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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흔여섯 먹은 선교사의 욕정
게시물ID : menbung_133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긴침묵으로
추천 : 4
조회수 : 3276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3/24 00:22:49


그러니까....내가 애정표현을 좀 급하게 한 건 있지.”

 

반복하는 그의 말을 듣다 못한 내가 물었다.

 

애정표현이었나요, 욕정표현이었나요?”

 

그가 변명을 시작했다.

 

허허, 있잖아요, 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 되는 거야.”

 

구역질이 나왔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두 달쯤 전이었다. 용돈 한 푼 안 받는 독립적 대학생인 나는 돈 떨어진 마당에 인력사무소의 문을 두드렸다. 공친 지 이틀이 지나고 사흘째 되는 날, 인력소장이 뽑아준 자판기 커피를 마시던 나는 하나님의 뜻을 공부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간다는 그를 만났다.

용달차에 거꾸로 올라 덜덜거리며 멀어지는 뒷 차를 멍하니 바라볼 무렵이었다. 그가 내 손을 보고서는 감탄의 언사를 던졌다. 조각 같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을 지녔다며 그는 마디 굵은 자신의 손을 펴 보이며 웃었다. 희고 고운 내 손에 나는 대개 만족하고 가끔 부끄럽다. 그 주름 깊은 경상북도 말씨 앞에선 부끄러울 차례였다.

 

그 뒤, 인력소에서 전화가 와 나간 일터에서, 필리핀으로 하나님을 배우러 갔다는 그의 소식을 들었다. 그 뒤로 까맣게 잊고 있는 터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인력소에서 전화가 와 나간 일터에서 그를 만난 것이다.

 

필리핀은 지금 방학이어서, 한국에서 6월까지 돈 벌다 갈 생각이라고 했다. 전에 만나 나눈 말에 많이 친해졌다 느꼈는지, 그는 내게 번호를 물었다. 아무래도 평일에 정장 입고 기자생활 하는 먹물을 알아두면 유용하리라 싶었겠다. “훗날 내가 고씨에게 도움 받을 일이 있을 지도 모르니...”하고 말을 흐렸으니까. 그는 올해 46이 됐다고 했다. 막노동판에서 오래 굴러먹은 탓일까, 그는 나이보다 훨씬 많이 들어보였다. 그는 계속 필리핀에서 만났다는 여자 얘기를 했다. 그 곳에서 스물 한 살의 현지인을 만났더란다. 전엔 말 안했지만, 이번에 필리핀을 간 것도 여자 낚을 궁리가 컸다고 했다. 맙소사, 신실한 기독교인을 표방하던 그에게 뒤통수를 쳐맞은 느낌이었다. 자신이 꺼낸 말이 민망했을까? 자꾸만 내게 변명 같은 말을 덧붙였다. 그녀는 원래 빵집에서 일하던 여자였는데, 빵 사러 갔다가 알게 됐다는 둥,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를 가르쳐주다 친해졌다는 둥, 오기 전에 걸어본 데이트 신청에 그녀가 응했는데 아쉬운 마음에 애정표현을 진하게 했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가 싫지 않았으니까 데이트를 받아준 것 아니겠냐, 등등.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할 작정이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는 나이차가 많이 나면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 곳은 그렇지 않아요. 거기 나랑 동갑인 필리핀 목사도 21살 여자랑 재혼하더라니까?”

 

아니, 그 사람은 목사고 아저씨는 일용 잡부잖아요. 어디 앞날 창창한 아가씨 인생에 초치려고 그래요

 

나는 입을 열려다 말았다. 대꾸 없는 내가 경청하고 있다고 판단했을까? 그는 신났다. 자꾸 그 공원에서 애정표현을 급하게 한 감이 있다며 말꼬리를 흐리는 걸 보니 말하고 싶은 낌새다. 조금 부추겨 보니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놀라웠다. 대낮 공원의 복판에서 손이 그 어린 여인의 어디 어디를 갔는지 하는 설명이 필요 이상으로 상세해서, 듣던 나는 속이 메스껍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자꾸 애정표현 타령 하길래, “애정표현이었나요? 욕정표현이었나요?” 하고 물은 것이다. 그가 답한다.

 

허허, 있잖아요, 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 되는 거야.”

 

개소리가 정도를 지나쳐서, 남녀 간의 평균 수명을 들어 말했다. 남자의 나이가 이만치 많으면 여자의 과부 생활이 길지 않겠냐고.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건 주둥아리였다. 여자는 50이면 폐경기가 오는데, 남자는 70까지도 정자가 생산되지 않느냐, 그러므로 생물학적으로 이건 합당한 거다. 점점 심해지는 메스꺼움은 내게 더 이상 대꾸하지 말라고 속삭였다. 사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목장갑을 끼고 일어서는 내게 그가 말했다.

 

인간에겐 행복 추구권이 있어요. 이건 누구건 막을 수 없는 겁니다.”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킨텍스의 반드르르한 변기칸에 머리를 박고 방금 먹은 점심을 죄다 쏟아냈다. 옆 칸의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그건 예수였을 것이다. 그도 나와 함께 구토를 하러 화장실로 급히 달려온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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