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100% 현실적일 수는 없다는 말씀은 맞습니다만, 최대한 현실적이도록 노력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현실성 아예 확 집어치우고 상품성에만 매진하는 게임도 있습니다. 예를 드신 게임들이 전자에 속한다면 이 글은 아주 좋은 글이 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로 드시는 게임들이 너무 후자에 극명하게 속해버리니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배울 수 있는 게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죠, 중요한데 최소한 대략적인 방향으로는 '올바르게' 배울 수 있느냐는 점이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니셜D 아케이드 버전 3,4,5는 고속 드라이빙이란 게 실제로 어떠한지 대략적으로도 올바르게 배우기 어렵습니다. 특히 4에서 너무나도 쉽게 공짜로 이뤄지는 '슬라이드시 차체 안정화'라는 부분은 잘못 배우면 안 배우니만 못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니셜디 게임은 '드리프트 관련 매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버전 3에서 지나치게 그립주행 일색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버전 4에선 아예 별도의 기어나 페달 조작 없이도 꺾는 만큼 차체가 그 방향으로 스핀하도록 '항시 드리프트' 상태를 만들어 놨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h7zdgQDQ0
이로하자카의 극단적인 헤어핀을 도는데도 실제 필요한 감속 및 스핀 유도 절차를 밟는 게 아니라 그냥 냅다 브레이크 밟으면서 꺾으면 되도록 되어 있죠. 이런 물리엔진으로 드리프트에 쓰이는 페달조작과 기어조작과 스티어조작을 배운다면 실제 드리프트라는 것에 대해 굉장히 크게 오해하게 됩니다.
오락실에서 잘 나가는 레이싱게임들은 대부분 쉽게 재미를 붙여야 하며 또한 충돌에 대해 현실에 비해 훨씬 관대해야만 하므로 현실적인 물리엔진에 기반하는 게 아니라 상업적으로 노린 게임플레이가 가능하도록 아예 다르게 만든 물리엔진을 사용합니다. 이니셜D의 경우 벽과 다른 차에 충돌하더라도 실제로 충격과 반동을 받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매끄럽게 밀착하기만 하는 괴이한 충돌을 보여줍니다.(이로하자카 전체를 앞차가 벽을 수직으로 들이받은 채 뒷차는 앞차의 옆면을 밀기만 해서 클리어하는 것도 가능하죠) 그리고 차의 위아래 움직임에 의한 접지력 변화도 고속 드라이빙에 대비해 꼭 익혀야 하는 부분인데 이니셜D는 버전 5까지도 실제로 중력에 의해 아래로 가속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지면에 강제로 밀착해 있기만 한 모습을 보이더군요.
논조에는 동의하는데 예로 드는 게임이 오락실 아케이드 이니셜D게임이라는 점은 영 아니다 싶네요. 345 모두 많이 플레이해 봤는데 버전이 지날수록 '사실적인 측면을 느낄 수 있도록 발전'한 건 맞지만 해당 게임들의 물리엔진이 정말 '사실적인 축에 든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