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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의 이유
게시물ID : menbung_5470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자진모리
추천 : 10
조회수 : 1468회
댓글수 : 20개
등록시간 : 2017/10/19 08:12:07
망자여.

당신과 나는 딱히 돈독했다 말하기는 꽤 어색하다. 하지만 몇 년간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며 점점 집안의 일원으로 자리잡아가는 모습. 지극히 평범하고 활달한 당신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흉을 보거나 부정적인 생각, 말을 한 적이 없다.
크나큰 긍정과 호의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당신이 좋은사람이리라는게 나와 어쩌면 모두의 판단이었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자살이란 단어는 사실 금기와 같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한 번의 자살, 한 번의 자살시도. 보잘 것 없는 집안이었지만 우애, 화목, 혈연간의 끈끈한 정 밖에 없던 집안을 갈수록 황폐하고 쓰러져가듯 보이게하는. 사람의 빈자리는 사실 무엇으로 채우기가 힘이든다. 더군다나 그게 가족이라면. 그런 상처와 슬픔이 있었다. 당신역시도 이 사건들을 같이 겪었으니 우리와 다를바 없었으리라.

여느날처럼 퇴근해서 잠시 사람 만나러 다녀온다며 집을 나서곤. 돌아오지 못하는 길을 떠났다고 한다. 유서도. 징조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당신은 생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한다.

일순간 말을 더듬으며 내가 어떤말을 해야할 지 생각이 나질 않았고, 어떤 말을 하자니 그 말을 어떻게 입밖으로 내는지 까먹은마냥 놀라고 당황했다. 충격은 그정도 크기로 다가왔다. 
그 충격을 받아들인 상황은 저마다 달랐지만 우리 모두는 한없이 술로 그 상황을 달래려 했다. 서로가 아닌 자기 자신을 다독였다.

처음엔 그랬다.
한참 좋을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한 당신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당신의 영정을 보고 돌아서니 가슴이 찢어졌다. 이제 말을 조금이나마 시작한, 세상에 남겨둔 당신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죽음을 모르고, 그 죽음의 방식도 모른채 그냥 신이나서 뛰고 소리지르며 피곤하니 칭얼거리는 당신의 딸들. 
딸자식이 자살로 과부가 된걸 받아들여야 하는 냉가슴.
차라리 당신이 안타까운 사고로 생을 마감했었더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한없이 안타깝고 그립고 큰 원망은 남지 않았을텐데. 
저 아이들이 머지않아 아빠를 찾을텐데. 아빠의 죽음을 알게될텐데. 아빠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게 될텐데... 그 순간을 피할 수 없을텐데. 
이미 큰 원망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신은 앞으로 얼마나 더 남아있을지 모를.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큰 원망을 우리에게 남겼다.

당신이 재가되어 이승에서 마지막 발걸음을 마치고. 당신이 길을 떠난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빚'. 
그리고 남은 가족끼리 뒷정리를 하며 더 충격적인 이야길 듣게되었다. '도박'. 

이야기는 그랬다. 불법토토 도박에 꽤 빠져있었고 빚이 확인된게 2천만원. 우리 모두의 생각은 다 같았다. "2천만원 가지고 자살한게 아니다."

밤을 지새운 피로감, 비바람에 찾아온 감기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무엇에 홀린듯 당신의 지난 흔적을 찾기위해 컴퓨터와 휴대폰을 한참을 뒤적였다. 그리고 나는 찾았다.
이미 한달 전. 도박으로 인해 생긴 빚을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던걸. 거기엔 아무도 몰랐던 채무의 대략적 규모도, 자살도 생각하고 있다고, 도박을 끊고 열심히 살겠다고. 어쩌면 그것이 당신의 유서였을지 모른다.

어쩌면 참 열심히 살았다. 대리운전도 하며 손님과 다툰 흔적도 있었다. 당신의 직장에서 업무하던 자료, 업무의 흔적. 
거기까지만 내가 찾고 보았다면. 그냥 도박이 사람을 잡아먹은거라 생각하고 지나갔을것이다.

당신이 같은지붕아래 살던 가족에게도 숨기고 말하지않았던 수많은 부분들. 어쩌면 당신은 그 흔적이라도 최대한 숨기려 했을지 모를 일이지만.

어느날엔 누군가에 쫒기듯 돈을 빌리려 발버둥친 흔적도 있었다. 당신의 지난 한달간 휴대폰 인터넷 접속 기록 99.9%가 도박사이트였다. 아마 이제 생을 마감해야겠다 생각하기 전 까지도.
어쩌면 한방으로 지금까지 벌려둔 일에서 해방되고 싶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고, 포기였는지 쫒김이었을지 모르지만 마지막 배팅결과를 보고. 그렇게 기록은 끝나있었다.



그리고...이제부터가 나 혼자만이 알고있는. 
아직까지 나 혼자서 장례를 끝마치지 못한. 이유가 더 있었더라.

영업직이니. 유흥. 충분히 어느정도 그럴 수 있다고 이해는 한다. 
친해보이는 친구 몇과 정기적, 비정기적으로 유흥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수많은 유흥업소의 문자와 그와 관련된 종사자, 아가씨와 문자를 주고받은 흔적도. 성매매와 이야기도. 전날 함께 신나게 달리고 늦으막한 오후에 소회를 친구들과 나눈 흔적도. 조건만남, 미팅 채팅의 흔적도. 어느가게엔 고정 파트너 아가씨가 있어보이고.

그리고 당신이 죽기전.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생활비도 턱없이 모자라게 준걸 생각하면. 뻔한 이야기다.
그 친구중 한명에게 빚독촉을 받은 사실도.
그 무리에서 유흥비로 계속 금전이 서로 오간 흔적도.
무슨 의미인지. 무슨 일이었는지 알 수 없는.
"큰일났다. 걸렸다." 라는 죽기 당장 며칠전 당신의 메세지도.


남은 우리중 대부분은 당신의 도박빚으로. 그 죽음이 이해가 끝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이러한 이야기를 혼자 삼키고있다. 덩그라니 세상에 내버려진 당신의 아이들 엄마에게는 물론 언제가 되어도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당신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 감추려 했던 비밀, 진실, 치부를 찾아낸 것 같아 죽어버린 당신과 데면데면한 기분이 든다. 사실 욕지기가 치민다. 이제는 안타까움도 없다. 
당신의 마지막 모습을 나는 주색잡기로. 간단명료하게 결론지었다. 그냥 내가 죽는날까지는.
망자여. 당신은 나에게 잡놈이 되었다.
책임감 없이. 자살로 도망간.


당신의 자살로 이미 수사기관도 결론이 났지만. 아직 몇가지 더 확인할 부분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과정에 이러한 부분이 확인될지, 내가 못다확인한 무언가 까지 확인될지는.. 모를일이다.

당신의 소식을 듣고난 이후부터 아직까지. 두통이 가시질 않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감과 멍함. 어쩌면 유난스럽게 당신의 자살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마냥 겉으로 보인다.

이제 나는. 살아야겠다. 살아가야겠다.
장례는 끝났는데. 아직까지 나는 혼자서 그 장례를 마치지 못하고있다.
남은 우리는 무언가 빈자리를 메우기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할테지.

이것으로.
망자, 당신과의 진짜 작별을 하려한다.
그곳에서 잘 지내라.. 그런 마지막 인사는 못하겠고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거기서 뭔가 할 수 있다면.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애쓰며 속죄하길 바란다.

망자. 당신이 있어서 더 좋았을지 더 나았을지 더 행복했을지 모를. 당신의 역할을 내 몫만큼 나눠지기 위해.

나는 산다.
슬픔, 분노, 원망, 안타까움. 수많은 감정을 버무리고 버무려 내 평생을 가져간다. 남겨진 우리 평생에. 늙지도 변하지도 않는 영정을 보며. 
우리는 당신의 기억을 감정을. 그렇게 가져간다. 그렇게 우리는 산다.


당신은 죽었지만.
나는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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