 낳았냐?’라고 한마디 했다가 두고두고 원망 들었습니다.
 
휴학하고 2년간 서울에서 학원다니고 알바하면서 근근히 살면서도 집에 있는거보다 훨씬 좋더군요. 18만원짜리 창문없는 고시원방에서 밥에 계란하나 풀어서 먹는데도 집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간에도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네요. 엄마 형제자매들은 거지근성이 심한데 첨에 제가 서울간다고 하니 엄마여동생에게 저를 위탁했습니다. 20살짜리 여자애가 서울에서 방구하고 그런것도 힘들잖아요. 그 이모가 학원을 하고 계셔서 집에는 사촌들 외에 학원생 두어명이 더 같이 살았는데 약 4평정도 되는 방에 여자애들 3명이 같이 썼네요. 집에 가정부가 있었는데(사람이 많으니) 주말에는 쉬셔서 주말엔 항상 설거지와 빨래거리가 그득 쌓여있었습니다. 근데 언제부터인지 이모가 주말에 저에게 그 빨래와 설거지를 시키기 시작했고, 제가 안하면 노발대발 성을내고 구박을 했죠. 그래도 공짜로 밥먹고 자는데 그 정도는 해야겠다 싶어 그냥 군말없이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엄마가 이모에게 하숙비 명목으로 월 60만원씩 보내고 있더군요. 아시겠지만 15년전에 하숙비 60만원이면 서울 어디서든 못살았겠습니까? ㅋㅋ 어이가 없네요. 엄마는 그 와중에도 남의집에 가면 설거지 빨래정도는 해야지 니가 게으르고 못되쳐먹어서 안하는거라고 저한테 뭐라했죠. 그 집 자식들도 다른 학원생들도 안하는걸 왜 저만 해야하나요? 그것도 하숙비랍시고 돈도 제일 많이 내는데?? 그 길로 짐싸들고 고시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이모한테는 월 60씩 따박따박 보내주시던 엄마는 제가 고시원들어갔는데 생활비같은건 안보내주시더군요. 나중에 저 알바 그만두고 몇 달 쉰적 있는데 그때서야 한 20정도 몇번 보내주시긴 하셨지만..
그 와중에 이모한테 몇천만원 빌려주시고(이모가 저 데리고 있는걸 빌미삼아서 돈을 몇번 빌리셨음), 외사촌 오빠한테 집 보증금 천만원을 빌려주셨어요(딸은 창문없는 고시원에 18만원주고 사는데)
 
엄마는 본인 친정식구들한테는 그렇게 너그러우셨습니다. 엄마 형제들이 거의 다 쓰레기인데 엄마가 첫째딸이거든요. 외할머니 돌아가시기 전 몇 년간을 저희집에서 지내시고 (당시 제가 고3, 외할머니 치매셔서 밤마다 울부짓으셨음) 돌아가시기전 약 1년을 병원신세 지셨는데 1등실에 약값 기저귀값 다 저희집에서 부담했죠. 엄마의 오빠이자 집안 장남이 진짜 쓰레기여서 외할머니 재산 노리고 외할머니 입원실 점거하고 난리치고 그랬고요.
딸인 저는 돈 없다며 국립대 보내놓고 여동생한테는 수천만원 빌려주셨죠. 그 돈으로 저와 동갑내기인 이종사촌 두명은 재수 삼수해서 각각 서울에 있는 사립대 졸업했고요.
 
서울에서 혼자사는 외사촌 오빠에게 철마다 김장김치 보내고 밑반찬 보내고 하셨더군요. (그 오빠 부모님이 안계시긴 해도 저보다 8살이나 많구요. 직장생활하면서 자립해서 사는데말이죠. 반면 저한테는 반찬 딱 한번 보내주셨네요. 그것도 2
 
복학 후에도 휴학전과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생활했고 그 사이 저보다 4살많은 친오빠가 졸업해서 고향으로 백수가 되어 돌아옵니다. 학교다니는 동안 알바 한번 안하고 제대하고 복학할 때까지 쉬는 동안에도 집에서 게임만 하다가 놀고, 학교생활 개판으로 해서 성적은 바닥이고공무원시험 볼거랍시고 책 몇권 사서는 쳐박아놓고 밤새 겜만하고 놀더군요. 엄마가 그런 오빠에게 차라리 피시방에서 일하라며 제안을 하셨고 월급까지 줘가며 정직원처럼 쓰셨습니다. 저는 자유를 얻게된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서 군말않았고요. 근데 틈만나면 오빠대신 피시방을 보라는둥 오빠 밥을 차려줘라, 청소를 해줘라 시키는겁니다. 밤새 게임하고 오후 34시에 일어나는 오빠놈 밥을 제가 왜 해줘야하나요? 오빠가 저녁에 친구만나러 놀러간다고 저한테 피시방 대신보라고 시키신적도 많고요. 몇 번을 해주다가 안한다 했습니다. 오빠는 돈주고 쓰면서 제가 대신 봐준다고 저한테 돈주는 것도 아니고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고..그랬더니 또 지밖에 모르는 년이라고 욕을 엄청 먹었네요. 저는 이 와중에도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해서 2급을 땄습니다. 매일 도서관에 9시까지 공부하다 집에 갔는데 엄마는 제가 밖에 놀러다닌다 생각하고 저를 더 구박하셨죠. 집에 일찍와서 집안일 안하고 오빠랑 엄마 힘든데 가게 안봐준다고요. 당시에 학식이 1800원이었는데 사먹을 돈이 없어서 도시락을 싸다녔습니다. 그마저도 저녁은 도시락으로 안되니 굶기 일쑤였고요. 왜 그렇게 살았나 지금와서 후회되네요.
 
대학졸업하고는 무작정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갔습니다. 그래도 부모님이 외국유학도 보내줬네 하면서 부러워하시는 분들 계시겠지만, ..저희 엄마가 보내준거 맞습니다. 초기 600만원 (비행기, 학원비 등 전액포함) 엄마한테 받은거 맞고요. 근데 제가 3년간 피씨방에서 제대로 시급받고 일했으면 천만원도 넘게 벌었을겁니다. 그리고 자식 학비에 600만원 들인거, 이모나 사촌오빠한테 수천만원씩 준거에 비하면 크다고 생각안합니다. 저 영국에서 쉬지않고 알바하면서 생활비 벌어썼고, 한달 방세만 60~70만원 내면서 생활비 90만원으로 살았습니다. 3년반동안
운좋게 영국회사에 취직해서 돈도 좀 모아서 그 돈으로 대학원까지 갔습니다. 물론 대학원등록금 저 혼자 감당못해서 엄마가 대부분 내주셨지만 십원짜리한장 허투루 안썼습니다. 샌드위치 하나 사먹을돈이 없어서 쌀죽에 양배추 썰어넣어서 돼지 꿀꿀이죽 같은걸 매끼 먹었습니다. 학교에서 먹는거 애들이 보면 다이어트중이라고 둘러대면서요. 유학생활 마지막 9개월정도 알바하면서 공부할 수가 없어서 엄마가 생활비를 보내주셨는데 100만원 보내주시면 그걸로 딱 39일 살았습니다. 매달 정해진 날에 보내주시는게 아니라 제가 필요하다고 하면 보내주셨기 때문에 38일째되는 날 전화를 하면 엄마가 보내주셨죠. 그때 들었던 말 중 가장 섭섭했던건 저번달에도 보내달라고 하고 이번 달에도 또 보내달라고 하냐?’ 였네요. 한달에 한번 받는 생활비를 말이죠.
 
제가 진짜 열받는건 제가 유학하던 당시에 저희 외사촌오빠 (엄마 오빠의 둘째아들)이 지방에서 의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오빠 학비며 생활비를 저희집에서 다 대줬습니다. 얼마전에 엄마 통장 뒤져서 알아냈는데 한달에 100만원씩 꼬박꼬박 보내줬더군요. 친딸은 영국에서 100만원으로 39일 사는데 조카는 지방에서 생활비 100만원 따박따박 잘만 보내줬더군요. 일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방에서 생활비가 100만원 들면 외국사는 딸이 한달에 100만원으로 얼마나 배곯으면서 살지 계산이 안나올까요?
 
학업마치고 돌아온 후 구직하는 동안에도 할말이 많습니다. 하루 8시간 자는 시간 외에는 이력서 쓰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저에게 설거지 안한다 청소안한다 온갖 구박 다 하셨고, 맨날 컴퓨터만 보고 논다라고 오해하셨죠. 구직이 좀처럼 되지 않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는데 기댈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어렵사리 취직이 되었고 첫번째 명절날 엄마가 전화로 장난인듯 한 말이 정말 가관이었네요. ‘다른집 딸은 명절이라고 용돈 50만원 줬다는데 너는 얼마 줄거냐?’
 
참내중학교 이후로 제대로 용돈한번 받아본적 없고 서울에서 혼자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 딸한테 용돈 얼마 줄거냐니지금 생각해봐도 어이가 없네요.
그 후 지난 몇 년간 싸움도 하고 냉전기간도 갖고 화해도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제가 뭔가 빚진게 있는것처럼 뭐가 필요하다’ ‘뭐 해라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셨구요. 어느날 보니 매달 부모님 생활용품비로만 한 20만원씩 쓰고 있더군요. 문제는 자질구레하게 사드린거라 20~30만원씩 돈을 써도 티가 안난다는겁니다. 그거 얼마한다고..니가 한게 뭐있냐?는 식의 말은 항상 들었습니다.
부모님인데 그것도 못사주냐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어느날은 이것저것 사드리다 보니 120만원이나 되더군요. 한달 월급 200만원 조금 넘게 받는데 말이죠.
 
그 후로 엄마가 뭐 사달라하면 그만큼 돈으로 보내라 했습니다. 무척 서운해하시더군요. 항상 뭔가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시고 제가 인터넷 여기저기 찾아보고 싸게 구매해 드리고요. (워낙 없이 살아서 최저가로 사는 방법에 능통해 있습니다.) 부모님 화장품이며 옷, 신발, 음식 등 소소하지만 그때그때 필요하겠다 싶으면 먼저 알아서 사다 드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근데 이번에 또 오빠는 김장하는데 와서 얼굴이라도 비쳤는데 너는 뭐하냐? 왜 너는 너만 알고 집안일에 무관심하냐?’하면서 뭐라 하시더라구요.
 
진짜 해도해도 끝이 없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오빠는 하면 대견한거고 나는 하면 당연한거냐며 했더니 저한테 피해의식 있다네요. 이 정도 당하면 피해의식 있는게 당연한거 아닌가 싶네요.
엄마 카톡도 다 씹고 전화도 안받고 있어요. 전화가 계속와서 받았더니 집에 커피가 다 떨어졌는데 사줘라고 합디다. 엄마가 15년전에 저한테 했던말 그대로 돌려줬습니다. ‘엄마는 뭐 필요한거 있을때만 나한테 얘기하냐?’ 더 할말이 많았지만 참았죠.
 
저한테 이렇게 해놓고 주변에는 저한테 엄청 아낌없이 지원한척 얘기하고 다니는 것도 화나는 것중 하나입니다. 친척들이나 주변 지인들 만나면 너는 너희부모 등골뽑아서 외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효도해야 한다라는 식의 말을 꼭 듣네요. 제가 진짜 등골 뽑았으면 말도 안합니다. 3년반동안 영국있으면서 저희 엄마한테 받은 돈 5400만원입니다. 저희 오빠 지방 사립대 다니면서 1년 학비만 천만원씩 나왔고 생활비 백만원씩 썼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촌오빠 의대 4년간 학비천만원에 생활비 100만원씩 줬습니다. 근데 왜 등골은 나만 뽑았습니까? 오빠들 그렇게 받아쳐먹으면서도 저희집 일 한번도 한적 없는데 저는 3년간 가게 일이며 집안일까지 잠안자고 일했어요.
 
항상 그런식입니다. 제가 돈 모아서 배낭여행 가는데 (제 돈 200만원에 엄마가 100만원 보태줌) 짐싸서 역까지 엄마랑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가는길에 기사님이랑 얘기하는 중 기사님이 비용이 얼마나 들었나 물어보시는데 엄마가 500만원 줬어요. 넉넉하게 쓰고 놀다오라고라고 대답헀습니다. 순식간에 저는 부모돈 500만원으로 호화여행가는 된장녀됐습니다.
 
학교다니며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했고 (지금 원어민 수준으로 사용함) 집이 싫어서 현금 50만원들고 일본으로 도망가서 거지생활하면서 일본어 익혔는데 주변에는 본인이 일본 유학보내줘서 일본어 잘한다라고 말하고 다닙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 뭐라하면 부모가 자식이 자랑하는건데 그런걸로 치사하게 뭐라하냐며 저한테 치졸하답니다.
 
진짜 일일이 쓰자면 너무 많은데 진절머리 납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 독한맘 먹고 설에 안가기로 했습니다. 이런 부모 평생 안보고 사는게 더 나은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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