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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아빠가 돌아가신 이야기..
게시물ID : menbung_3652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클로이
추천 : 13
조회수 : 1265회
댓글수 : 15개
등록시간 : 2016/08/24 15:29:13

아주 오래전에 글썼던건데, 거기 사이트 탈퇴하려다가 발견했네요. 

게시판 미아인것 같지만 저에겐 아직도 멘붕인 이야기입니다. 

저희 아빠는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돌아가셨고, 

저는 그래서 지금도 회를 먹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회 너무 좋아하시면 주의해주세요. 

특히 간질환자들은 특히나요.. 비브리오나 이런게 무서운게 내가 몸이 약하면 바로 오더라고요.. 

이제 저는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미 10년도 더된 일이지만 

아직도 저에겐 어제 같은 일이네요.. 참고로 저희 아빠 횟집에서 회 드셨는데 

나중에 소송했는데 패소했습니다.. 이것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억울하고 분하다고 할수밖에 없었네요. 


이 사고가 난 시점이 9월 추석쯤이었습니다. 곧 추석 돌아오게 됩니다.. 

시기도 비슷해져서 여러분들은 더욱 조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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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어디엔가 털어 놓을 곳도 없고 이렇게 적어봅니다..

 

4년전.. 추석 지나서.. 새벽 4시쯤 집에..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빠의 수술이 필요한데 지금 당장 오라고.. 당시 파주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광주 출장중이셨는데 난데 없이 수술이라니..  

새벽이라 택시를 타고 엄마만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엄마가 새벽에 출발하고... 저는 그냥 기다렸습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혹시 모르니깐... 상복도 챙겨서 내려와야 겠다는 엄마의 말..

그냥 하늘이 무너지더라구요..

 

광주에 도착하니깐 간발의 차로..

아빠는 수술이 이미 시작되었더군요..

보호자가 없어서 수술을 당장 했어야 하는데 못하고.. 엄마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진행하다가 수술실이 다 차서 

결국 아빠는 2시에 수술을 하게됐는데.. 그것도 간발의 차로..

수술실 문이 닫힐때 들어와서 볼 수도 없었습니다.

울면서 제가 아는 모든 신들께 빌었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달라고 우리 아빠 살려달라고

 

알고보니 아빠가 광양에서 출장가신분들이랑 회를 드셨는데...

비브리오 패혈증이라고 하더군요..

치사율이 97 % 

그렇게 무서운 병인지 처음 알았습니다.

 

다행히 아빠는 수술이 끝나서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언제 죽을진 모른다고하더라구요..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봤습니다.

아빠 두다리가 괴사되는 바람에 다리의 50%이상의 피부를 제거해내서...

뼈가 보이더라구요 그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눈물이 나면 화장실에 가서 숨죽여서 울고 세수하고..

 

매일매일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수술한 부위가 너무 크고 균이 침투하기 때문에.. 매일 소독약을 발라줘야하는데...

뼈가 보이는정도의 다리에 소독이라면...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원래는 마취를 해야할 고통이지만...매일 할수 없기때문에... 환자의 의지로 참아야한다고..

그러다가 의식을 놔버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하는...

그 매일을 2달을 아빠는 버티셨죠.

매일 수술실로 들어가서 소독하는데 균이 자란부분은 그자리에서 즉시 제거하구요.. 

물론 마취없이.. 매일을 아빠는 혼자서 그 고통을 참으셨던겁니다. 

 

그리고 아빠의 의식도 돌아오고 움직일 수 없는 아빠를 위해 간병도 하고..

집쪽의 종합병원으로 옮기고 다시 학교를 다니고 몇차례 대수술 끝에 아빠는 얼마후에 퇴원을 했습니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했지요..

간병을 하느라 저나 엄마나 너무 지쳐있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엄마한테 몇번 짜증을 내기도 했었고 아빠가 밉기도 했었어요..

대학교랑 알바에 엄마랑 교대로 간병해서 병원에서 자고 알바 학교가고.. 이게 너무 힘들어서..

철이 없었습니다..

 

아빠도 굳은 의지로 재활훈련을 시작하셨고.. 장애인 등급을 받으셨지요..

그리고 나서 병원비가 보험이 되는 병이 아니어서..

일주일에 600만원이 넘게 들어가다보니 모아둔 돈을 다 병원비로 지출하느라...

아빠가 그동안 많이 버셨던 걸로 다 지출해서 집에는 남은 돈이 사실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빠가 3개월의 재활훈련을 끝내고 혼자서 거동하실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다리는 아빠의 엉덩이 살을 떼어 피부이식도 하고 해서 흉하지만.. 바지로는 가려지니깐..

 

그렇게 거동이 가능하신 어느날부터 아빠가 저녁에 늦게 들어오기 시작하셨습니다..

엄마는 아무말도 안해주시고 야간이라 저는 매일 12시가 넘어서 들어왔거든요 

그러던 어느날 나가려는데  아빠가 절 조용히 불러세우시더라구요..

 용돈 안필요 하니 하면서 물으실길래

나 알바비 있어 하구 

돈도 없으시면서 괜히 눈치 보시는 것 같은 아빠 모습에 울컥해서..화가난 목소리로말하고  돌아서는데..

아빠가 제 손에 5만원을 쥐어주시는 겁니다..

왠돈인지 몰라 받기는 받았는데 알고보니..

 

아빠는 자기 병원비때문에 너무 미안해서 그 아픈 발로 대리운전을 하셨답니다..

제가 그 돈 5만원을 들고 알바하러 가는데 버스안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돈은 쓰지도 못하고 제 통장에 고이 모아놨지요..

그렇게 아빤 몰래 대리운전을 하시고.. 그 후 얼마후에 아빠는 비브리오 패혈증으로 몸이 

너무 약해지시고 지나친 항생제로 인하여...퇴원한지 2달만에...

간암이 발병되어서 1년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왜 하필 우리 가족이었는지..

 

통장 정리를 하는데..그 돈이 들은 통장이 보이더군요.. 따로 개설해놨거든요..

그 통장을 보고 아빠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한테 더 잘할려구요..

아빠한텐 철없고 어리고 제대로 못한 딸이었지만..

이젠 엄마한텐 잘할려구요

통장 붙여 놓고 자꾸만 힘들다고 투정부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볼 생각입니다.

 회사다니면서 아빠가 있었음 이러진 않았을텐데 하고 막 원망할때도 있었는데..

그 돈 받았을 때 제가 했던 결심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갑자기 통장정리하다가... 생각나서 주절주절 적어봅니다..

엄마랑 저녁 먹으러 다녀와야겠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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