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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5년차의 이모저모 3
게시물ID : menbung_2161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재와빨강
추천 : 15
조회수 : 1398회
댓글수 : 62개
등록시간 : 2015/08/05 21: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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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각설하고,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있었던 일을 쭉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1
 
원래 그런 거 있잖습니까. 뭐가 없으면 갑자기 주문이 밀려 들어오고, 뭐가 많으면 또 주문하지 않는 그런 거.
하필 그날따라 빙수에 올라가는 고명이 다 떨어져서 A빙수에 <품절> 스티커를 붙여 놓고 있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오시더니
 
- A 빙수
 
라고 하십니다. 저는 그 메뉴의 재료가 다 떨어져서 주문이 불가하다는 충분한 어필을 했습니다.
 
- 만들어.
- 네?
- 없으면 사와서 만들라고.
 
뭐, 반말이야 충분한 면역 덕분에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것보다 제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이 분은 진상레벨 12 정도? 사실 저에겐 쪼렙에 불과합니다.
없으면 사와서 만들라... 사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게 가능한 메뉴와 불가능한 메뉴가 있습니다.
가령 편의점이나 근처 마트에서 쉽게 구매가 가능한 재료의 경우, 다 떨어지면 신속하게 사서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발주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는 재료의 경우는 그러질 못합니다. 아니면 발주 가격과 마트 또는 편의점 구입가가 터무니없이 차이 나는 경우!
이런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발주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하죠. 하지만 이분은 그런 설명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 손님이 해달라면 해야하는 거 아니야?
 
계속 앞에 했던 말을 반복해서 설명드렸습니다.
 
- 왜 이렇게 말이 많아? 빨리 만들어 달라니까?
 
...
여기까지 왔는데 말을 해도 알아듣질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상태가 지속된다면 강경하게 나가야 합니다.
계속 받아주다가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면 상대방은 95%의 확률로 직원을 만만하게 보거든요.
그래서 안된다고 마침표 찍듯 딱 잘라 말했습니다.
 
- 흥, 안 되면 안 된다고 처음부터 말 할 것이지 싸가지 없게 정색은 왜 해?
 
?????????????????????????????????????????????????
 
저기요 아주머니? 저는 안 된다고 자 대고 칼로 종이 자르듯 딱 잘라서 말했는데 처음부터 듣질 않은 건 당신이었으며, 재료 없으면 구해와서 하라고 저한테 신경질 낸 것도 당신이었으며, 말을 해도 알아먹질 못하게 계속해서 입술과 혓바닥을 낼름거리던 건 당신이었습니다.
 
라고 하고 싶은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저는 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재수없다며 바닥에 침을 탁, 하고 뱉은 다음 매장을 빠져나가시더군요.
 
속으로 온갖 육두문자를 날리며 락스와 솔로 바닥 박박 닦았습니다. 머릿속에서 스크림이 상영되더군요,
 
 
2
 
위에 일로 아침을 시작한 저는, 최대한 마음을 추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매장은, 아파트 단지가 주변에 무성하게 자리잡고 있는 상가입니다.
상가단지 특성상 단골도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아기도 초딩 중딩 고딩 대딩 모두 두루두루 많은 게 특징입니다.
사실 가격이 가격인지라 나잇대가 좀 있으신 분들은 커피 가격에 기겁해서 나가시는 것이 부지기수인데...
이 할아버지는 좀 독특하셨습니다.
 
들어오시자마자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훑어 보시는데... 갑자기 자기 외국에 살았던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다.
미국은 어땠니 영국은 어땠니 하면서 그...그... 특유의 발음으로 영어를 하시는데,
갑자기 저보고 "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외국어 정돈 하나쯤 할 수 있어야 한다 " 를 강조하시더니
갑자기 영어로 말을 하시는 겁니다.
 
앞에서 타격 입었던 멘탈을 회복하는 중이었는데 이건 무슨 몬스터가 저한테 중독 효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전 꿋꿋하게 한국어로 이런저런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젓더니, 그분도 꿋꿋하게 외국어로 말하라며 정색을 하시는 겁니다.
피곤해지더군요.
 
그래서 아주 친절하게 중국어로 말해드렸습니다.
저 중국문학이나 중화권 문화, 노래, 영화 같은 거 좋아해서 중국어를 잠깐 공부했었거든요.
할아버지, 갑자기 터진 타국 언어에 당황하셨는지 말이 꼬이셨습니다. 그래도 꿋꿋하게 영어로 말하시길래
그에 걸맞은 중국어로 답변 해드렸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하잖아요 :)
갑작스런 외국어 배틀의 결과는, 할아버지께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 하시는 걸로 마무리되었습니다.
 
 
3
 
위 할아버지가 가시고 한동안 조용했습니다. 문제는 저녁에 일어난 일인데, 딱히 매장에 피해가 간 일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은 옛날에 알바했던 곳에서도 한 번 있었던 일이라 대처를 좀 잘 한 편이거든요.
제가 멘붕한 건 주변의 반응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삼삼오오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그 연령층은 다양하죠. 최소 7세부터 최고 7, 80세? 엘리베이터로 2층 직빵으로 갈 수 있어서 많은 분들이 오십니다.
사건이 일어난 건 2시가 되고 한식경을 막 지날 때였습니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리는겁니다. 저는 놀라 2층으로 뛰어 올라갔는데
한 여학생이 거품을 물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습니다. 발작이었죠.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도 발작으로 거품물고 쓰러지는 걸 본 적이 있어서 재빨리 119에 신고했었습니다.
그러고는 2층에서 여학생 일행과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 아, 시끄럽게 왜 이런데서 쓰러지고 지X이야?
 
라고 말하는 게 들려 소리 난 쪽으로 째려보니 아주머니 세 분이서 그러고 계시더군요.
그러면서 여학생을 보며 깔깔 웃거나, 애들은~ 요즘 애들은~ 하면서 누가봐도 저격 비스무리한 걸 하며 대화하더라구요.
슬슬 짜증이 나서 정도를 조금만 지나치면 한마디 할 생각으로 듣고 있었는데
 
- 저기요, 아줌마!
 
제 옆에서 울고 있던 여학생의 친구가 얼굴이 시뻘개진 채 일어서서 소리지르는겁니다.
그 이후론 뭐, 뻔한 패턴입니다
 
여학생은 아주머니들을 가리키며 당신들이 사람이냐, 자식이 불쌍하다 이러고
아주머니들은 엄마아빠도 없냐, 예의가 없네 이러고 앉아 있고
 
맘 같아선 아주머니들을 향해 당장 나가라고 하고 싶었는데, 싸우다싸우다 알아서 나가더군요.
여학생은 속상해서 울고, 구급차 올 때까지 따뜻한 우유 마시면서 진정하라고 다독여줬습니다.
이후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자주 오는 여학생들이었는데, 오면 괜찮냐고 물어봐야겠습니다.
 
 
4
 
카페는 무조건은 아니지만 주문이 들어온 순서대로 메뉴가 나갑니다.
ABC가 들어오면 ABC 순서대로 나가지 ACB BAC CAB 이런 순서대로 메뉴가 나가진 않죠
예외가 있다면, AB주문이 들어왔는데 A엔 빵이 있고 B는 음료일 경우 B가 먼저 나갑니다. A가 시간이 오래걸리니까요.
이건 오늘 있었던 에피소드인데,
 
낮에 혼자 일할 시간이 있습니다. 저희는 직원들끼리 쉬는 시간을 정해놓고 꼬박꼬박 쉬기 때문이죠.
서로 휴식시간을 권할 정도로 쉬는 시간은 알차게 챙깁니다. 물론 사장님은 CCTV 보면서 한숨만 내리 쉬시지만...
 
어쨌든 그 시간에 바삐 움직이고 있었는데, 주문을 3개 연속으로 받고 잠시 손님이 끊겨 열심히 만들고 있었습니다.
ABC주문 모두 음료였기에 전 순서대로 나갔죠. C음료까지 다 만들고 음료 나왔습니다- 하는 순간
 
- 야.
 
저는 영문도 모르고 멀뚱멀뚱 C 손님만 바라봤습니다.
 
- 어른 공경 몰라 어른 공경? 애들 꺼 먼저 만들면 어떡해?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하고 가만히 머릿속에서 정리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손님이 다짜고짜 나보고 야, 라고 한 이유는 자기가 나이가 더 많은데, 앞에 어린 아이들(AB 모두 초등학생들이었습니다.) 음료 먼저 만들었다고 자기가 화가 났으니 너는 욕을 들을 자격이 된다 뭐 이런 소리인가. 이 무슨 히틀러보고 평화주의자라고 말을 하는 듯한 헛소리인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더군요.
 
문제는 그 AB 아이들 옆에 앉아서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저에겐 갓난아기도 손님이고 3살 아이도 손님이라 생각하고 존댓말 씁니다.
 
그런데 이 아줌마의 이야기는 도저히 들을 가치도 없더군요.
 
- 나 지금 기분이 매우 나쁜데 어쩔거야?
 
라고 나오셨습니다. 사실 저도 사람이기에 참는 데엔 한계가 있는 법이죠. 머릿속에 저장된 수백 개의 욕설이 온몸의 구멍을 통해 나오는 걸 겨우 참고 카운터로 갔습니다. 돈을 꺼냅니다. 픽업대로 갑니다. 손님에게 돈을 내밉니다.
 
음료를 빼앗습니다.
 
그냥 당신한텐 커피 안 팔테니 나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하는 건 서비스업이죠. 그냥 그 서비스를 거부한겁니다.
저는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팔았을 뿐입니다.
단지 자신의 기분에 맞지 않은 이유로 그분에게 욕을 들을 이유도,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손님이 욕을 먹을 이유도 없었습니다.
사실 제가 욕을 먹는 건 상관 없습니다. 이미 그정도론 멘탈에 실금도 안 가요. 하지만 저 외에 다른 사람이 욕을 먹는 건 좀 참을 수 없죠.
 
그분은 노발대발하며 서비스가 뭐 이따위냐 사장 나오라고 해라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난리 피우시길래
휴대폰에 112 찍어서 당장 안 나가시면 부를거라고 했습니다. 매장에서 지구대까지 걸어서 3분이거든요.
 
사실 죄송합니다 라고 말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죄송합니다 함부로 안 씁니다.
가끔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이유 안 들어보고 죄송합니다 라고 하시는 분들 보면 답답합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응대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요? 영혼없는 사과는 단지 책임 회피일 뿐이죠.
 
단지 이 분은 바쁜 것도 아니고, 단지 자기 음료가 앞에 어린 손님들보다 먼저 나왔다는 것에 화가 나 폭언을 한겁니다.
그와중에 터져 나온 애새X 라는 말만 열 번을 넘게 들었던 거 같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어제와 오늘, 이틀동안 있었던 일을 두서 없이 적었는데
역시 재미없네요;;;
 
요새 멘붕게가 흥해서 뭔가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멘붕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른지라 누구에겐 이게 왜 멘붕이지? 가 될 수도, 진짜 글만 읽고 멘붕이 될 수도 있죠.
서비스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곳에서나마 풀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습니다.
 
세상은 넓고 미X 사람은 많잖아요.
출처 어제, 오늘 하루. 아이고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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