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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학계 잠식에 대해
게시물ID : menbung_5683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Neunzehn
추천 : 15
조회수 : 1171회
댓글수 : 77개
등록시간 : 2017/12/10 00:51:48

'주작이 없으면 남혐을 못한다'.

요 근래 메갈을 위시한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저지르는 고의적인 통계 조작 및 왜곡을 조소하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여성인권 115위부터 임금격차 30%까지, 그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본인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원하는 '여혐민국'을 연출하기 위해 날조를 저질렀고, 그때마다 보다 신뢰도 높은 통계 및 연구자료에 의해 반박당해왔습니다. 정치인, 언론인 할 것 없이 페미들을 두둔하는 각박한 현실이지만 다행히도 인간이 지금까지 쌓아올린 학문과 이성이 최후의 보루가 되어주고 있다...

...라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는 안이한 믿음입니다. 21세기에는 인간의 지성과 그것을 자아내는 학계, 학자들마저도 페미니즘과 언더도그마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올해 출판된 The politics of social psychology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1.PNG

밑줄친 부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이 심리적으로 동일한 존재로, 완전히 동일한 능력, 경향성, 관심사, 그리고 성향을 가지는 존재로 보는 것이 필수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진화에 따른 성별간의 차이는 여성의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 인간의 정신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인간을 탐구함에 있어 핵심적인 분야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학문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진화'와 관련된 이론들이 좀처럼 주류로 부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물은 수억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입니다. 적어도 과학의 세계에서 이 명제를 부정하는 이는 없으며, 때문에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관찰하는 렌즈가 과학적 방법이라면 '왜' 그러한 존재가 되었는지를 관찰하는 렌즈는 바로 진화론입니다. 이를테면 인간의 맹장이 매우 제한적인 기능을 지니는 이유는 인간의 선조들이 셀룰로오스 등의 식물성 섬유를 주식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죠. 요즘은 중학생 수준의 상식만 있어도 알 수 있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허나 의학이나 해부학과는 달리 심리학에서만큼은 이 진화론에 입각한 분석이 그리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유는 위에 나온 바와 같습니다. '성별차가 진화의 산물이라 받아들인다면 여성인권에 해가 될 수 있다'. 심리학자들이 지니고 있는 이 신념 아닌 신념이 학문을 왜곡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실험사회심리학회 멤버들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인간은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명제에는 90%에 가까운 인원이 찬성했지만, '진화론을 인간의 정신에 적용시킬 수 있다'는 명제에는 50%만이 찬성했습니다. 상당수의 학자들이 진화론을 긍정하면서도 정신만큼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신념을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진화심리학을 공격하는 것은 동료 심리학자들만이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들의 '학문'인 여성학(서양에서는 젠더학)은 수십년째 진화심리학이 반페미니즘적이라며 공세를 펼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명색이 학자임을 자칭하는 자들이 한 학문 분야의 이론이나 실험설계의 완성도가 아닌, '페미니즘'이라는 '이념'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 존재의의와 연구 성과들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TAXvFlP.jpg

그야말로 이 짤의 촌극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심리학만의 문제인가? 이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다음은 Quillette에 기고된 과학 사설의 일부입니다.

12.PNG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 혹은 서로 다른 인종이나 문화적 집단 사이에 통계적인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과학자들이 이 연구를 지속해 근거가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가설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벌일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가설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근거와 일치할 경우에도 그것을 회피하는 경우가 있다'

엄연히 자연과학인 생물학의 영역에서도 성별간의 차이를 논하는 것은 일종의 학문적 금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부문에서 주로 포화를 맞는 쪽은 신경과학. 남성과 여성의 두뇌와 신경계의 차이에 관한 연구에는 항상 학계 안팎의 거센 반발이 동반됩니다.


이쯤 되면 아마 많은 분들의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떠오를 것입니다. '학자들이 전부 페미인것도 아닌데 어째서 학계가 그들의 입김에 휘둘리는가?' 여기에 대한 답은 간단한데, 그렇지 아니할 경우 자신의 위치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초의 일입니다. 구글에서 일하던 공학자 James Damore는 '남성과 여성은 능력과 관심사가 완전히 동일하며 구글에서 일하는 남녀 직원의 숫자 차이는 오로지 여성 차별에 따른 결과이다'라는 구글 내 다양성 팀의 견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남성과 여성이 선호하는 작업 대상(사람 vs 사물)의 차이가 직군에 따른 성별 분포의 차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내용의 분석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었으나 이로 인해 Damore는 성차별론자로 낙인찍혀 해고당했고, 그의 의견에 동조했던 사원들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한편 저번달에는 캐나다의 대학원생 Lindsay Shepherd가 트랜스젠더를 지칭하는 별도의 대명사의 필요성에 대한 TV 토론을 학부 수업시간에 틀어주었다가 트랜스젠더 혐오로 고발당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당했습니다. 토론을 보여준 것 자체가 트랜스젠더를 위한 새로운 대명사를 신설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그것은 곧 성소수자 혐오가 된다는 기적의 논리의 결과였습니다. 그녀의 지도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교수들은 수 시간에 걸쳐 그녀를 심문했는데, 대학원생에게 있어 지도교수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면 사실상 Shepherd의 학자로서의 인생은 이 시점에서 끝날 운명이었습니다(다행히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현재 분위기는 반전된 상태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학자도 사람이니 먹고 살아야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직장이 필요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에 반하는 연구를 진행하거나 견해를 표출하는 행위가 실직과 명예 실추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직 학문적 사명감 하나로 그 위험을 감수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연구할 수 있는 주제가 그거 하나만 있는것도 아니니까요.

게다가 설령 용기있는 학자가 나서서 연구결과를 공표한다 해도 학계 역시 여러 학자들의 합의, consensus에 따라 굴러가는 동네입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소수의 의견만큼 묵살당하기 쉬운 것도 없지요. 결국 남는건 성차별론자, 여성혐오자의 낙인 뿐. 상황이 이렇다보니 '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마음놓고 연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여성학자들이고, 그들은 오늘도 페미니즘에 부합하는, 페미니스트에게 유리한 '사실'들을 쌓아가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전달하는 언론의 편향성과 왜곡 보도에 치를 떨면서도 그 '지식'의 순수성만큼은 신뢰하려 합니다. 허나 알아야 할 점은 지식은 연구의 결과이며 연구를 하는 주체가 사람인 이상 정치, 경제적 논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서구권에서 페미니즘은 사실을 날조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의 흐름을 통제하는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한국도 지금처럼 정계와 언론이 그들을 계속해서 비호한다면 같은 상황을 맞이하겠지요. 현재 돌아가는 판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점도 우울하지만, 그 이상으로 존재하는 현실조차 억지로 비틀어 '남성과 여성은 완전히 동일하다'는 명제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저 집념은 솔직히 두렵기까지 합니다.
출처 http://quillette.com/2017/11/29/politics-science-scientists-might-not-say-evidence-sup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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