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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3 17: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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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딩 5학년때 담임이 청소 안하는 대신 바닥에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했던 적이 있는데, 어느날 쓰레기가 하나 나옴.
그냥 구겨진 노트 한 장.
그때부터 담임의 범인 찾기가 시작됨.
나라고 지목하게된 그 경위까지는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버린거라고 함.
나는 버렸는지 어땠는지 기억도 안남.
노트 한 장을 버리는 일이란게 사소한 일이라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내가 버렸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음.
선생이 애들 눈감으라고 하고 내가 버린걸 본 사람이 있으면 손 들라고 함.
나도 정직하게 눈 감아서 모르지만 누군가 손 들었나 봄.
그때부터 나한테 인정하라고 난리가 났음.
나는 기억도 안나는 일로 내가 쓰레기를 버렸다고 인정하라는 것.
구겨진 노트 한 장 때문에 나는 처음엔 손바닥을 맞았고, 엎드려 뻗쳐서 엉덩이를 맞았고, 무릎 꿇고 허벅지를 맞았음.
솔직히 지금껏 태어나서 기억나는 한 고통 때문에 울어본 적은 없음.
그때도 안 울었는데, 담임이 결국은 내 빰을 쳤음.
때리기 전에 뭔가 심정의 변화라도 있었는지 생각보다 세게 맞진 않았던 기억이 있음.
아팠다고 생각하진 않았던거 같고.
정말 난 기억도 안나는 일을 인정할 수도 없으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는 마음으로 있었는데,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뺨 맞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음.
그때부턴 나도 그냥 내가 아니라고 악을 썼음.
애들도 그런 내가 불쌍해서 수군대기 시작했고, 내가 아닌거 같다고 하는 애들도 나오기 시작했음.
그때 체감은 종례시작하고 한두시간은 지난 느낌이었지만 실제로는 모르겠음.
암튼, 말 몇마디 하고 끝날 시간이 범인 잡는다고 평소보다
오래 지난건 틀림 없으니 담임도 결국은 종례 마친다고하고 씩씩 거리고 교실을 나갔음.
애들은 날 위로해줬었고, 우느라 눈은 팅팅 불어서 집에 갔고 어머니께 맞은 것 빼곤 솔직히 말했음.
차마 맞았다곤 하지 못했던게...내 나이때 '선생님'이란 직위는 그랬음.
군대에서 분대장에게 쳐맞았어도 간부에게는 그런 사실 없다고 감싸주는.
더군다나 어렸기 때문에 그런게 더 있었고.
하지만 내 눈보면 펑펑 운거 알거고, 내가 억울했다는걸 어머니는 충분히 알고 계셨고, 알겠다고 믿는다며 안아주셨음.
나는 그로부터 얼마 안지나 이사와 전학을 가게됨.
전학갈때 어머니가 선생 찾아가서 그런 식으로 선생질하지 말라고 하고 바로 휙 돌아서서 내 손을 잡고 교실 문을 나섰던걸 기억함.
내 나이가 서른 중반이 넘었고, 그래서 이미 20년 훌쩍 넘은 일인데 그때의 그 억울한 감정은 아직도 생생함.
어쩌면 나도 왕따라는 것이 없던 시절의 친구들이 보내준 위로와 나를 보듬어 안아주던 어머니의 품이 없었더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모름.
어린 나이의 사소한 누명이 얼마나 정신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지 알아야함.
내 경우엔 교육자라는 인간이 그랬지만, 그들 뿐 아니라 적어도 아이들 상대하는 사람이라면 성인보다 여린 마음을 지닌 인격체가 자기 기준의 극한의 상황에 내몰리면 그것이 어른의 기준에선 별 일 아닐지라도 아이들은 세상이 끝나는 기분을 느낀다는걸 알아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