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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7 2010-02-08 11:49:35 1
2.8 만평 [새창]
2010/02/08 09:52:06
http://news.khan.co.kr/kh_cartoon/khan_index.html?code=361101&artid=201002072234202


2646 2010-02-08 11:49:35 13
2.8 만평 [새창]
2010/02/08 12:14:53
http://news.khan.co.kr/kh_cartoon/khan_index.html?code=361101&artid=201002072234202


2645 2010-02-06 18:28:38 17
유시민이 생각하는 한국의 지역감정[스압] [새창]
2010/02/06 15:32:08
글이 길어서 읽지는 못했뜸.

설마 지역에 따라 사람이 다르다는걸 진짜로 믿으시는 분은 없겠죠?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 살아오면서 전라도 사람은 어떻다느니
저떻다느니 하는 얘기를 몇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 태어나도 똑같을거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지역감정이란것이 있더군요.

더러운 지역감정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한번 BOA요.

예전에 올릴려다가 안 올렸던 댓글인데
본문이랑 안 맞아도 이해해주셈.

================================
박통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임기가 4년 중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헌법을 뜯어고쳐 3번째 선거에 출마를 하게 됩니다.
그때 야당후보로 나온 사람이 김대중이었습니다.
3선개헌을 한 박정희 보다는 김대중의 인기가 더 대단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김대중이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판을 뒤집으려고 노력합니다.

*금권선거 - 박정희 본인 입으로 말한게 당시로 670억.(당시로...-_-)
*최초의 지역감정 선거 - 당시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보다 대략 1.8배 였습니다.
전라도표 김대중 다 주고 자기는 경상도표 다 먹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거죠.

그럼 그 전까진 지역감정이 없었을까요? 네. 없었습니다.

63년 선거때만 보더라도 개표가 많이 이뤄진 상황에서 박정희는 60만표 차이로 지고 있였습니다.
박정희는 질걸 예감하고 다시 쿠데타 준비를 합니다.
그때 뒤늦게 전라도와 제주도 표가 올라옵니다.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거의 몰표가 나온것이었습니다.
결국 15만표 차이로 박정희는 선거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지역감정이 있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당시 윤보선은 부잣집 아들이었고 박정희는 빈농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빈농의 아들을 지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도 보자면 김대중은 국회의원 선거 3번 떨어지고 4번째는 당선되었었는데
3번 떨어진 곳이 전라도 목포였고 4번째 당선된 곳은 강원도 인제였습니다.

71년 박정희가 지역감정 선거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지역감정 선거는 없었습니다.

71년 선거때 경상도에 벽보가 붙기 시작합니다.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공안경찰들이 경상북도를 비롯한 영남 일대에 대거 투입되어
시는 물론 군,읍,면지역까지 돌아다니면서 벽보를 붙입니다.
대충 그 내용은

"호남인이여, 백제인이여, 단결하라 - 호남향우회"

이때가 더러운 지역감정의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2644 2010-02-06 18:28:38 31
유시민이 생각하는 한국의 지역감정[스압] [새창]
2010/02/08 03:35:32
글이 길어서 읽지는 못했뜸.

설마 지역에 따라 사람이 다르다는걸 진짜로 믿으시는 분은 없겠죠?
저는 경상도 사람이라 살아오면서 전라도 사람은 어떻다느니
저떻다느니 하는 얘기를 몇번 들은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지역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문제라고요.
그런 사람은 어디에서 태어나도 똑같을거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지역감정이란것이 있더군요.

더러운 지역감정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한번 BOA요.

예전에 올릴려다가 안 올렸던 댓글인데
본문이랑 안 맞아도 이해해주셈.

================================
박통 당시 헌법에는 대통령임기가 4년 중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헌법을 뜯어고쳐 3번째 선거에 출마를 하게 됩니다.
그때 야당후보로 나온 사람이 김대중이었습니다.
3선개헌을 한 박정희 보다는 김대중의 인기가 더 대단했습니다.
이번 선거는 김대중이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불안감을 느낀 박정희는 판을 뒤집으려고 노력합니다.

*금권선거 - 박정희 본인 입으로 말한게 당시로 670억.(당시로...-_-)
*최초의 지역감정 선거 - 당시 경상도 인구가 전라도보다 대략 1.8배 였습니다.
전라도표 김대중 다 주고 자기는 경상도표 다 먹으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거죠.

그럼 그 전까진 지역감정이 없었을까요? 네. 없었습니다.

63년 선거때만 보더라도 개표가 많이 이뤄진 상황에서 박정희는 60만표 차이로 지고 있였습니다.
박정희는 질걸 예감하고 다시 쿠데타 준비를 합니다.
그때 뒤늦게 전라도와 제주도 표가 올라옵니다.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거기서 거의 몰표가 나온것이었습니다.
결국 15만표 차이로 박정희는 선거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지역감정이 있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당시 윤보선은 부잣집 아들이었고 박정희는 빈농의 아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빈농의 아들을 지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도 보자면 김대중은 국회의원 선거 3번 떨어지고 4번째는 당선되었었는데
3번 떨어진 곳이 전라도 목포였고 4번째 당선된 곳은 강원도 인제였습니다.

71년 박정희가 지역감정 선거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지역감정 선거는 없었습니다.

71년 선거때 경상도에 벽보가 붙기 시작합니다.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과 공안경찰들이 경상북도를 비롯한 영남 일대에 대거 투입되어
시는 물론 군,읍,면지역까지 돌아다니면서 벽보를 붙입니다.
대충 그 내용은

"호남인이여, 백제인이여, 단결하라 - 호남향우회"

이때가 더러운 지역감정의 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2643 2010-02-06 17:55:38 0
김연아처럼 사뿐히~ 앗......jpg [새창]
2010/02/06 16:22:50
물 오염됐뜸.
2642 2010-02-06 17:55:38 1
김연아처럼 사뿐히~ 앗......jpg [새창]
2010/02/10 18:24:08
물 오염됐뜸.
2641 2010-02-06 10:54:18 2
2.6 만평 [새창]
2010/02/06 10:29:34


2640 2010-02-06 10:54:18 11
2.6 만평 [새창]
2010/02/06 13:04:23


2639 2010-02-05 15:53:20 0
야.. 저 새X 못나가게 막아 [새창]
2010/02/05 15:47:40
1111

아무리 돈이 좋아도

여기는 애들도 오는 곳인데 너무하는거 같음.
2638 2010-02-05 11:32:02 1
2.5 만평 [새창]
2010/02/05 10:15:16


2637 2010-02-05 11:32:02 12
2.5 만평 [새창]
2010/02/05 11:41:05


2636 2010-02-05 11:31:57 0
2.5 만평 [새창]
2010/02/05 10:15:16


2635 2010-02-05 11:31:57 9
2.5 만평 [새창]
2010/02/05 11:41:05


2634 2010-02-04 15:07:13 0
제 후배가 만든건데 재미있나요?-_- [새창]
2010/02/04 14:11:18
재미있게 봤음.
2633 2010-02-03 22:16:16 0
한편의 미드가 따로 없네요....(경주여고생실종사건) [새창]
2010/02/03 19:41:52
<미드>'라고 한 이유 - 사랑 얘기가 아니라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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